“많은 분들이 ‘지상파TV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저는 우리 사원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MBC는 이제 지상파TV가 아니다.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다.’ ‘피지컬 100’은 MBC가 글로벌 OTT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는 본격적인 도전이며 올해 내내 같은 도전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난달 24일 박성제 MBC 사장 페이스북)

“넷플릭스는 국내 제작사에 하청 주문해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콘텐츠를 만들어 해외까지 유통하겠다고 한다. (중략) 결국 국내 콘텐츠 제작산업은 넷플릭스의 생산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이며 넷플릭스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국내에서 생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해외에 유통하게 될 것이다.” (2018년 5월17일 한국방송협회 성명서)

▲MBC가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피지컬 100'
▲MBC가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피지컬 100'

5년 전 지상파방송사(KBS·MBC·SBS)가 회원사로 있는 한국방송협회는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의 제휴”, 미디어산업 생태계 파괴의 시발점이다> 성명을 내고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한 축을 맡고 있는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후 박성제 MBC 사장은 MBC가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 오리지널 콘텐츠 ‘피지컬 100’을 선보이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고 밝혔다. 

웨이브 독점 통해 플랫폼 추구한 지상파
넷플릭스와 티빙에 독점 콘텐츠 공급

‘피지컬 100’은 MBC가 제작한 대형 예능 프로그램인데 TV 채널이나 지상파 방송사가 운영하는 OTT 웨이브에 방영되지 않고 넷플릭스에서만 방영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MBC는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 ‘피지컬 100’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MBC측에서 먼저 넷플릭스에 기획안을 보내 제안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장호기 PD는 ‘하하랜드’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별의별 인간 연구소’ ‘PD수첩’ 등을 연출했다. 이 프로그램은 9부작으로 제작됐으며 400여명의 스태프들이 투입됐다.

MBC가 넷플릭스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급한 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가 ‘먹보와 털보’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했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MBC는 오는 4월에도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는 등 적극적으로 넷플릭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MBC는 해외 OTT뿐만 아니라 국내 경쟁 OTT인 JTBC·CJ ENM이 운영하는 티빙(TVING)에도 독점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선보인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인 ‘만찢남’은 MBC가 제작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자사가 아닌 경쟁 방송채널이 운영하는 경쟁 OTT에 콘텐츠를 공급한 것이다. 종편의 경우 JTBC가 ‘솔로지옥’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공급한 바 있다.

▲2018년 5월17일 한국방송협회 성명서.
▲2018년 5월17일 한국방송협회 성명서.

지상파가 TV와 OTT를 통한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던 기존 전략을 전환해 콘텐츠 사업자로서 역할을 모색하는 모양새다.

2015년 지상파 방송사들이 경쟁 OTT에서 콘텐츠 공급을 중단하고 지상파 방송사 콘텐츠들의 웨이브 독점 공급을 선언한 바 있다. 당시 지상파 방송사들은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해 넷플릭스에 대항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 넷플릭스가 대세가 되자 공급하는 콘텐츠를 늘렸고 최근 들어선 티빙에도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뉴미디어 콘텐츠 전문가인 고찬수 KBS PD는 미디어오늘에 “그동안 지상파 3사는 넷플릭스를 한국 방송 시장을 장악하는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OTT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국내 방송사들에 있는 PD들도 전 세계 시장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평가받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다. 웨이브나 티빙이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해외 시청자들이 내 콘텐츠를 봐줄 수 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 '만찢남' 크레딧 갈무리. MBC가 제작했지만 CJENM과 JTBC가 운영하는 티빙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 '만찢남' 크레딧 갈무리. MBC가 제작했지만 CJENM과 JTBC가 운영하는 티빙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고찬수 PD는 “MBC가 이런 결정을 한 데는 넷플릭스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현실 인식이 깔린 것”이라며 “함께 가야 하는, 이용해야 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보는 거다. 성공하면 해외시장에서 MBC 제작진들과 프로그램을 하면 히트를 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주는 게 웨이브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결정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면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포스트 지상파 비전, 글로벌 감각도 키울 수 있어”

MBC는 어떤 고민을 통해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됐을까. MBC 관계자는 “전혀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콘텐츠 IP를 가질 수 없는 것에는 부정적 의견이 사내에 존재한다. 납품업자가 되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넷플릭스는 경쟁 상대가 아닌 협력 상대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해서 얻게 되는 유·무형의 가치가 있다. MBC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성공하면 넷플릭스가 MBC에 대해 우호적으로 바뀐다. 크리에이티브한 회사라는 인식, 맡겼더니 글로벌하게 성공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MBC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검수 등 관리가 까다로운 점을 설명하며 “지상파에서 콘텐츠를 만들 때 생각보다 정교하지 못하다. 기획력이 약해 무계획성인 면이 있다. 그게 순발력으로 커버 돼 더 좋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이 MBC 내부에도 변화의 바람과 활력을 넣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MBC 관계자는 “지상파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PD들에게 비전을 심어줄 수 있다. 포스트 지상파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특히 교양 부분 PD들은 이직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에 비전이 있다고 붙잡든, 넷플릭스 진출 욕구를 해소해 주든, 영향력 있는 OTT를 만들어 주든 뭐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MBC 관계자는 “MBC의 PD가 글로벌 감각을 익혀 넷플릭스 콘텐츠를 제작하고 돌아온다면, 장기적으로 MBC 안에도 글로벌 감각의 노하우가 반영된다. MBC 프로그램에 반영된다면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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