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청주방송이 고 이재학 PD 사망 진상 조사 결과 이행키로 합의했던 사안들을 최종적으로 이행하기로 한 기간이 끝났다. 청주방송은 여러 합의 사안들을 이행했지만 자회사 소속 직원 정규직 전환, 노사상생협의회 공식화, 정규직과 동등한 비정규직 복리후생 보장 등의 사안들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회사 소속 노동자 2명 정규직 전환 안돼, 노사상생협의회 개최도 미이행

2020년 2월4일 청주방송에서 14년간 일했던 이재학 PD가 세상을 떠났다. 이재학 PD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고, 근로자 지위확인소송 과정에서 회사와 동료들로부터 거짓증언 등 부당한 일을 당하던 중 1심 패소 직후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이재학 PD 사망 진상조사위원회는 2020년 3~6월 이재학 PD의 사망 경위와 청주방송 노동환경 조사를 진행한 뒤 이행 과제를 내놨다.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에 △공식사과와 책임자 조치 △명예회복과 예우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 △조직문화와 시스템 개선 등 5개 분야에서 21개 세부 과제를 제시했고, 청주방송은 세부 과제마다 이행 기간을 명시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 2020년 7월 청주방송 4층 소회의실에 조성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 사진=손가영 기자
▲ 2020년 7월 청주방송 4층 소회의실에 조성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 사진=손가영 기자

최종 이행 완료 날짜는 지난해 12월31일이었다. 하지만, 청주방송은 진상조사 결과 노동자성이 인정된 조연출과 불법파견이 확인된 MD 등 정규직 전환키로 합의한 직원 9명 중 2명을 현재까지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지 않았다. 2명은 청주방송 완전자회사 ‘CJB엔터컴’ 소속 행정·TD(Technical Director) 노동자들로, 청주방송은 지난해 말 계약 만료 시점인 12월31까지 이들을 정규직 전환하기로 합의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엔터컴 폐업 처리 여부 등 주주총회 결의사안과 연결돼있어 3월 주총 결과를 봐야 한다’는 것이 청주방송측의 입장이다. 채현석 청주방송 경영국장은 17일 미디어오늘에 “이행 약속을 안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상법상 CJB가 100% 퍼센트 출자한 자회사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사회나 주총의 결의가 있어야한다는 의미”라며 “3월 주총이 후 무리 없이 진행될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진상조사에 참여한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협약서대로 이행한다면 3월 주총 결의가 안되더라도 청주방송 직원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게 맞다”며 “불이행된 걸로 간주하되 회사의 사정을 고려해 3월 주총 이후 이행 자료를 제출받아 최종 확인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나머지 7명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다만 같거나 유사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의 직급과 호봉보다 낮은 처우를 받게 돼 정규직 전환자와 단일한 임금체계를 마련하기로 한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2020년 12월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두진건설 사옥 앞에서 ‘청주방송 이두영 의장 규탄대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2020년 12월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두진건설 사옥 앞에서 ‘청주방송 이두영 의장 규탄대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조직문화 개선 관련 과제 중 △노사협의회 노동자위원에 비정규직 대표 참여 보장 △노사 대표와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 분기별 상생협의회 개최 등 사항도 이행되지 않았다. 청주방송측은 ‘프리랜서 대표가 선임되지 않아 공식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표가 선임되면 빠른 시간 내에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지영 변호사는 “정규직 직원으로 인정하기 어려워 노동조합으로 보기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전체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협의회를 개최해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견 수렴해 소통해야한다는 취지로 요구했던 것”이라며 “회사가 (먼저) 협의회를 열고, 비정규직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데, 그런 과정 없이 비정규직 대표가 선출되지 않았으니 협의회를 못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채현석 경영국장은 “오히려 회사에서 (비정규직 대표를 선출)하려고 했는데, (한 사람이) 작가, AD등 각 직군을 모두 대표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 미뤄지고 있다”며 “추후 충분히 협의가 된다고 하면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휴가비와 명절 상여금, 경조사비 등 3가지 복리후생을 정규직 직원과의 차별없이 보장하기로 한 사항도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청주방송은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휴가비를 따로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정규직 직원들이 명절상여금을 현금으로 받는 것과 다르게 비정규직 직원에게는 선물로 대체하고 있다. 이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재차 문제를 제기하자 청주방송측은 ‘휴가비와 명절상여금을 동등하게 현금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청주방송은 책임자 5명을 징계하기로 합의했지만, 진상조사 결과 2019년 이재학 PD의 부당해고 소송 당시 이 PD 동료들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관여한 사실이 확인된 인사들 중 1명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고 2명은 지난해 5월 1개월 감봉(10%) 경징계에 그쳤다. 이에 대해 청주방송측은 “진상조사 결과 나오기 전 폭언과 사적 지시 관련 감봉을 받은 적이 있어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징계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부당해고와 소송 방해 책임자인 전 기획제작국장은 고인 사망 8개월 후 해고됐고 또 다른 소송 방해 책임자(전 경영국장)는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

프로그램 제작 인력 운용 매뉴얼, 성평등위원회 운영규정 등 개선안 마련

위 사안들을 제외한 다수의 합의 사안들은 이행됐다. 청주방송은 방송작가 직접고용과 고용안정 방안 마련을 위해 작가 고용구조 개선 TF를 구성하고 표준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는 ‘상대방의 귀책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 계약의 내용을 임의로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프로그램(계약) 종료 시점의 고용안정은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방적 계약 취소를 방지하고 프리랜서 인력 운영이 각 부서나 개별PD에게 일임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청주방송 프로그램 제작 인력 운용 매뉴얼’을 제정·시행했다. 매뉴얼에는 ‘PD가 방송제작을 위한 프리랜서 인력을 운영할 경우 각 국(실)별 부서의 장이 필요인력과 필요기간을 명시한 운영계획서를 인사 담당 부서에 제출하고, 대표이사의 승인을 받는다’. ‘회사는 프리랜서와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경우에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른다’는 조항이 담겼다. 

비정규직 작가를 비롯해 MC, 리포터 등의 프리랜서 처우개선을 위한 경력 등급 세분화, 등급별 단가 인상안 등도 마련했다. MC 출연료는 기존 표준제작비 대비 10% 상승안을 마련했고, 리포터는 기존 5년 차까지 구분한 경력 등급을 개선해 신입부터 11년까지 경력 기간을 늘리고 바우처 지급액도 경력에 따라 상승하는 개선안을 마련해 계약을 체결했다. 

▲ 2020년 2월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출범 당시 합의문.
▲ 2020년 2월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출범 당시 합의문.

성희롱과 폭언 등 조직문화 문제 개선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청주방송 성평등위원회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운영규정에는 적용범위에 ‘청주방송 종사자의 문제를 포괄하며 프리랜서, 파견 근로자(도급 근로자) 등을 포함한다’고 명시했고, ‘노사협의를 통해 기간이나 사안에 따라 도급, 파견, 프리랜서 구성원 중 1인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 아울러, 심리상담연구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심리상담이 필요한 직원에게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청소와 경비 도급근로자 4명을 촉탁직으로 직접고용하고, 운전기사들과 면담을 진행해 건물 내 독립된 공간 제공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실내의 환경개선 및 노후 비품을 교체했다. 방송협회, 기자협회, 방송기술인연합회, 영상기자협회 등 직능단체 및 방송관련 유관기관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전문직종 상시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청주방송의 최종 이행 결과 검토 후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은 마무리됐지만, 진상조사위원회는 미이행된 과제들에 대해 올해 3월 말 최종적으로 이행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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