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16일 KBS·MBC·SBS·TBS의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방송을 ‘신속심의 안건’으로 정하고 심의를 실시했으나 대부분 ‘의결보류’ 결정이 나왔다. 윤성옥 위원이 불참한 상황에서 의견이 ‘의견진술을 하자’는 황성욱·김우석 위원(국민의힘 추천 몫)과 행정지도·문제없음을 주장하는 이광복 소위원장·정민영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 몫)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김우석·황성욱 위원은 심의규정 위반뿐 아니라 방송 콘텐츠 자체를 비판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방송사가 정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방송소위는 윤성옥 위원이 회의에 참석하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10월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에서 발생한 핼러윈 대규모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10월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에서 발생한 핼러윈 대규모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태원 신속심의 결과는 ‘의결보류’

16일 심의대상에 오른 방송은 참사 당일 KBS·MBC·SBS 보도, 참사 후 정부 대처 등을 지적한 MBC·TBS 방송 등 12건이다. 앞서 방송소위는 이태원 참사 관련 민원이 몰리면서 관련 방송을 ‘신속심의 안건’으로 상정한 바 있다. KBS는 참사 당일 특보를 통해 현장 소식을 전하면서 현장 영상을 사용하고 인터뷰이에게 “혹시 지인은 없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우석 위원은 “‘특보’라고 해놓고 시간을 채워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방송한 것 아닌가”라면서 “각 방송사가 내부적으로 어떤 지침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받을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심의규정 위반 여부를 떠나 기준을 세우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민영 위원은 “참사 직후 구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인터뷰한 것이고, 영상을 보면 부적절한 질문을 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희생자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모자이크를 했지만 영상을 보여준 것으로 제재를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광복 소위원장은 “방송사의 윤리의식을 문제삼을 수 있지만, 이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방송사를 불러서 물어봤자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MBC는 참사 당일 현장 영상을 사용하고 “이태원에서 약이 돌았다는 말이 좀 들리는 것 같았다”, “약물이나 생화학적인 뭐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황성욱 위원은 “MBC 방송화면은 KBS보다 심각하다”고, 김우석 위원은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이라며 의견진술을 건의했다. 하지만 이광복 소위원장은 “뉴스를 내보내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며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러나 불러서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고 답변이 나오겠는가”라고 반박했다.

SBS 역시 현장 영상을 사용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9월7일 국무회의 영상을 방송에 내보냈다. SBS에도 의결보류가 결정됐지만 결정 과정은 달랐다. 정민영 위원은 SBS가 참사 현장을 과다하게 보여주고, 허위 영상을 사용했다면서 의견진술을 건의했다. 이에 김우석 위원은 “(정 위원이 의견진술을 건의하면) SBS만 의견진술을 부르는 것 아닌가. 이는 균형성이 없는 것”이라며 의결보류를 요청했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김우석 위원, 경찰력 비판한 MBC에 “잘못된 오보” 주장

김우석·황성욱 위원은 심의규정이 아니라 콘텐츠를 문제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의규정을 기반으로 방송사의 잘못을 따져야 할 심의위원이 방송 내용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김우석 위원은 경찰이 이태원에 충분한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1일 자 MBC ‘뉴스데스크’에 대해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경찰력 배치가 문제구나’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라고 했다. 경찰력이 참사의 원인이 아님에도 MBC가 단정해 보도했다는 주장이다.

김우석 위원은 이 보도를 “잘못된 오보”로 규정하고 “(참사 전) 공영방송도 사람이 모인다고 보도했지, 무슨 위험이 있는지는 보도하지 않았다. 책임을 돌리는 행태가 공영방송에서 벌어지는데 예측 못 한 부분에 대해선 후속 조치를 하고 그다음에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은 “(이태원 참사는)시스템 문제 아닌가. 경찰력이 문제고 이상민 행전안전부 장관이 문제다? 공영방송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옳지 않다”며 의견진술을 요청했다. 나머지 3명 위원이 의견제시를 건의해 해당 방송은 의견제시 결정이 났다.

다수 언론이 ‘토끼 머리띠 남성’에 주목한 것을 비판한 TBS ‘신장식의 신장개업’에 대해선 의결보류 결정이 났다. 정미정 박사는 1일 방송에서 “토끼 머리띠를 한 사람이 밀라고 했다. 이게 지금 이 사안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나?”라고 논평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을 조사한 후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또 다른 출연자는 4일 TBS ‘신장식의 신장개업’ 방송에서 “작년에는 기동대 3개 중대를 배치했는데, 올해는 왜 기동대 배치를 하지 않았나. 작년에는 하지 않았던 걸 올해 한 게 마약범죄 단속”이라고 했다.

김우석·황성욱 위원은 TBS가 정쟁을 부추긴다며 의견진술을 요구했다. 김우석 위원은 “토끼 머리띠 남성이 원인일 수 없다고 단정하는 방송은 문제가 있다”며 “야권은 정부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토끼 머리띠 남성을 마녀사냥한다고 이야기했는데, (TBS는)경찰이 수사하기 전에 단정하면서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듯하다. 정부나 경찰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했다. 황성욱 위원은 “참사 원인을 마약사건으로 지목하는 건 정쟁의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광복 소위원장과 정민영 위원은 해당 방송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정복 경찰 수 사실관계 틀려 “추후 바로잡아야

일부 사실관계가 틀린 방송도 있었다. KBS ‘주진우 라이브’는 2일 경찰이 이태원에 정복 경찰관 32명을 배치했다고 했으나, 실제 배치된 정복 경찰관은 58명이었다. 방송소위는 해당 방송에 의결보류 결정을 내렸다.

황성욱 위원은 ‘주진우 라이브’에 대해 “진행자도, 출연자도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내는 야당 인사. 객관성이라도 갖춰야 했다”고 지적했다. 황 위원은 KBS ‘주진우 라이브’에 대해 의견진술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광복 소위원장과 정민영 위원은 의견진술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이광복 소위원장은 ‘주진우 라이브’에 대해 “(주진우 진행자가) 기자생활을 했다면 추후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 권고 의견”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