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프리랜서’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숨진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그가 부당해고된 지 3년, 사망한 지 1년 3개월 만이다.

청주지법 2-2민사부(이성기·최유나·오태환 법관)는 13일 오후 2시 고 이재학 PD가 청주방송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선고 기일을 열고 원고 승소로 판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증거에 의하면 고 이재학이 청주방송 근로자였던 점과 부당해고 당한 점이 인정된다”며 “1심 판결을 취소한다. 청주방송은 원고들에게 각 3150만원을 지급하고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이재학 PD가 소송을 처음 제기한 지 2년 8개월 만에 나왔다. 이 PD는 2018년 4월 자신과 동료 프리랜서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기획제작국장의 일방적 명령으로 해고됐다. 당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회당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제작해 수입을 충당했지만 방송작가의 인건비는 턱없이 적었다. 방송작가의 회당 작가료는 30만원, 한 달 120만원 꼴이었다.

▲고 이재학 PD 근무 모습.
▲고 이재학 PD 근무 모습.

 

이 PD는 2004년 청주방송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쉰 2010년을 제외하면 2018년까지 만 13년을 청주방송 조연출 및 연출로 근무했다. 보통 제작하거나 편집할 프로그램을 2~4개씩 동시에 맡았고 청주방송 정규직 PD의 지휘·감독을 받았다. ‘무늬만 프리랜서’ 지위로 상사의 말 한마디에 해고된 억울함에 2018년 9월 청주지법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지난해 1월22일 1심에서 패소했고, 2주 뒤인 2월4일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신규식 청주방송 대표이사는 선고 후 “회사에게도, 청주방송 구성원에게도 너무 아픈 사건이었다. 청주방송은 이를 오래 기억하고, 더 나은 일터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며 “늦었지만 유족이 치유 시간을 갖는 첫 날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남은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화 등 이행 과제를 남겨둔 데 대해선 “지난해 7월 합의에선 3년에 걸친 순차적인 이행을 약속했지만 오는 6월 내로 불법적인 문제는 다 해결하겠다. 이게 회사의 의지”라고 덧붙였다.

유족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근절에 선례되길”

이재학 PD 사망 직후 사건 진상규명 등을 위해 꾸려진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선고 후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는 13일 오후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학 PD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2심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는 13일 오후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학 PD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2심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사진=손가영 기자

 

유족 이대로씨는 “(부당해고된 뒤) 3년의 시간이었다. 중간에 형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났지만, 오늘 그토록 원했던 명예회복이 됐고 억울함이 밝혀졌다. 형이 원했던 대로 형의 말이 진실이었다”며 “(판례가) 방송계 선례가 돼 방송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방송계를 계속해서 더 바꿔내면 좋겠다. 형이 원했던 건 자기 싸움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방송계의 잘못된 관례들 모두 뜯어고치는 것이었고, 그랬으면 좋겠다”며 “긴 시간 관심 갖고 함께 싸워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방송작가 출신의 이미지 언론노조 특임부위원장은 “더 이상 이재학 PD처럼 억울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도록,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과제가 주어졌다”며 “방송사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고 스스로 과감히 낡은 관행을 푸는데 나서달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방송·미디어 비정규직 남용 문제에서 책임이 자유롭지 않다”며 “고용노동부는 이번 지상파 방송3사 근로감독을 내실있게 하고, 방송사업 재허가 조건으로 비정규직 인력 현황 자료를 제출케 한 방송통신위원회는 면밀히 자료를 검토해 행정처분도 강력히 해달라”고 밝혔다.

대책위에서 지난 1년 3개월 간 싸웠던 김선혁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은 “대한민국엔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원이 없다. 노동 전문 판사도 없다”며 “법을 악용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동법원을 요구하는 투쟁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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