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상폭력을 막기 위한 교육을 어떻게 만들어야 효과적일 수 있는지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존의 여성대상폭력 예방교육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면 어떤 모습이 생각나시나요?

대개는 남성들에 의해 여성이 경험하게 되는 폭력을 남성들에게 정보 전달의 방식으로 강연을 하는 모습이 떠오르실 것 같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가해자가 96~97%의 확률로 남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 ‘남성들이 몰라서 그렇지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알려주기만 하면 무언가 깨닫게 될꺼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저는 이런 내용과 방식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탐구하고 타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돕는 성평등/성교육은 없이 성폭력예방교육만 하게 만드는 현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존의 폭력예방교육의 방식으로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어떤 자료나 통계를 보여주면서 말해도 믿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마세요”라는 반응도 정말 흔합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효과적인 방법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처음부터 바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로 시작하지 않고 폭력과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향상시켜 놓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여주고 ‘누가 잘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찾는 활동을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사에게 체벌을 당한 사례, 양육자에게 공부를 강요당하며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사례, 군대에서 선임병에서 욕설과 구타를 당하는 사례 등입니다.

참여자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면서 대화합니다.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가 폭력과 억압의 피해자에게 공감합니다. 짝꿍 대화를 마치고나면 ‘교사, 양육자, 선임이 잘못했다’, ‘때리면 안된다’, ‘학력, 학벌 중심주의가 문제다’, ‘군대 내 폭력이 문제다’, ‘폭력을 당해도 문제제기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력이다’ 등 훌륭한 답변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참여자들에게 이 이야기가 실제 저의 경험담이며, 제가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선생님, 부모님, 선임들에게 왜 문제 제기하지 못했을지를 물어봅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만약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 이야기 나눕니다. ‘신고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오고 ‘누구나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와 양육자 그리고 군대에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등의 답변이 나옵니다.

