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 행보를 보면 ‘패착’에 가깝다.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한 서울시 관악구 반지하 집 현장을 찾아 “왜 미리 대피가 안 됐는지 모르겠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이 되더라고”라고 한 발언도 전파를 탔다. ‘퇴근길에 피해를 보고도 퇴근했다니 대통령이 할 소리인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대통령실은 수해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자택에서 전화로 지시했다고 했지만 관련 발언은 여론을 악화시켰다.

뒷수습도 점입가경이었다. 반지하 집 방문 사진을 카드뉴스로 만들었지만 오히려 참사 현장을 구경하는 듯한 이미지가 부각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해당 사진을 국정 홍보로 활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번 수해로 국민의 어려운 삶을 전혀 체감하지 못한 윤석열 정부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열었지만 오히려 대국민 소통은 온데간데없다. 미국 역대 대통령을 취재한 케네스 티 월시는 ‘백악관의 죄수들’이라는 책에서 백악관 생활이 국민의 일상생활과 멀어져 교감을 떨어뜨리고 국민 소통에 걸림돌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백악관 거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통령실 거품’에 둘러싸여 국민 삶을 체감할 수 없는 상태로 들어선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폭우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신림동 참사현장을 방문한 모습을 대통령실이 카드뉴스로 제작해 홈페이지와 SNS에 게재했다가 비판을 받고 지웠다. 사진=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폭우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신림동 참사현장을 방문한 모습을 대통령실이 카드뉴스로 제작해 홈페이지와 SNS에 게재했다가 비판을 받고 지웠다. 사진=대통령실

언론이 해법으로 내놓은 건 대통령실이 쓴소리를 듣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레드팀’을 구성하라는 주문이다. 각계 인사들이 정부의 취약성을 지적하고 이를 국정운영에 반영하는 게 레드팀 취지이다. 레드팀 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속 깊은 국민 여론을 취합하고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본래 레드팀 역할은 언론과 비슷하다. 정권이 잘못된 정책을 내놓거나 국민 여론과 반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레드팀을 구성하고 주효하려면 과감한 인적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 적어도 극단적인 인사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이미 극우 유튜버 안아무개씨의 누나 채용 문제가 불거졌고, 과거 부정선거 등을 주장했던 인물이 대통령실에 근무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대통령실 홍보수석실 산하 청년대변인으로 발탁된 인물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혐오 발언 의혹 당사자로 떠올랐다. 아무리 레드팀이 제 역할을 하더라도 인적 쇄신 없이는 ‘대통령실 거품’을 없앨 수 없다.

특히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대통령실 거품’을 키우는 상징적 인물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강 수석은 지난 10일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실의 수해 대응을 해명하면서 “비에 대한 예고가 있다고 그래서, 비가 온다고 그래서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합니까”라고 말했다. 명백한 실언이다.

강 수석이 보수 성향 유튜브에 출연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해당 유튜브는 21대 총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등 극단적인 내용으로 시끄러웠는데 대통령실 수석 출연 자체가 적절한지 비판이 나왔다.

시민사회수석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계속 연출하는 것도 문제다. 과거 정부 시민사회수석은 대국민 현장과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를 찾는 일정 등을 소화했다. 사회 주요 갈등 문제를 조율하거나 해결하는 게 주 역할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찾기도 했고, 갈등이 첨예한 노동 문제를 물밑에서 조율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강 수석은 윤석열 대통령 구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시민사회수석이 정권 홍위병은 아니지 않은가. 언론이 ‘대통령실 거품’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더욱 매섭게 질타해야 한다. 과거 이런 인물이 있었다면 언론은 어땠을까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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