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가 보고 ‘헉’ 숨을 멈춘 고래의 사진, 장남원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장 작가는 30년간 고래를 찍어온 국내 유일의 고래 전문 사진가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슈피겐홀에서 열린 ‘2022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장 작가는 “우영우가 나를 뜨게 한 것인지, 내가 우영우를 뜨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웃어보이고는 수십년의 고래 이야기를 펼쳐냈다.

▲ 장남원 작가의 사진을 보고 있는 우영우. 사진=에이스토리 유튜브
▲ 장남원 작가의 사진을 보고 있는 우영우. 사진=에이스토리 유튜브

수십년 고래를 찍어온 장 작가이지만, 그를 최근에 알게 된 이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법무법인 한바다 회의실의 고래 사진을 계기로 꼽는다. 사진 속 주인공은 ‘혹등고래’. 몸길이 11∼16미터, 몸무게는 30∼40톤에 이른다. 드라마에 사용된 사진은 가로 6미터, 세로 3미터 크기로 출력돼 웅장함을 더했다. 장 작가는 “경기도 덕소에서 개인 갤러리를 하는데, 거기까지 ‘우영우’ 감독이 와서 이 사진을 선택했다. (감독이) 몇 장 중 직접 고른 것”이라며 “(사진 속 고래는)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크기”라고 말했다.

이 고래는 장 작가의 기억에도 깊이 남아 있다. 사람과 노는 걸 좋아하고 특히나 온순했다고 한다. 첫 촬영을 마치고 다음 날 찾아갔을 때도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던 고래 덕에 연속 촬영이 가능했다. 장 작가는 “이런 고래를 한 번 만나면 큰 행운이다. 2시간 정도 같이 놀고 혹시나 하고 다음날 갔더니 그 자리에 또 있었다”며 “악수는 못했지만 지느러미도 나에게 뻗고 친근하게 대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장 작가의 사진이 처음부터 고래를 담은 건 아니었다. 1977년부터 1997년까지 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쉽게 그만둘 수 없었고, 선배들의 수중촬영 사진에 관심을 갖다 고래와 만났다. 그는 처음 봤던 ‘고래의 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남쪽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고래를 처음 만났는데, 나를 쳐다보는 눈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봐야 되겠다, 그렇게 그때 다짐했다.”

무엇보다 그는 고래 특유의 온순함이 좋았다. 장 작가는 “고래는 포유류라 그런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크기가 작은 트리거피쉬(쥐치)마저도 (사람의) 아킬레스건을 물어뜯거나 수경을 깨기도 하는데, 고래는 덩치만 산만 하지 매우 온순하다”며 “그런 느낌을 주는 대상은 몇 없다. 굉장히 좋은 피사체”라고 말했다.

고래는 강한 모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어미가 4개월간 직접 젖을 물리며 새끼를 돌본다. 그 기간에는 어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 자신의 지방을 태워가며 버틴다. 하지만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온 새끼가 포경선에 잡히기도, 범고래에 먹히기도 한다. 

▲ 장남원 작가는 오른쪽 고래가 어미, 왼쪽이 새끼라고 설명했다. 사진=미디어오늘
▲ 장남원 작가는 오른쪽 고래가 어미, 왼쪽이 새끼라고 설명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어미는 새끼를 키우고 남극으로 6600km의 먼 여정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범고래나 뱀상어 등이 새끼를 목표로 달려든다. 그럴 때면 어미는 가슴지느러미와 꼬리로 피투성이가 되어가며 새끼를 지킨다. 방어에 실패해 새끼가 범고래에게 먹히기 시작하면 어미는 그 자리를 머물다 새끼와 같이 생을 마감한다. 범고래에게 당하지 않더라도 남극 입구에 포경선이 있어 어이없게 잡힐 때도 있다. 사진 속 고래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아는 것처럼 슬픈 눈을 하고 있다.”

작가는 고래를 찍는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다고 전했다. 고래를 찍을 때는 산소통을 비롯한 장비를 착용하지 못한다. 장비로 호흡하는 소리를 고래가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래를 찍을 때면 숨을 참은 채 맨몸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해야 한다. 고래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종일 기다릴 때도 많다. 

장시간의 비행시간 또한 기본이다. 고래는 직접 바다로 나가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작가가 처음 고래를 찍은 곳은 13시간 거리의 뉴질랜드 ‘통가’였다. 미리 해당 나라의 승인도 받아 놓아야 한다. 승인을 이후에도 나라별로 30~70m 정도로 접근 금지 기준을 세워놓는 등 절차가 엄격하다. 장 작가는 “우리나라 동해에서도 큰 고래들이 주기적으로 출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다른 나라만큼 고래에 대한 관심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에선 고래 사진에 대한 인기가 높지 않다. 장 작가는 “우리나라에 고래 사진을 찍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참 슬픈 일이다. 일본처럼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최근 나오는 니콘, 캐논 카메라들은 ‘방수하우징’을 하면 다 수중 촬영이 가능하다. 누구라도 도전이 가능하다”면서 새로운 고래 사진가들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 장남원 작가는 고래가 지느러미를 뻗는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사진=미디어오늘
▲ 장남원 작가는 고래가 지느러미를 뻗는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사진=미디어오늘

30년 동안 사진을 찍어온 장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무엇일까. 장 작가는 고래와 악수하는 듯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꼽았다. 거대한 고래와 사람이 붙어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래와 사람이 이렇듯 조화롭게 구성된 사진은 많지 않았다고 장 작가는 말한다. 그는 “사람이 물 속으로 쭉 들어가면 고래가 마치 잡고 올라오라는 듯 가슴 지느러미를 길게 뻗는다. 고래는 이런 행동을 자주한다”면서 고래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에게 고래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처음 고래 촬영에 성공한 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고래를 찍은 것은 뉴질랜드 위 ‘통가’라는 곳이었다. 그날 고래를 찍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는데, 그 사진이 잘 나오고 안 나오고 관계 없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마음이 들었다. 고래를 내 가슴에 품고 왔다는 것 자체로 벅차 13시간의 비행시간이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70세가 넘은 ‘고령’이지만 내년 5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촬영을 계획하고 있다. 그의 고래 이야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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