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A씨는 2021년 9월 조용기 목사 사망 속보를 전한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에 “지옥갔다에 100만원 걺”이라고 썼다. 3개월 후 돌연 해당 게시글이 ‘차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커뮤니티는 “게시중단 요청에 따라 임시조치 되었다”고 했다.  게시중단 사유는 명예훼손으로, 조용기 목사의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기업/단체로부터 게시중단 요청이 접수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6년 당시 경남도민일보 김주완·김훤주 기자가 공동운영하는 시사 팀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책에 나온 대목을 블로그에 올렸다 차단당했다. 책은 박기준 전 지검장의 검사 시절 섹스 스폰서 의혹을 다루는 내용이다. 

2014년 나경원 의원이 장애아 알몸 목욕 사진으로 논란이 되던 당시 관련 기사를 공유한 포털 블로그 글들이 차단됐다. 2009년 피아니스트 이희아씨가 나경원 의원을 비난하는 내용을 퍼 나른 누리꾼들의 포털 블로그 글들도 차단됐다. 한 누리꾼은 이희아씨의 발언이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내용도 함께 다뤘음에도 차단됐다.

▲ 임시조치 제도는 피해자 권리보호라는 취지와는 달리 기업, 정치인 등에 대한 비판적 게시글을 차단하는 도구로 악용됐다. ⓒiStock
▲ 임시조치 제도는 피해자 권리보호라는 취지와는 달리 기업, 정치인 등에 대한 비판적 게시글을 차단하는 도구로 악용됐다. ⓒiStock

이처럼 특정 게시물로 인한 당사자의 명예훼손을 주장하기만 하면 게시글을 ‘차단’하는 현행 임시조치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3일 나왔다. 

임시조치는 인터넷 게시글로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당사자 또는 대리인의 신고로 해당 게시글을 30일 동안 블라인드 처리하고, 이의제기가 없으면 삭제하는 제도다. 인터넷 게시글로 인한 무분별한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기업이나 공인에 대한 합리적 비판까지 차단하는 문제가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  SLR클럽이 A씨에게 보낸 임시조치 관련 안내글
▲ SLR클럽이 A씨에게 보낸 임시조치 관련 안내글

인권위, “공인·공공 관심사 제외하고 재게시 절차 마련해야”

인권위는 권고문을 통해 임시조치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이 정보통신망법에 명시돼 있지 않고, 판단을 사업자에 맡기고 있어 대부분의 게시글에 임시조치가 이뤄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권위는 “병원, 대기업 등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리뷰 등 공공의 관심 사안이나, 국회의원, 중앙행정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적 공인과 관련된 사안에 임시조치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며 “일정한 판단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임시조치를 한다면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저해하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한 인권위는 현행 정보통신망법에는 임시조치에  대한 정보게재자의 재게시(게시글을 다시 게시하는 것) 요구 등 불복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소명 기회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 한 누리꾼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나경원 의원 관련 임시조치된 게시글
▲ 한 누리꾼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나경원 의원 관련 임시조치된 게시글

인권위는 대책으로  “임시조치 대상 정보가 공적 인물에 관한 사안이나 공공의 관심 사안에 해당하는 경우 임시조치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등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게시글 작성자의 재게시 요구권 명시 △ 재게시를 요구한 경우 차단을 요구한 사람에게 이를 통지하고 구제절차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게시글을 다시 올리는 등의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선 논의 있었으나 외면, “최소한 대리신고 금지 필요”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인격권 보호만이 과도하게 강조되고 임시조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한 최근 상황에서, 임시조치 제도의 불균형성을 명확히 지적하고 개선을 권고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세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인터넷 임시조치 제도가 기업의 부정적 소비자 리뷰 억제, 공인의 비판글 억제에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결정문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물론 ‘공적 인물’, ‘공익성’ 기준이 모호하고 재게시 요구에 대한 처리 절차도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균형적 보장이 실현될 것”이라며 “최소한 제3자나 단체의 대리신고를 금지한다든가, 허위사실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소명된 경우에만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제한 요건을 두고 재게시 요구에 대한 처리도 동등한 수준에서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간 국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임시조치 제도 개선을 추진했지만 허위조작정보 대응 차원에서 규제 논의가 이어지면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2016년 유승희 의원이 발의한 임시조치에 대한 실질적인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이효성 위원장 체제의 방통위는 2018년 임시조치 제도에 이의제기 절차 등 반론권 부여와 이후 명예훼손 분쟁조정위원회 회의를 통해 10일 안에 임시조치가 적절했는지 결정을 내리는 방식의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후 이효성 위원장이 중도 사퇴하면서 관련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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