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기준 2022년에만 스무 편 이상의 리얼리티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중앙일보-‘짝짓기 예능' 올해만 25개 쏟아졌다… 예능은 왜 사랑에 빠졌나).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지라 큰 관심은 없었는데, 대중문화를 공부하는 이로서 가볍게 지나칠 일은 아니다. 장르의 흥망성쇠는 산업적 이해관계와 더불어 사회적 맥락과 함께하는 탓이다. 그러고 보니 자본주의 사회의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학자들이 있다. 8월29일부터 방송중인 EBS <위대한 수업> 시즌 2에서 “사랑의 사회학”을 주제로 강연이 예고된 에바 일루즈는 그중 한 명이다.

일루즈는 <차가운 친밀성>(한국어판, <감정 자본주의>)에서 ‘냉소’라는 감정에 특히 주목하였다. 인터넷 온라인 데이트가 일반화된 세태 속에서 냉소는 “전통적 낭만주의 문화와의 근본적 단절을 보여주는 신호이자, 막대한 상호작용 분량에서 비롯된 관례화의 결과요,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를 지배하는 시장구조 및 시장문화의 결과”이다. 오늘날의 잠재적 연인들은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나 데이팅 앱을 배회하며 바쁘게 짝을 찾아 그 어느 시절보다도 효율적으로 즉석만남과 가상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타인과 스스로를 상품논리로 재단하고 재빨리 (상처를 덜 받기위해) 상대를 밀쳐 내거나 (더 좋은 만남을 위해) 끌어당기며, 친밀성이라는 차가운 환상을 공유한다. 어느 시대보다도 사랑이 넘쳐나지만 어느 순간보다도 사랑은 냉소적이다. 엄청난 숫자의 ‘짝짓기’ 예능이 쏟아진 배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전략적 선택을 수행하는 가운데 사랑은 여느 퀴즈 프로그램의 최종상품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 ENA PLAY와 SBS Plus에서 공동 제작한 짝짓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SOLO’
▲ ENA PLAY와 SBS Plus에서 공동 제작한 짝짓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SOLO’

당연히, 하나의 ‘짝짓기’ 예능이 끝날 때마다 더 많은 솔로들이 축적된다. 선택되지 않은 감정의 뒤끝은 씁쓸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짝짓기’로부터 탈락한 이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오늘날의 사회는 패스트 패션 산업이나 이주 노동자로 꾸려지는 1차 산업처럼, 쓰레기 처리나 쓰레기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발판삼아 지속된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도태된 이가 있어야 커플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나 아직 너무 큰 걱정은 마시길, “다행히도 대부분의 스피드 데이트 고객들이 원하는 관계는 재협상이 가능한 ‘반환 가능한’ 계약, 해마다 수행하는 차량 검사 같은 관계이다... 쓰레기 처리 시설이 차질 없이 가동되며 즉시 사용이 가능하게 되면 속도를 감당할 수 있게 된다.”(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다시 한 번, 거절된 이들을 위한 판돈이 걸리고 이들은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분주히 다음 수를 계산한다. 어쩌면 다시 구애 시장에 나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일종의 상품이라면, 굳이 사랑의 외양으로 이후의 포석을 감쌀 필요는 없다.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인지도는 그 혹은 그녀가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주요한 자산이다.

사랑이 냉소적 처세술과 획득 가능한 자본이 되고 다수를 쓰레기로 만드는 풍경 속에서 철학자 알랑 바디우는 사랑을 재발명하길 주문한다. 그는 사랑을 “하나가 아닌 둘에서 시작되어 세계를 경험하는 것”, “동일성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차이로부터 검증되고, 실행되고, 체험된 세계”(알랑 바디우, <사랑예찬>)로 이해한다. 바디우에게 사랑이란 비슷한 취향과 유사한 세계관의 동종교배가 아니다.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가 제공하는 안전한 사랑과 거리를 두며 바디우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무거움, 즉 우연과 황홀을 시간 속에 고정시켜 “지속성·끈덕짐·약속·충실성”을 사랑 속에서 선언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랑은 몇 주 간의 짧은 합숙 속에서 싹트는 눈치 보기가 아니다. 시간을 함께 하며 매 순간 각자의 동일성을 뒤흔드는 모험과 위험하고 혼란스러우며 고통을 감수하는 사랑. 바디우에게 사랑은 나를 깨부수고 너와 이어지는 “최소한의 코뮤니즘”이다. 그런 꼿꼿한 사랑을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우선은 사랑에 대한 우리의 냉소부터 거두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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