이 활동을 마친 후 성폭력 사례들로 다시 같은 과정을 합니다. 가해자의 편에 서서 ‘가해자가 억울할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습니다. 참여자들은 입을 모아 ‘폭력을 쓴 사람이 잘못했다’고 합니다. 이 시간에도 ‘신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나옵니다. 기쁜 것은 ‘교육을 해야 한다’,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사람들 사이에 폭력적인 일들이 발생했을 때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교사-학생’, ‘양육자-피양육자’, ‘선임-후임’ 그리고 ‘성인(비청소년)-청소년’, ‘직장 상사-부하직원’ 등 ‘권력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면 남성이 성별만으로 가지게 되는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덧붙여 줍니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성역할고정관념과 성통념으로 인해서 성폭력을 경험하더라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여성들, 용기내어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2차 피해를 받으며 점점 더 취약해지는 상황들. 이런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눕니다. 마무리하며 ‘폭력이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하면 참여자들은 ‘네!’라는 답변과 ‘끄덕끄덕’ 등의 반응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참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관심있는 주제로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공부(성적), 외모, 교칙 등으로 시작해서 나이차별과 청소년인권까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 그리고 탈학교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차별, 폭력, 억압이 어떤 제도와 문화에 의해서 유지/강화되고 있는지 찾아보고 나는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줄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제도와 문화가 학력학벌중심주의, 자본주의, 나이주의 등이라고 찾아냅니다. 그리고 보통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그러한 가치관을 심어주고 획일적인 삶을 살게 만들지만 자신들 역시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에 친구들에게도 억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어서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도 자신이 이 구조를 지탱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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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과 성평등 이야기를 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보다 남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이 더 심하다’라고 주장을 하기 위해서 군대를 예시로 드는 건데요. 국가에게 문제제기해야 할 이슈를 성평등/성교육 시간에 여성들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적절한 “공격“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이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게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럴 때는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대문제는 정말 문제가 맞으니까요. 단,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대상을 잘못찾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 부분을 도와주면 됩니다. 이 역시 질문을 통해서 하시면 좋습니다. ‘저도 군대문제가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해결해 볼까요?’ ‘군대문제,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요?’ ‘억지로 가는거요’, ‘남자만 가는거요‘라는 답변이 나옵니다. ‘그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라고 다시 질문합니다. ‘여자도 가요‘라는 답변을 하는 사람이 꼭 나옵니다. ‘여자도 군대가는 세상이 되면 남자들은 군대를 가지 않게 될까요? 군대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사라질까요?’ 시무룩한 얼굴과 ‘아니요‘라는 답변이 나옵니다. ‘그럼 여자도 군대에 가는 건 해결책이 아니겠네요. 그렇다면 억지로 가는걸 해결해 볼까요?’ ‘강제로 군대에 가게 하는 것을 뭐라고 부르죠?’ ‘징병제‘ ‘원하는 사람만 군대에 가는 걸 뭐라고 부르죠?’ ‘모병제‘ ‘그럼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죠?’ ‘정치인’ ‘근데 우리나라가 아직 휴전중이라고 모병제를 하면 위험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휴전중인 상태를 끝내는건 뭐라고 부르죠?’ ‘종전‘ ‘종전선언은 누가할 수 있죠?’ ‘대통령이랑 김정은이랑 만나야 돼요‘ ‘오 좋아요. 그럼 군대문제는 누구한테 해결하라고 말해야 할까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성폭력/성차별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성매매는 4대 여성대상 폭력이라고 불리는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중에서 가장 교육이 힘든(참여자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주제입니다. 성구매자는 돈을 내고 원하는 것을 얻었고 성판매자는 돈을 받고 자신이 팔 수 있는 것을 팔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관점에 의해 사고하도록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사고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를 뒤집어 보고 비틀어 볼 수 있게 만드는 페미니즘 관점, 젠더관점으로사회현상을 볼 수 있도록 재학습,재사회화 돼야만 성매매가 폭력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반성매매 교육을 하기 전에 아래 문장을 듣고 어떤 상황이 생각나는지 묻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립니다. ‘내가 너에게 돈을 주니까 너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러면 “직장 갑질“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서로를 동료로 여기지 않고 돈을 주는 사람이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폭력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이 때 성매매가 왜 성착취인지 여성의 몸을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처럼 여기는 것이 왜 폭력인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모든 차별과 억압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방법입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다양성훈련은 게임과 활동 그리고 대화를 통해서 직접 깨닫고 서로에게 배우는 참여형 교육입니다. 인종, 민족,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질병, 외모, 나이, 지역, 가족의 형태, 종교, 소득/경제력, 고용의 형태, 학력/학벌과 같이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서너시간 정도의 워크숍 부터 시작해서 7박8일 숙박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장시간 다회기 워크숍이나 캠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오전에는 청소년으로서 나이차별을 경험하는 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위치가 되었다가, 저녁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공정“이 과연 진짜로 공정한지 느껴볼 수 있는 게임을 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국적과 언어만을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는 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비성소수자로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경험할 수도 있는 상황과 차별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을 경험하며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구조에 대한 사유를 하도록 돕는 것이 다양성훈련입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 남성들도 여성들에게 차별, 억압, 폭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사회구조라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도 청소년으로 청년으로 노동자로 아무런 이유없이 경험하게 되는 차별, 억압, 폭력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방법도 아주 효과적입니다. 여성과 남성 둘로만 나눠서 여성폭력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젠더체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들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이 역시 다양성훈련에서는 참여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지는데요, 간성 배제로 시작되는 성별이분법 그리고 외부성기 모양만으로 지정당한 지정성별에 의해서 성격/성향, 외모,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여기는 성역할고정관념의 문제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기서 모든 사람은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해야 한다고 여기는 시스젠더 중심주의 그리고 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남성은 반드시 서로에게 끌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성애 중심주의 그리고 모든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성과 남성은 반드시 결혼을 해서 출산해야 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까지 이 전체적인 그림이 젠더체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위치하게 되는지 느껴보게 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보육, 교육, 의료, 노동, 주거, 노후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그 역할을 하지 않고 가족 안에서 알아서 해결하게 하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을 여성에게 감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모성애’를 근거로 들며 ‘여성들이 돌봄노동을 잘한다’ ‘선천적으로 원래 그렇다‘고 믿게 만들고자 합니다. 남성은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와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게 됩니다. 장시간 노동도 위험한 노동도 노동문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라면, 아빠라면 버텨야 할 ‘가장의 무게‘이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과 강요하는 남성성이 무엇인지 느껴봅니다. “남성성”이 부족한 남성을 대하는 이 사회의 태도 그리고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려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알아봅니다. 이런 것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해로운지, 여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게 만드는지 이야기 나눠봅니다.

내가 이 구조적인 억압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마지막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입니다. 폭력이 없는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내가 하고 싶은 역할 그리고 내가 그 행동이나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하나씩 적어보고 마치면 좋습니다.

참여자들은 ‘한국다양성연구소의 유튜브 영상을 챙겨본다’이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좋은 글이나 영상을 공유한다’와 같은 가벼운 답변들부터 ‘친구들과 놀 때 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인 말이 나오면 그 말은 잘못되었다고 알려준다‘, ‘친구들의 폐드립이나 섹스립에 똑같이 대응하지 않는다’와 같은 답변들, 그리고 ‘공교육과 미디어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와 같은 답변들도 많이 나옵니다.

교육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차별, 억압, 폭력이 사회구조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구조 속에 내가 존재하기에 나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별’이라는 딱 한 가지 사회적 정체성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적 정체성들에 의해서 발생하는 교차하는 권력을 인지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나의 역할을 고민해 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을 도구나 대상, 성적인 존재로만 여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은 여성을 그렇게 대하지 말라고 교육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친구로 동료로 인간대인간으로 관계맺는 경험을 풍성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제공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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