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불행한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고 촛불 들지 않았던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나온 절규다. 지난 주말이다. 서울시청에서 숭례문까지 수만 명이 모였다. 촛불을 들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했다. 세월호 유족인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은 “책임자 처벌을 소홀히 해 온 역사”가 되풀이되는 참사의 원인이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보라. 촛불을 바라보는 집권당 실세들은 도무지 성찰이 없다. 되레 살천스럽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권성동은 “타인의 죽음마저 정쟁의 자원으로 소비하는 운동업자”라고 비아냥대며 그들에게 “비극은 산업이고 촛불은 영업이고 선동은 생업”이라 했다. 김기현은 “추모가 아니라 추태”라고 조롱했다. 나름 궁리해서 나온 말이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딴은 권성동이나 김기현만이 아니다.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바로 다음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 첫 공식회견에서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며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고, 서울 시내 곳곳의 소요·시위 때문에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다”고 언죽번죽 주장했다. 이 나라 민중을 무지렁이로 보는 언행이자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참사 책임을 집회 탓으로 돌리려는 불순한 의도마저 읽힌다.

▲이상민(오른쪽)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30일 정부 서울본관브리핑실에서 연 긴급현안브리핑에서 전날 이태원 핼러윈 참사 경찰 대응의 문제점에 대해 인파가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사진=정부e브리핑 영상 갈무리
▲이상민(오른쪽)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30일 정부 서울본관브리핑실에서 연 긴급현안브리핑에서 전날 이태원 핼러윈 참사 경찰 대응의 문제점에 대해 인파가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사진=정부e브리핑 영상 갈무리

진실은 결코 압사당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압사 위기’를 호소한 112 신고전화가 참사 4시간 전부터 직전까지 무려 11차례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모두 긴박한 신고였다. 그럼에도 경찰은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참사였음이 분명해졌다. 서서히 침몰하는 세월호 앞에서 제대로 구조 활동을 펴지 않던 살풍경이 겹치는 것은 당연하다. 156명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골목길 앞에 서면 112신고를 11차례나 묵살한 정부에 무장 분노할 수밖에 없다. 156명 가족의 곡성은 그래서 더 슬플 수밖에 없다.

행안부에 경찰국 신설을 강행한 이상민만이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기자들에게 농말을 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비극 앞에서도 ‘검수완박’을 들먹였다. 그들의 언행에서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에 공감은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행안부 장관을 당장 경질해야 마땅한데도 고교와 대학 선배라는 대통령은 그와 함께 조문을 다녔고 참사 9일째까지 아무 문책이 없다.

▲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11월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11월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생명을 경시하는 행태는 핼러윈 참사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산재 참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데도 중대재해기업 처벌을 어떻게든 완화하려고 머리를 쓰고 있다. 하지만 보라. 11월6일 고용노동부에 집계된 산재 사망 현황에 따르면, 올해 9월말까지 510명이나 원혼이 되었다.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일하다 숨진 사람이 되레 늘었다. 9월까지 집계인데 10월 들어 추락, 끼임, 충돌 사고가 잇따랐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에 따른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이 무력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대재해법으로 구속된 경영자가 실제 한 명도 없다. 건강하게 출근해서 주검으로 돌아오는 우리 가족이 앞으로도 줄줄 이어져 통곡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처벌과 규제’에서 ‘자율과 예방’으로 전환하겠다고 언구럭 부린다. 대통령 자신이 “처벌 위주 정책이 아닌 사고 예방이 산재 대책의 핵심”이라며 에헴 했다. 그런데 어떤가. 사고 예방을 부르댄 정부가 이태원에서 어떤 꼴을 보였는가. 즉각 행안부 장관을 경질하고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해야 마땅함에도 대통령은 진정어린 사과의 시간을 놓쳤다. 중대재해기업 처벌 강화는커녕 완화하려는 작태도 변함없다.

이쯤이면 촛불민중과 민주노총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정당방위이자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지키기다. 11월12일 촛불과 노동인들이 만난다. ‘10만 총궐기 전국노동자대회’는 집회 이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밝힌다. 핼러윈 참사 156명, 일터 참사 510명의 추추원혼 앞에 삼가 두 손 모아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