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한국계 하원의원 4명이 있다. 2020년 미국 하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국내 언론에서도 소식이 여러 차례 보도됐다. 대표적인 게 공화당 소속 영 김과 미셸 박 스틸 의원이다. 두 사람은 한인타운이 위치한 캘리포니아 제39지구, 제48지구에서 승기를 잡았다. 2021년 초 워싱턴 D.C.에서 열린 하원의원 선서 당시 두 한국계 중년 여성이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위풍당당하게 선 모습으로 촬영한 사진이 잘 알려져 있다.

▲ 2021년 초 워싱턴 D.C.에서 열린 하원의원 선서식에 참석한 한국계 미셸 박 스틸, 영 김 의원 (왼쪽부터). 사진=다큐멘터리 영화 ‘초선’ 스틸컷
▲ 2021년 초 워싱턴 D.C.에서 열린 하원의원 선서식에 참석한 한국계 미셸 박 스틸, 영 김 의원 (왼쪽부터). 사진=다큐멘터리 영화 ‘초선’ 스틸컷

두 의원의 정치 성향은 공화당답다. 모두 자신들 삶에 영향을 받았다. 북한 출신 부모와 미국에 정착한 미셸 스틸 의원은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자가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받은 자신들과 같은 자격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역구 하원의원 아시아담당 수행비서로 20여 년을 일한 영 김 후보는 상대적으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지만,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이 촉발한 흑인 시위를 ‘유감스럽다’고 평가한다.

나머지 두 의원의 성향은 정반대다. 민주당 소속으로 워싱턴 제10지구에서 당선된 메릴린 스트릭랜드는 초선 의원 선서에 한복을 입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외모만 보면 완연한 흑인이지만,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주한미군이었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면 외모가 어떻든 ‘한국계’라면서 그 명칭이 지닌 다양성과 포용력에 중점을 둔다. 2018년에 이어 뉴저지 제3지구에서 재선된 앤디 김은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두고 트럼프식 극단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 가치를 주장해왔다.

▲ 2021년 초 워싱턴 D.C.에서 열린 하원의원 선서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한 한국계 매릴린 스트릭랜드 의원. 사진=다큐멘터리 영화 ‘초선’ 스틸컷
▲ 2021년 초 워싱턴 D.C.에서 열린 하원의원 선서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한 한국계 매릴린 스트릭랜드 의원. 사진=다큐멘터리 영화 ‘초선’ 스틸컷

11월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초선’은 똑같은 한국계지만 생각하는 바도, 경험한 바도 이토록 다른 4명의 하원의원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여기에 캘리포니아 34지구에서 6%차로 아쉽게 낙선한 또다른 한국계 데이빗 김까지 포함해 이들이 어떤 생각과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는지 지켜본다. 미국과 다른 우리 정치 체제상 상원과 하원을 구분하는 것도 종종 혼란스러울 수 있는 평범한 관객에게 ‘초선’은 지성적인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내심 자신과 같은 생각을 지닌 정치인을 응원하게 되는 심정적인 참여를 끌어낼지도 모른다.

‘초선’을 연출한 전후석 감독은 이들의 뿌리를 1992년 벌어진 ‘4·29’에서 찾는다. 국내에는 ‘LA폭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흑인들이 한인타운에 큰 불을 지르고 물건을 약탈해간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분노한 흑인들의 시민봉기 성격으로 접근하는 시각도 있다. ‘초선’ 역시 백인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더해, 중년의 한국인 슈퍼 주인이 흑인 소녀를 권총으로 쏴 죽게 만든 사건이 크게 보도돼 기폭제가 됐다고 본다.

전 감독은 4·29로 큰 내상을 입은 재미한인들이 ‘우리 목소리를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대변해줄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계기를 맞았다고 분석한다. 조금 더 세련되고 정교한 방식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기를 자처한 게 2020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한국계 의원 4명인 셈이다. 당적도, 정치적 입장도 전혀 다른 이들이 2021년 아시안혐오범죄 금지법을 공동으로 통과시킬 수 있었던 건 공동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불거진 아시아 노인에 대한 무차별 폭력에 문제의식을 함께한 것이다.

▲ 2020년 미 하원선거에 출마해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계 데이빗 김 당시 후보. 사진=다큐멘터리 영화 ‘초선’ 스틸컷
▲ 2020년 미 하원선거에 출마해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계 데이빗 김 당시 후보. 사진=다큐멘터리 영화 ‘초선’ 스틸컷

다만 모든 걸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만큼이나 극단적인 미국의 진영 대결을 대변하는 듯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때로 우려되는 순간도 있다. 유일한 낙선자였던 젊은 데이빗 김은 기본소득보장, 성소수자 존중 등 변화한 시대를 반영하는 의제를 들고 2022년 하원의원 선거에 다시 한번 나서는데, 극도로 보수적인 부모님 세대와 한인타운 거주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그가 새로운 시대의 대변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초선’을 보고 난 뒤에 이런 맥락을 알게 되면, 11월8일 열릴 2022년 미 하원 선거의 결과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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