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측이 ‘편향적’이라고 비판했던 T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 진행자 교체 대신 폐지 수순을 밟는다. 일부 TV 프로그램도 내년부터 제작이 잠정 중단될 예정이다. 2년 연속 서울시 출연금이 대폭 삭감되며 TBS의 저널리즘 기능이 위축되는 모습이다.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지난 12일 진행자들이 동시에 하차를 밝힌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신장식의 신장개업’,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 등의 프로그램은 내년에 모두 사라진다. ‘뉴스공장’은 ‘출근길은 TBS(가칭)’로, ‘신장개업’은 ‘퇴근길 김혜지입니다’로 대체 편성된다.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 시간에는 ‘이가희의 러브레터’가 1시간 앞당겨진다. 외부 진행자들이 대거 하차하고 사내 아나운서가 자리를 대신하는 형식이다.

이외에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진행하는 TBS 아고라 역시 폐지된다. ‘박성호 강지연의 9595쇼’,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를 제외하고 외부 진행자가 있는 프로그램은 모두 내년부터 없어지는 셈이다. TBS 측은 “출퇴근길 시사 프로그램은 내부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교통, 음악 프로그램으로 비상 편성할 예정”이라고 했으며 “eFM은 아직 미정이고 유튜브 콘텐츠인 ‘짤짤이쇼’와 ‘변상욱쇼’ 역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 ‘정준희의 해시태그’ 갈무리. 사진=TBS 유튜브
▲ ‘정준희의 해시태그’ 갈무리. 사진=TBS 유튜브

TV 프로그램도 어려운 상황이다. ‘시민영상특이점’, ‘정준희의 해시태그’를 제외한 프로그램 제작이 내년부터 잠정 중단된다. 시사프로그램 ‘더룸’의 경우 지난 8월 이미 중단됐다. 다만 변상욱 대기자가 진행하는 ‘우리동네라이브’는 내부 조율 중이고 ‘신박한 벙커’는 내년 3월 제작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기후 전문 유튜브 채널 ‘싸바나’에 들어가는 콘텐츠도 계속 제작할 예정이다. 

TBS는 2년 연속 예산이 크게 삭감됐다. TBS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2021년 출연금이 55억 원 줄어들었고 올해도 88억 원 깎였다. 현재 확정된 232억 원의 내년도 출연금은 TBS의 올해 인건비(230억 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상업광고가 불가능한 TBS 특성상 프로그램 현상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마저도 2024년 1월부터는 아예 끊긴다. 서울시 지원을 중단하는 조례안이 지난 2일 공포됐기 때문이다.

조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장은 27일 통화에서 “예산이 없는 것이 가장 크다. 예산이 급하게 빠지는 바람에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내년에) 바로 제작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1월, 2월 광고 등 자체 수입의 숫자를 보면서 그에 맞춰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계속된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의 압박이 결국 ‘시사프로그램 축소’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신장개업’을 진행하는 신장식 변호사는 27일 TBS 유튜브에서 현 상황을 가리켜 “TBS 직원들의 생존권, 노동권을 볼모로 잡은 인질극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질부터 살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이번 건은 언론탄압사에서도 유례없는 유치한 방법이다. 너무나 저열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탄압하는 정부는 오래 못 갈 것”이라고 했다.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사진=TBS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사진=TBS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제작비가 복구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TBS 측은 “제작비가 정상화되어야 제대로 된 후속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조정훈 지부장은 “1월달이 되면 (서울시와) 조금 소통의 범위를 넓힐 것 같다. 새 대표가 오기 전까지 직무대행과 직원들이 바라는 목소리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은 미디어오늘에 “서울시하고 TBS가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새 대표는 2월 선임 예정이다. TBS 임원추천위원회는 오는 29일까지 차기 대표와 이사 등 임원 지원을 받는다. 이후 공개정책 설명회 등 추천절차를 거쳐 최종 임명된다. 하지만 임추위 추천권이 서울시장 2명, TBS 이사회 2명, 서울시의회 3명으로 구성돼 여권 비중이 우세하고 최종 임명권이 서울시장에 있어 서울시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임원이 꾸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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