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정착된 현장도 있지만, OTT 제작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웨이브 ‘남의 연애’를 만들었을 때 7박8일을 내리 촬영했다. 촬영하는 동안 내내 잠을 줄여서 풀촬영을 했다. 52시간은 지켜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독립PD이자 웨이브 ‘남의 연애’ 제작에 참여한 박민태 PD의 말이다. 그는 5일 한국PD연합회가 35주년을 맞아 벌인 PD들의 인식 설문조사를 발표하는 현장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한국PD연합회가 주최한 설문조사에서 현직 PD들(응답자 488명)은 최근 3~4년 노동시간의 변화에 대해서 ‘변화 없다’는 응답(37.1%)을 가장 많이 했다. 또한 전반적으로 노동시간이 ‘증가했다’는 비율이 36.5%로 ‘감소했다’는 비율(26.4%)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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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남의 연애' 티저.
▲웨이브 '남의 연애' 티저.

이날 한국PD연합회의 설문조사를 발표한 후 현장 PD들의 피드백을 듣는 시간에서 가장 많이 나온 반응은 “왜 52시간제도가 만들어졌는데 현장 노동시간은 줄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민태 독립 PD는 “특히 최근 리얼리티 예능이 많아지면서, 거의 카메라를 끄지 않고 계속 촬영하는 현장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러한 현장에서 주52시간은 말도 안된다”고 전했다.

이어 “물론 짧은 시간 촬영하고, 보수도 그만큼 많이 주어지지만 외주제작사들이 만드는 콘텐츠 중 대부분의 현장에서 52시간은 지켜질 수 없는 환경”이라며 “이런 환경 때문에 PD들이 외주제작사를 많이 떠나고 있는 현실을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PD연합회가 35주년을 맞아 회원PD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 일부. 사진출처=한국PD연합회. 
▲한국PD연합회가 35주년을 맞아 회원PD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 일부. 사진출처=한국PD연합회. 

안수영 MBC CP는 “MBC의 경우 김태호 PD의 ‘먹보와 털보’가 넷플릭스에서 제작됐다”며 “당시 촬영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을 때 넷플릭스에서는 제작비도 많이 주지만 그만큼 시간도 많다는 이야기였다. 제작비와 함께 시간도 널널하니 PD들이 OTT에서 제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 CP는 “OTT로 간 PD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주어진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주 단위 내지는 압축된 시간에 방송을 뽑아야 하는 환경보다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며 “(그러나 박 PD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꼭 OTT의 제작환경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지상파가 모여 만든 ‘웨이브’와 넷플릭스와의 차이인지, 혹은 ‘김태호’라는 스타 PD의 업무 환경 차이인지 알 수는 없지만, OTT라고 해서 꼭 비용이 크고 시간이 길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먹보와 털보' 이미지. 사진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먹보와 털보' 이미지. 사진출처= 넷플릭스.

최지원 한국PD연합회장은 “주 52시간 관련 문항은 연합회에서 놓친 게 맞다”며 “저 역시 설문 결과를 보고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PD의 정체성 인식 중 샐러리맨이 2등으로 나온 것과, ‘노동시간이 줄지 않았다’는 응답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제작에 참여했던 KBS ‘추적 60분’의 경우는 3~4년 전에 비해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며 “향후 심층 인터뷰를 통해 노동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유연근무나 재량근로 체제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살펴보겠다”고 답변했다.

“MZ세대 PD들의 북한 교류 문제 관심 낮아져, 세대 갈등 고민”

이날 PD연합회 세미나 현장에 있던 PD들은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짚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복면 가왕’ CP인 안수영 MBC CP는 ‘이직을 생각하겠다는 의향이 있다’는 응답 중 68.2%가 ‘그렇다’고 답한 것을 두고 “PD연합회의 회원 특성상 지상파 PD가 많은데도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며 “지상파에서 이직을 생각하는 것은 방송계의 큰 변화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종일 SBS PD는 “설문조사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PD들이 모색하고 싶은 주제’”였다며 “이 가운데 북한 교류 문제를 살펴보니 흥미로웠던 것이 이 주제에 대한 여성 PD의 선호도가 낮았고, 5년차 이하는 0%였다. MZ세대들의 북한에 대한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김 PD는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정말 쉽지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점점 갈수록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PD연합회에서 남북 문제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PD로서 관심있는 주제에 대한 남성과 여성, 경력별 인식 차이. 사진출처=한국PD연합회. 
▲PD로서 관심있는 주제에 대한 남성과 여성, 경력별 인식 차이. 사진출처=한국PD연합회. 

강진수 TBS PD는 여론조사 가운데 ‘서울시와 서울시 의회의 TBS에 대한 계획(교육방송 전환, 예산중단 등)은 부당하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가 47.7%이고 ‘다소 동의’가 23.2%로, 전체적인 동의 수준은 70.9%의 비율로 나타난 것과 관련해 의견을 덧붙였다. 강 PD는 “교통방송이 미디어재단으로 전환됐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강 PD는 “TBS가 감사를 받는데 지난달에는 재난방송 건으로 서울시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감사를 청구하더니, 이번에는 김건희씨의 ‘줄리’ 논란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허위사실 유포로 서울시 감사 청구를 받게 됐는데 이것이 서울시가 감사 청구할 상황인지 황당하다”며 “이러한 문제는 오직 TBS만의 문제가 아니며, KBS와 MBC도 곧 문제가 될 수 있고 공영방송에 대한 전반적 압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TBS에서도 대처를 잘하지 못한 부분이 있고, ‘대표퇴진’이라는 이야기도 내부에서 흘러나오며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TBS는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곧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 가칭 ‘TBS 길들이기 저지 사원 행동’을 만들려고 한다. TBS 입장에서 멤버쉽도 운영하고 서울시 의원들, 시민단체나 언론단체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TBS가 지역 공영방송으로서 역할과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KBS와 MBC 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동참해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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