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7년 ‘한국방송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이를 한국방송의 역사로 인정해야 할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일제치하 식민지배 수단이었던 경성방송국 개국을 시작점으로 둬선 안 된다는 비판, 역사적 사실과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한국방송학회는 18일 ‘방송문화 100년: 역사적 의미와 기념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세미나에선 ‘한국방송 100주년’ 관련 전문가 인식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한국방송학회 의뢰를 받은 한국리서치는 지난 7월13일~8월1일 방송학자 및 방송산업 관계자 152명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한국방송의 시작점으로는 주로 △1927년 2월16일 경성방송국 개국일 △1947년 9월3일 한국호출부호(HL) 배정일 △1947년 10월2일 한국호출부호(HL) 첫 방송일 등이 꼽힌다. ‘방송의날’도 이 기준들을 오가며 바뀌어왔다. 방송의날은 1964년부터 HL 첫 사용일인 10월2일로 정해졌지만, 박정희 정권 후반기인 1977년 경성방송국 개국일인 2월16일로 변경됐다. 1978년 이후 현재까지는 HL을 배정 받은 9월3일을 방송의날로 기념하고 있다. 경성방송국은 일본 고유 호출부호(JO)를 사용한 ‘JODK’를 썼다.

이날 발표된 조사에서 방송 학계·산업계 전문가 과반(54.6%)은 경성방송 개국일을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23.0%는 한국호출부호 사용일, 22.4%는 한국호출부호 배정일이 시작점이라 답했다.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국.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국.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경성방송국 역사 개국을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기념해야 한다’는 전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41.4%, ‘그렇지 않다’ 32.9%로 긍정 평가 비율이 높았다. 중립적 입장(보통이다)을 취한 응답자는 25.7%로 나타났다.

경성방송국 개국의 성격에 대해선 ‘평가 또는 고찰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항목에 응답자 59.2%가 동의했고, ‘한국방송사(史) 일부로서 객관적 비판적 수용이 필요하다’는 항목엔 74.3%가 동의했다. 경성방송국 역사를 포함한 한국방송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에 대해서도 응답자 과반인 52.6%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송인덕 중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경성방송국을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적 출발점으로서 객관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은 당시 개국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독자적 방송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라며 “그럼에도 축하나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 평가를 해야 하는 비판적 관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한국방송 기원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방송문화’의 출발점은 경성방송국인 것 같고, 우리의 방송 역사는 충칭에서 광복군이 단파라디오를 시작할 때로 생각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1940년대 충칭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단파라디오 방송을 이용해 선전전을 펼쳤다. 김 교수는 “우리가 처음으로 방송을 접하고 의지대로 전파를 사용한 날이 그때쯤”이라며 “(시점이) 정확하지 않다면 1942년 한국어 방송이 처음 된 날로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방송역사·문화와 한국방송을 동시에 기리자는 의견도 나왔다. 백미숙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송문화 혹은 방송역사 100년, 한국방송 80년’이라는 제목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이라는 호명을 빼게 되면 왜 우리가 1927년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가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8월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방송학회 진행된 ‘방송문화 100년: 역사적 의미와 기념에 대한 논의’ 
▲8월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방송문화 100년: 역사적 의미와 기념에 대한 논의’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후원한 세미나로, 사진은 송인덕 중부대 교수의 발제 장면이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생중계

현 한국방송 KBS는 경성방송국 개국일을 기점으로 한국방송 50년, 60년, 70년사를 각각 출간한 바 있다. ‘한국방송 60년사’에는 ‘우리 방송의 탄생은 일제에 의한 1927년이 아니라 광복 이후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역사는 단절될 수 없다는 불변의 원칙에 비춰볼 때 수긍될 수 없는 견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유건식 KBS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1925년 조선일보에서 공개시험방송을 했다. (경성방송국이) 일제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우한 선전도구라는 것 때문에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는데 그 당시 조선인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잠재적 물결이 있었다”며 “이런 부분을 감안한다면 1927년을 너무 부정적으로 가져갈 필요는 없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만 유 소장은 “HL을 받은 날보다는 HL로 방송을 한 날이 기념일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방송의날로 정한 게 10월2일인데, 국군의날 때문에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바꿨다는 말이 있다”며 “새로운 연구팀에서 ‘방송의날’ 의미를 실제 방송했던 날로 잡아가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송인덕 교수도 “방송의날이 한국호출부호 사용날에서 바뀐 시점이 박정희 유신정권 시기였고, 국군의날(10월1일)이 새로 만들어진 배경을 바탕으로 ‘카더라’가 있는데 합리적 추론인 것 같다”며 “9월3일로 변경이 됐을 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러 정치, 사회적 상황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확인을 한다면 10월2일 방송의날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도 인식조사나 설문조사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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