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KBS 현장감사에 착수한 지 2주가 지났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KBS 본사에 수감장을 설치한 감사원 직원들은 26일께 확보된 자료들을 검토하기 위해 감사원에 일시 복귀했다. 조만간 이를 근거로 추가적인 자료 요청이나 관련자 조사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KBS 소수 노동조합과 보수단체들의 국민감사청구로 시작된 이번 감사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에서 ‘표적 감사’로 규정했다. 실제 감사원이 받아들인 감사 청구 이유들을 보면 이번 감사 결과가 공영방송 사장에 대한 해임 시도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감지된다.

감사원이 지난달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 심사에서 받아들인 항목은 5가지다. 중점 사유로 거론되는 항목은 첫 번째, 김의철 사장 임명에 관한 문제다. 지난해 9월 KBS 이사회가 김의철 사장 후보자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애초 청구인들은 사장 후보자 3명 중 2명이 사퇴해 김 후보자만 최종 후보자로서 심사 받았고, 김 후보자가 경영계획서에 부동산 관련 허위기재를 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특히 두 번째 사안, 즉 김 사장의 경영계획서 허위기재와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KBS 이사회에 책임이 있는지를 들여다 보고 있다.

감사원, 김의철 사장 임명 절차 등 5개 항목 들여다봐

이는 김 사장 임명 전부터 현 여권(국민의힘)이 문제 삼았던 대목이다. 국회에서 김 사장 인사청문회가 있었던 지난해 11월 동아일보는 김 사장이 위장전입으로 서울 아파트를 분양받고 다운계약서를 써서 세금을 아꼈다고 보도했다. 당시 답변서 ‘(공직자) 7대비리’ 항목엔 2005년 7월 이후 2회 이상 또는 위에 해당되지 않는 위장전입 여부를 묻는 질문이 있었고 김 사장은 ‘아니오’를 택했다.

김 사장은 이에 1993년 육아 문제로 서울을 떠난 2년 동안 양천구 가족 주소에 위장전입을 했고, 2004년 아파트 매입가 신고 건은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가 도입되기 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과세 원칙을 지키지 못한 불찰이었다고 사과했다. 당시 이를 지적한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사퇴하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만 허위로 답변한 건 사과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감사 청구인들은 이를 두고 KBS 이사회가 서류 검증을 철저히 하지 않은 ‘직무유기’라는 입장이다.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KBS

이는 사장 본인도 일정 잘못을 시인한 만큼 이사회의 심사 권한과 책임을 어느 범위까지로 볼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임기가 2024년 12월까지인 사장을 무리하게 교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사회와 사장 모두의 책임을 묻는 수순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만 해임안을 의결할 수 있는 이사회는 야권 이사들이 다수이고,  2017년 해임됐던 강규형 전 KBS 이사가 해임 무효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만큼 물리적인 이사회 재편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다음으로 현 KBS 사장과 이사회가 무리한 결정으로 회사에 부담을 줬다는 취지의 주장들이다. 우선 KBS가 자회사들과 공동출자해 설립한 드라마 제작사 ‘몬스터유니온’에 대한 400억 원 증자 결정 건이다. 이사회는 지난 4월 몬스터유니온에 자회사(e-KBS)를 통해 400억 원을 증자하고 KBS가 보유하던 지분 25%를 e-KBS에 넘기기로 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촉발한 시장변화와 제작비 급증 등의 환경을 고려해 SBS의 ‘스튜디오S’, CJ ENM의 ‘스튜디오드래곤’처럼 드라마 부문 ‘스튜디오화’를 추진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찬성론, 평가와 책임 시스템을 먼저 보완해야 한다는 반대론이 부딪혔다. 의결은 증자를 반대한 4명의 소수이사(현 여권 추천)들이 반대입장을 밝히면서 퇴장한 채 이뤄졌다. 감사 청구인들은 당시 결정이 공사에 손실을 끼친 배임행위이며 외압이 작용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사옥 신축계획과 관련된 항목도 있다. 2016년 고대영 KBS 사장 시절 추진돼온 신사옥 건립 계획은 전임 양승동 KBS 사장 시절 폐지됐다. 애초 계획은 2835억 원을 들여 여의도 KBS 연구동 부지에 미래방송센터를 지어 제작인프라를 집중시키겠다는 방향이었는데, 2017년 감사원이 재원조달 계획 부실성을 지적했다. 이후 KBS 경영진은 경영상황 및 재정여력을 이유로 기존의 설계용역 계약기간 연장을 반복하다 지난해 11월 용역계약 종료를 확정했다. 청구인들은 김의철 사장이 계약 종료 당시 보도본부장으로서 신사옥 신축 계획 중단이 결정된 회의에 참여했다며 회사에 재산상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한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감사원 모습. ⓒ 연합뉴스

