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미디어계열사 ‘티캐스트’가 최근 예능제작국 소속 PD 전원에게 무더기 징계를 추진해 논란이다. 티캐스트가 재심을 신청한 일부 인원의 징계를 취소하고 재징계를 예고한 가운데, 내부에선 졸속 조치로 ‘손 쉬운 인적 구조조정’을 하려 한다는 의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티캐스트는 5월 예능국 제작팀을 통폐합하고, 6월 E채널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담당자에 대한 징계를 내렸다. 예능국 소속 PD 전원(19명)과 E채널 팀장등 20명을 대상으로 해고(1명), 정직(1명), 감봉(3명), 견책(15명) 등을 결정한 것이다. 이는 100여명 규모의 티캐스트 직원중 20%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티캐스트는 태광그룹 계열의 케이블 복수 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로 E채널, 패션엔, 씨네프, 스크린, FOX 등 10여개 방송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티캐스트 계열 E채널에서 방영했다가 최근 잇달아 종영한 ‘노는 언니’와 ‘용감한 형사들’
▲티캐스트 계열 E채널에서 방영했다가 최근 잇달아 종영한 ‘노는 언니’와 ‘용감한 형사들’. 

티캐스트는 PD들이 외주제작사에서 발급한 카드를 지참하거나, 외주제작사 카드로 촬영 현장 식대 등 진행비를 결제해 부정청탁방지법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징계 사유로는 △외부 PD 외주제작사 법인카드 사용인지 및 현황 관리 △외주 제작비 관리 소홀 등을 명시했다.

이후 재심 신청을 받은 티캐스트는 일부 인원의 징계를 취소하면서 재징계를 예고한 상태다. 재심 신청자 16명 중 12명은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주의·경고 처분으로 조정했지만, 4명에겐 ‘재징계 예고 통보서’를 전달한 것이다. 현재 재징계를 예고한 이들에 대해 사내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징계 대상자들은 징계 사유와 절차 모두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외주카드 사용 등은 급박한 예능 프로그램 촬영 현장에서 일상적인 관행인데 이를 징계 사유로 삼았다는 것이다. 당사자 소명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티캐스트 로고
▲티캐스트 로고

타방송사·OTT PD들 “업계 관행, 예능촬영 특성”

해고 징계를 받았다 ‘재징계 예고’를 받은 조서윤 PD(전 티캐스트 예능국장)는 “예컨대 동시간대에 A, B팀으로 나눠 촬영을 진행하면, A팀에서 외주사 카드를 써야 한다. 외주제작사 PD는 B팀과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본사 PD가 외주사의 카드를 긁기도 한다”며 “변수가 많은 예능촬영 특성상, 특히 급한 섭외나 식대처럼 현장에서 필요한 진행비를 지출할 때 많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티캐스트 외의 전·현직 유료방송·지상파·OTT PD들도 본사 PD가 외주사 카드를 지참해 결제하는 일이 이례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 PD는 “실제 예능 촬영 현장은 매우 급박해 닥쳐오는 상황에 개인카드나 외주사 카드를 사용할 때가 많다. 회사는 문제 삼지 않고 회계처리를 한다. 업계 관행”이라고 했다. 또 다른 PD도 “개인카드를 먼저 쓴 뒤 정산하거나 외주사 카드를 쓰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나도 그런 적이 있다”며 “이런 이유로 징계를 받아본 적은 없다”고 했다.

티캐스트가 재감사를 진행하는 과정도 졸속이란 내부 반발을 사고 있다. 징계를 철회한 인원에 대해 ‘재징계 예정’이라고 미리 결론을 통보하거나, 이들에게 카카오톡이나 문자, CCTV를 비롯한 자료 일체를 제출하도록 한 동의서에 서명을 거듭 요구하면서다.

▲티캐스트가 보유한 방송채널 라인업
▲티캐스트가 보유한 방송채널 라인업

당사자 PD들 ”매각 앞서 인건비 줄이려 퇴출 시도”…”매각 계획 없어”

일부 직원들은 티캐스트의 무리한 집단 징계 시도가 ‘퇴사 유도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의심한다. 2020년 독자 콘텐츠를 만들겠다며 스타 PD를 대거 영입한 티캐스트가 2년 만에 전략을 바꾸고 매각을 시도하면서, 영입했던 PD들의 인건비를 줄이고자 자진 퇴사를 유도한다는 주장이다.

조서윤 PD를 비롯한 티캐스트 직원 3명은 지난달 사측의 징계 시도와 재징계 예고 등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조 PD를 대리하는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는 “큰 규모의 회사에서 징계 사유가 입증이 되지 않는 이들을 집단 징계 시도한 것이 의아하고 드문 사례”라며 “이같이 무리한 방식으로 인사·노무 관리하는 회사를 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서윤 티캐스트 PD와 대리인 류하경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는 지난달 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사진=조서윤 PD 측 제공
▲조서윤 티캐스트 PD(전 예능국장)와 대리인 류하경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는 지난달 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사진=조서윤 PD 측 제공

조 PD는 티캐스트 측으로부터 업무 배제와 부당한 강등 발령, 자리 배치 등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티캐스트 측은 5월 중순 조 PD는 기존 예능국장에서 제작1팀 팀원으로 강등 발령했다. 조 PD는 제작1팀장이 자신을 배제한 채 ‘헤드 프로듀서’ 회의를 소집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암동 사옥 당시 개인 집무실이 있던 조 PD는 사무실 기둥 뒤 자리를 받았다. 사측은 “본인이 원해서 간 자리”라 주장했지만 사측이 조 PD 의사를 묻지 않고 해당 자리를 지정했다는 게 조 PD 측 주장이다.

류 변호사는 “재감사 과정에서 ‘재징계 예고’한 직원들에게 이메일과 카카오톡 등 사생활에 대한 자료까지 제출 동의를 거듭 요구하거나, 예능 국장으로 거물급이던 PD를 제작 평팀원으로 발령해 기둥 옆 책상에서 일하도록 하면서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도 심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조 PD는 티캐스트 측이 본인과 면담 자리에서 기밀 사항인 다른 PD들의 연봉을 발설한 데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티캐스트는 미디어오늘에 징계 사유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티캐스트 경영지원팀장은 통화에서 “제작 관행도 있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회사는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며 “재심을 신청했기에 절차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진행 중인 사항이라 자세히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외주사 카드 사용이 업계 관행이란 지적에는 “외주사 카드를 우리 회사 PD가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관련 조항을 묻자 이 관계자는 “외주사 카드로 본사 PD 식대를 계산한 것이다.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징계 무게가 각기 다른 이유로는 “사용 금액에 차이가 있었고 총괄 책임자일수록 무겁게 처분했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진정에 대해서는 “노무사를 선임해 가해자로 지목된 분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피해자라 신고한 분들의 경우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외부 인사를 초빙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징계가 매각을 위한 ‘인력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주장엔 “매각 의지가 없기에 제작본부를 없애지 않은 것이다. (징계는) 내실을 다지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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