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한 반발 속에 대만 방문을 강행한 데 이어 3일 밤 한국에 도착했다. 미-중 긴장 국면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 신문들은 1면 상단에 이를 다뤘다. 대다수 신문이 미중 간 전략 경쟁으로 인한 긴장이 군사 충돌로 비화할 것을 우려한 가운데 보수 신문들은 논조 차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사적 인연과 관련된 이권개입 의혹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다수 신문이 4일 사설에서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 주변에서 관련 의혹이 이어지는 상황에 특별감찰관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4일 경향신문 1면
▲4일 경향신문 1면
▲4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4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신중 외교 주문한 신문들… 조선은 “윤 대통령 만나야”


펠로시 의장은 2일 밤(현지시간) 대만에 도착한 뒤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나 “대만과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고 했다. 이어 입법원(의회)을 찾아 반도체 법안을 언급하며 “미국과 대만 반도체산업 협력에 좋은 기회”라고 발언한 뒤 텐안먼(천안문) 민주화 시위 당시 학생 지도자이자 위구르인인 우얼카이시와 2015년 중국 당국에 납치됐다 풀려난 랍윙키(린룽지) 등을 잇달아 접견했다.

중국은 즉각 대대적인 군사행동과 경제보복 조치에 착수했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 한밤중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를 긴급 초치(불러들임)했다. 이후 중국군은 펠로시 의장 도착 직후 대만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벌인 데 이어 4~7일 대만을 에워싼 형태로 6곳에서 실사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천연모래 수출과 일부 대만산 식품 수입을 중단시켰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있어야 할 조치는 모두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다면 한다”고 말했다.

▲4일 중앙일보 1면
▲4일 중앙일보 1면

한국일보는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영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영해에 해당하는 12해리 이내에 군사활동을 자제해왔다”며 “그러나 펠로시 의장의 방문 직후 12해리 이내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 대만 영해를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남중국해 영유권 공고화 작업에 나선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일보는 왕장위 홍콩시립대 교수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중국은 펠로시의 방문을 대만에 대한 통제령 강화에 활용할 것”이라며 “군용기의 대만 영공 진입이나 군함의 대만 영해 통과 등이 중국이 사용할 카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한 대만 언론은 대만 정부 쪽이 초청 철회 의사를 밝혔지만 펠로시 의장이 ‘이번이 아니면 적당한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고 했다.

▲4일 한국일보 1면
▲4일 한국일보 1면

3일 오후 대만 일정을 마친 펠로시 의장은 4일 한국에 도착했다. 펠로시 의장은 북한 핵실험과 인권 문제에 우려를 표할 것으로 신문들은 관측했다. 펠로시 의장은 4일 오전 김진표 국회의장과 면담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해 오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할 계획이다. 대통령실은 3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가 이날 오후 만남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고, 이후 다시 ‘회동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 간 최고조에 이른 긴장에 9개 일간지가 모두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대다수 신문이 기사 제목에서 미·중 간 갈등 국면에 초점을 맞췄다. 펠로시 의장의 중국을 직격한 발언과 중국의 군사 대응을 함께 전달하거나 펠로시 의장의 방문이 미칠 파장을 언급했다. 기사와 사설에서도 대만해협 위기와 미·중간 충돌 가능성을 우려했다. 다만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펠로시“中인권 최악” 차이잉원 “민주주의 수호”’로 뽑아 펠로시 의장이 밝힌 방문 목적을 그대로 전달했다.

▲4일 경향신문 5면
▲4일 경향신문 5면
▲4일 경향신문 4면
▲4일 경향신문 4면

신문들은 미국, 홍콩 등 외신의 우려도 전했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등은 홍콩 밍보가 사설에서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면서 “어젯밤은 세상을 바꾼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모든 당사자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중 관계가 영원히 바뀌고 대만이 그 중심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만류에도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것은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장기집권을 확정할 당대회를 앞둔 시진핑 주석이) 애국주의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대만에 대한 보복 조처의 강도를 높이고자 할 것이다. 자칫 미국이 직접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이 지역 긴장이 충돌로 이어질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와 수준이 다른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정부의 신중하고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4일 한겨레 사설
▲4일 한겨레 사설

보수신문들은 사설에서 펠로시 의장 방문에 일부 논조 차이를 보였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대치는 무역과 첨단기술을 넘어 전방위로 확장된 전략 경쟁이 어떻게 무력 충돌의 위기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며 “원치 않는 외교 분쟁이나 갈등에 휘말리지 않도록 진중하게 접근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4일 동아일보 사설
▲4일 동아일보 사설
▲4일 조선일보 사설
▲4일 조선일보 사설

반면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에 “중국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했다. 조선일보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했던 윤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대통령 주변 이권개입 의혹에 신문들 사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 참여해 논란이 일었던 무속인인 전아무개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세무조사 무마와 인사 관련 청탁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계일보는 3일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씨가 최근 한 고위공무원에게 중견기업인의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하는 등 이권에 두루 개입하는 의혹이 불거져 대통령실이 해당 고위공무원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4일 세계일보 1면
▲4일 세계일보 1면

김건희 여사가 과거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할 당시 전시회를 후원한 업체가 최근 12억여원대 관저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맡아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통령실 용산청사 건축 설계와 감리도 코바나컨텐츠 후원 회사가 맡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통령실은 무속인 문제에 대해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사실관계를 확인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후원업체 논란엔 “공사 대금을 지급해 후원 관계가 아니다”라면서도 해당 업체가 공사에 참여했는지는 “보안으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일보는 “과거 정부에서도 대통령과 주변 인사와의 친분을 등에 업은 이권 개입 시도를 제때 막지 못해 국정동력 자체를 뒤흔든 경우가 많았지만 대개 임기 후반부였는데, 지금은 막 출범 석 달도 안 된 시점”이라며 “현 정부에 권력 핵심부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사정기능이 없어서”라고 했다. 한겨레는 “대통령실은 지금이라도 관저 공사에 김 여사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전모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특별감찰관 임명 등 취약한 감시 시스템 확충도 더 늦춰선 안 된다”고 했다.

▲4일 한국일보 사설
▲4일 한국일보 사설
▲4일 세계일보 사설
▲4일 세계일보 사설

전씨 민원청탁 의혹 관련 보도를 내놓은 세계일보는 1면과 사설에서 특별감찰관 임명이 시급하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벌써부터 이런 잡음으로 발목을 잡히다니 어이가 없다.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형사 처벌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대통령 가족과 사촌 이내 친·인척, 대통령실의 수석비서관 이상을 감시할 권한이 있는 특별감찰관 임명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국민일보도 “지금 대통령실에는 특별감찰관이 필요하다”는 사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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