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1999년 10월30일)는 대부분의 희생자가 청소년으로 56명이 사망하고 78명이 부상당했던 큰 사건이다. 지하에 노래방, 1층에 식당, 2층에 호프집, 3층에 당구장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망자는 호프집에서 나왔다.

당시 참사에 의한 희생자들은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당시 인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이 사건이 ‘술 마시는 “불량 청소년”이라 일어난 일’이라는 방식의 메시지를 학교, 교회, 미디어 등 모든 곳에서 들었다. 당시 나로서는 ‘노래방, 호프집, 당구장과 같은 곳은 다니면 안되는구나’와 같은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불량 청소년이라 죽었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전국적이었겠지만 인천에서는 더 심했다. 어른들은 노래방, 호프집은 물론이고 아예 동인천역 근처에도 가지말라고 했다. 당시 나는 ‘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호프집이 성행하고 있는지’, ‘왜 50평 밖에 안되는 곳에 100명이나 들어갈 수 있게 했는지’, ‘비상구는 왜 없었는지’와 같은 질문들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위험하게 돈을 벌어들였던 무책임한 어른의 문제, 뒷돈을 받으며 이를 묵인했던 국가권력의 문제는 쉽게 묻혀졌다. 누군가는 그런 질문들을 했겠지만 적어도 청소년이었던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인현동 화재참사의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고통에 더해 희생자들에게 가해지는 낙인 그리고 낙인으로 인해 공감은 커녕 희생자들을 비난, 비하하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이 컸을 것이다.

▲ 2014년 10월30일 오전 인천시 중구 학생문화회관에서 열린 ‘인천 인현동 화재사고 1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들이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인천 인현동 화재사고는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거리의 한 호프집에서 불이 나 57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한 대형참사다. ⓒ 연합뉴스
▲ 2014년 10월30일 오전 인천시 중구 학생문화회관에서 열린 ‘인천 인현동 화재사고 1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들이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인천 인현동 화재사고는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거리의 한 호프집에서 불이 나 57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한 대형참사다. ⓒ 연합뉴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의 좁은 골목 비탈길에서 사람들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낙인, 핼러윈이라는 행사에 대한 낙인, 놀러간 청년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발언들의 수위가 정말 끔찍한 상황이다.

‘거기 놀러간 젊은 애들 잘못이다’, ‘서양 귀신 축제 챙기다 죽었다’라는 방식의 낙인은 놀랍게도 23년이나 지난 사건과 닮아있다. 모든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놀러갔다 죽은 것을 어떡하냐”고 한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 가운데서, 국민의 안전에 책임이 있는 국가는 쉽게 숨는다. 112신고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토록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며 누군가는 축제가 아닌 ‘현상’으로, 누군가는 구조적 ‘사건’이 아닌 개별적 ‘사고’로 취급되기를 바랐다. 국가는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때와 너무나 유사하게도 국민의 구조요청에 응답하지 않고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을 만들어 버렸다.

세월호가 암초에 부딪친 것이든 잠수함에 부딪친 것이든 부딪친 후라도 모든 사람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구하지 않았다. 배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구조를 위해 출동한 미군의 군함과 헬기에게는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 아직도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의 이유와 책임자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진상규명 요구도 끝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다른 점은 이태원 참사는 “애도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추궁이 아닌 추모의 시간을 갖자고 하면서, ‘참사’, ‘희생자’라는 표현은 쓰지말고 ‘사고’, ‘사망자’라는 표현을 쓰란다. 즉, 슬퍼는하되 구조적인 관점은 배제하라고 한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월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 조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월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 조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이 사건은 구조적인 관점을 배제할 수 있는 사건인가? 그렇지 않다. 핼러윈 주말에 이태원에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한다. 지하철 무정차 조치나 차 없는 거리 지정, 일방통행 조치, 경찰의 충분한 배치와 통제 등의 조치는 그간 한국사회가 잘 하고 있는 일이었다. 이미 과거 이태원 핼러윈 행사 때 했던 조치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지 않았고 엄청난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한다. 수백명의 수사관을 동원해 진상 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누가 가장 먼저 밀기 시작했는지 찾아내겠다’는 태도는 기가 막힌다.

일상이 안전해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든 수학여행을 가든 일터에서 노동을 하든 휴일에 축제에 놀러가든 어디서나 누구나 안전해야 한다. 그런데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그 이유는 학업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다가 사망하는 노동재해 사망률은 전 세계 1위다. 매년 800명에 달한다. 우리는 당신이 누구든 아무 잘못없이 죽을 수도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왜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나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공부를 하다가 똑같은 노동을 하는 권력이 정한 ‘정답’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며 이따금 해방감을 느끼려 한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쇼핑으로 ‘플렉스’하는 등 감옥 같은 삶을 지속하기 위한 잠깐의 탈출구를 찾기도 한다. 여행과 쇼핑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행과 쇼핑을 할 때만 만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삶이라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을 점검해 봐야 한다.

잠깐의 해방을 위해 나섰던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던 모습은 너무나 슬픈 오늘날 한국의 자화상이다. 엄청난 인파가 모이는 곳에 가지 않아도 재미있는 행사와 축제가 마을 곳곳에 많아야 한다.

▲ 11월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단체로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1월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단체로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정한 날, 특정한 곳에 가서 특정한 무언가를 해야하는 모습이 아니여도 되길 바란다. 여의도 불꽃축제도 보신각 타종행사도 꼭 그 날 거기에 그걸 보러 가지 않아도 우리들의 일상에 크고 작은 즐거운 일들이 많아야 한다. 감옥 같은 일상이 아니라, ‘정답’이 아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나답게 생존할 수 있는 해방세상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더 많은 춤, 노래, 문화, 예술로 채워져야 한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하고 싶은 머리를 하고 내가 주인공인 나의 삶을 너의 삶의 주인공인 너와 함께 공연처럼 예술처럼 즐거운 무대로 살아야 한다. 그게 바로 해방이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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