몬스터유니온과 신사옥 관련 항목은 경영상 행위의 합리성을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과거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부실경영 혐의에 대한 감사 결과와 같은 논란을 부를 여지가 있는 것이다. 2017년 KBS 이사진을 대상으로 언론노조 등이 제기한 국민감사청구는 상대적으로 정량적 판단이 가능한 법인카드 유용여부에 대한 사항이었던 것과 차이가 있다. 다만 감사결과가 발단이 되어 해임됐던 정연주 전 사장, 강규형 전 이사 모두 약 4년이 흘러 해임무효 판결이 확정됐다는 점에서, 또다시 감사원발 해임 시도가 이뤄진다면 소모적 정쟁만 반복될 거란 시각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취재·제작자율성 침해 사례를 조사했던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 관계자도 감사대상이다. 2018년 6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운영된 이 기구는 총 22건의 보도 공정성·독립성 사례를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2008년 사장 선임 및 편성에 당시 청와대(현 대통령실)가 개입한 정황과 ‘블랙리스트’ 논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 경위를 비롯한 사안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이 결과를 근거로 19명에 대한 징계 권고가 이뤄졌다.

감사원은 전 진미위 단장이 과거 병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갔다는 의혹을 감사 항목에 포함했다. 감사 청구인들은 2019년 7월~8월 해당 인물이 네팔 히말라야 산맥 등을 여행했는데 병가를 사용한 기간과 겹친다면서 근태처리·복무규정 위반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어 비위사실을 감추고자 서류를 조작했다는 은폐의혹까지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은 ‘대선 직후 증거인멸 목적으로 문서 폐기를 조직적으로 주도’했다는 의혹이다. 3월 KBS 총무시설국이 본사 전 부서에 ‘사무환경 개선을 위한 사무용 집기 감량화 추진’ 공문을 보내면서 보존기간이 경과된 모든 문서, 단순 일일보고, 참고자료 등 폐지를 지시한 일에 대해서다. 감사 청구인들은 이것을 “과거 정부 시절 행해진 불법적 활동들에 대한 검경수사나 감사원 감사가 실시되기 전에 문제될 수 있는 문서를 미리 폐기하려는 의도하에 조직적으로 행해진 것”이라 주장했다.

▲김의철 KBS 사장 ⓒKBS
▲김의철 KBS 사장 ⓒKBS

이런 사안들에 대해 KBS 측은 소명에 큰 부담이 없다는 분위기다. 김의철 사장은 감사가 시작된 14일 KBS 이사회에서 “이사회, 사무국, 감사실, 전략기획실 등 전사적으로 감사원에 협조해서 이사회와 경영진의 명예를 온전히 회복하는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선 1일 이사회에서도 그는 “오해와 억측 등이 해소돼 방송의 독립성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감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감사원의 결과를 넘겨짚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결과를 단정하긴 어렵다는 반응이 KBS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감사를 계기로 검찰 압수수색 대상이 된 방송통신위원회처럼 방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다.

국민감사청구 참여 단체들, 여권 연결고리 두드러져

한편 이번 국민감사청구에 참여한 단체들의 면면도 주목해볼 만하다. 국민감사청구에 참여한 20개 단체 중 다수가 현 여권과 직간접적 연관성이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출범한 단체들은 이런 특성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공영미래비전100년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KBS 이사 출신인 강규형 명지대 교수, MBC 노동조합 활동에 부당개입한 혐의가 인정된 김장겸 전 MBC 사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출범한 자유민주국민연합은 지난 3월 대통령실 이전 비용에 대한 범국민 성금운동을 진행했다. 2019년 출범한 행동하는자유시민은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 SNS에서 ‘친일이 정상’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초대 대표를 맡았다. 2020년 출범한 자유수호포럼은 방문진 이사장 출신으로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의 장본인인 고영주 변호사가 상임대표를 맡았다. 자유공정연합의 경우 2021년 출범 당시 상임고문으로 이규택 전 친박연대 대표, 고문으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참여했다. 

100년위원회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에 대해서도 허위조작보도가 문제라며 여권과 가까운 입장을 내고 있다. 이들은 26일 MBC의 최초 보도를 ‘가짜뉴스’라 칭하면서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처럼 가짜뉴스를 양산해 시청자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려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저질 언론사에 대한 본격적인 개혁 조치에 즉각 착수하기를 바란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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