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가 입사하는 직원들로부터 “사측 인사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등을 “맹세”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서약서를 제출 받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연합뉴스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연합뉴스는 입사자들에게 특정 서약서를 제시해 서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측은 미디어오늘에 해당 서약서가 취업규칙에 속한다며 “정규직 사원들이 입사할 때 받는 것이다. 현재도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서약서가 사원의 “맹세”와 “어떠한 처벌도 받을 것” 등 노사관계를 근로계약이 아닌 일방적 주종관계로 표현하는 문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서약서는 입사자가 “연합뉴스의 사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며 성실한 관리의무를 다하는 뜻으로 특히 아래 사항을 틀림없이 준수할 것을 맹세한다”고 밝혔다. 사원이 지킬 것을 맹세할 서약에는 “이동 출장 기타 회사의 인사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등 9개 사항이 포함됐다.

▲서울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
▲서울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

서약서는 이어 “만일 위의 사항을 위반해 회사 업무상 장해를 일으키거나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칠 경우에는 이에서 발생한 해당 손해액을 즉시 청구대로 변상할 것이며, 퇴사를 포함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할 것을 서약한다”고 밝혔다. 끝 무렵엔 서약자가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현 주소, 등록기준지를 적고 날인하도록 했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의 최강연 노무사(류호정 의원실 선임비서관)는 “서약서에 적힌 조항은 근로기준법 위반 여지가 크다”며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연합뉴스가 해고할 수 있고 제한 없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가 정규직 입사자들에게 제출 받는 서약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 제공
▲연합뉴스가 정규직 입사자들에게 제출 받는 서약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 제공

최 노무사는 회사의 인사명령에 이의제기를 금한 조항에 “근로계약상 직무와 근무 장소가 한정된 노동자라면 동의가 필요하고, 한정이 없는 경우 회사가 업무상 필요성, 노동자의 생활상 불이익 등을 기준으로 최소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퇴사를 포함해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조항을 두고는 “서약서대로라면 애초 위법한 전직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다는 뜻인데, 노동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라고 전혀 볼 수 없다”고 우려했다.

서약을 위반하면 손해액을 ‘즉시 청구한 대로 변상’하도록 한 대목도 판례에 따르면 불가하다. 최 노무사는 “대법원은 사업 성격과 규모, 발생 원인과 성격, 사용자의 예방책 마련 여부 등을 모두 종합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를 손해 청구 범위로 정하는데, 이 판례를 위반한 조항”이라고 했다.

노재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장은 “시대 흐름에 뒤처지고 오해를 초래하는 일부 표현들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미디어전략홍보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서약은 부당한 인사명령까지 그 서약을 강제하는 내용은 아니기에 근로기준법의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 부당한 인사명령에는 (노동자가) 여러 구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또 손해배상 조항의 경우 실제 손해액을 배상하도록 한 것으로 역시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서약서는 적용된 지 20년이 넘은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낡은 표현 등에 오해 소지가 있다면 시대에 맞게 개정을 계속 검토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사정에 밝은 언론계 한 인사는 이 서약서를 두고 민주화 이전 관영언론의 관행이 현재까지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연합통신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설립됐다.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이 연합통신 사장을 역임하는 등 연합통신은 이른바 관영언론 역할을 해왔다. 민주화 이후 연합통신은 1990년대 연합뉴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남북관계 소식을 전담하던 국정원 정보기관인 내외통신을 흡수통합했다. 

이 인사는 해당 서약서가 “가장 앞서가야 할 언론사에서 이같이 낡고 일방적인 내용의 서약서가 남아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라며 “연합뉴스가 그 역사로 인해 가지는 관료적 문화를 많은 부분 청산해왔지만, 서약서는 그 중 여전히 남은 부분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보인다”고 했다.

류호정 의원은 “위법한 내용을 규정한 뒤 이를 어겼다는 이유로 노동자에 대한 해고까지 가능케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매우 경직된 조직문화를 낳을 수 있다”며 “사내 질서에 관한 내용은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을 통해 충분히 정할 수 있음에도 이런 서약을 맹세케 하는 것은 노동자를 위축시키고 통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연합뉴스는 18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비공개 국회 업무보고를 진행한다. 문체위 위원들이 연합뉴스 사옥을 찾아 연합뉴스 사장 등 경영진과 대담하는 자리이며, 이는 국감 종료 뒤 이뤄지는 것으로 감사를 위한 공식 질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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