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렇게 하고 자면 죽어”

“너 이렇게 하고 자면 죽어” 방 문도 창문도 꽉 닫고 침대 주변에 사방으로 커튼을 치고 그 안에 선풍기를 틀고 자는 룸메이트에게 내가 한 말이다. 그 친구는 “안 죽어”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매우 근심하며 다급하게 다시 말했다. “아니야.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 틀고 자면 죽을 수 있어. 위험해”

2006년이었던 것 같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첫 해, 그 때 처음봤다. 두려움 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는 사람을.

그 친구는 “나는 평생 이렇게 하고 잤어. 걱정하지마”라고 말했지만, 나는 너무 걱정되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 방 문을 조금 열어놓고 잤다. 그 친구의 커튼도 열어 놓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그 친구는 그 날 밤 죽지 않았다. 내가 우리 방 문을 살짝 열어놓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밤 뿐만 아니라 여름 내내 죽지 않았다. 내가 매일 밤 우리 방 문을 열어놓아서 그랬을까..? 어떤 날에는 까먹고 문을 열어 두지 못한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도 그 친구는 죽지 않았다.

▲ 선풍기. 사진=gettyimagesbank
▲ 선풍기. 사진=gettyimagesbank

심리학이 전공이었던 탓인지 어느 날 수업 중에 유사과학(pseudo science), 도시괴담(urban myth)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미신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미신들 중에서도 나름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처럼 믿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런 걸 믿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고 자면 방 안에 산소가 없어져서 죽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내용이 나오는 거다.

엄청 깜짝 놀랐다. ‘이걸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걸 모르는 건 중대한 안전문제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만 믿는 미신’이라는 교수의 설명 그리고 ‘이런 걸 믿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라는 학생들의 반응에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직접 인터넷 검색창에 fan death(팬 데스: 선풍기 살인)를 검색하고 읽으며 차차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의 검색 실력 탓인지 한국 사람들이 어쩌다 선풍기 살인을 믿게 된 아주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잠을 자다가 사망한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원인을 밝혀낼 수 없자 ‘문을 닫고 선풍기를 켜고 있었다는 것’이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됐고 그게 널리 알려진 것 같다. 아마도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혹은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사망하게 된 사건일 것 같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내가 확신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구나’,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내용이어도 잘못된 정보일 수 있구나’라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럴리 없어”

“그럴리 없어” 많은 사람들이 다양성훈련, 성교육, 성평등교육을 통해서 간성(intersex, 인터섹스)에 대해서 처음 접했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간성은 모든 사람을 여성 혹은 남성 둘 중 하나로 나누는 성별이분법에 딱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성별을 나누는 기준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외부성기의 모양’은 딱 두 가지만 있지 않다. 둘 중 하나로 구분할 수 없게 애매한 경우도 있고 섞여 있는 경우도 있고 둘 다 있는 경우도 있다. 같은 빈도로 많이 언급되는 기준인 ‘성염색체’라고 불리는 ‘23번 염색체’ 역시 딱 두 가지(XX 혹은 XY)만 있지 않다. XO, XX, XXX, XY, XYY, XXXY 등으로 다양하다. UN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1.7%의 사람이 간성으로 태어날 확률이 있다고 한다.

성별이 여성과 남성 딱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와! 정말 신기하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말도 안된다’, ‘그럴리 없다’와 같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그런건 장애라고 해야지 성별이라고 해서는 안될 것 같다’와 같은 완곡한 표현으로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간성의 존재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게 ‘선풍기 살인’이 그랬던 것처럼 ‘성별 이분법’이 너무 당연하고 확실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인 거다.

▲ 인터섹스(intersex) 깃발. 사진=위키백과
▲ 인터섹스(intersex) 깃발. 사진=위키백과

얼마 전 보건교사이신 분들은 대상으로 ‘포괄적 성교육이란 무엇인지’ 포괄적 성교육의 개념과 내용 그리고 방법론(참여형 성교육 만들기)에 대해서 온종일 워크숍을 진행했다. 평소 학교에서 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이라서 관심도 높고 이해도도 높았다. 그런데 간성 배제와 성별이분법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지정성별, 시스젠더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와 같은 개념들을 유독 어려워 하시기도 했다.

[용어 정리]
지정성별 : 외부성기 모양만으로 지정받은 성별
시스젠더 :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자신이 인지하는 자신의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시스젠더 중심주의 : 모든 사람이 반드시 시스젠더여야 한다는 생각
이성애자 : (성별 이분법을 전제로) 자신과 다른 성별의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
이성애 중심주의 :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여야 한다는 생각

내가 지난 주에 만났던 보건교사들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확고하게 성별로 이분화 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전제 자체를 흔드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성별로 이분화 되어 있는 사회가 아닌 다른 모습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 ‘불편함’을 넘어서 ‘불쌍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랑하니까 반대한다”, “불쌍한 성소수자들을 죄악으로 부터 구해 주세요.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니다. 성소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와 같은 발언을 들을 수 있는 이유다.

원래 그런건 없다

그 어디에도 원래 그런건 없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수 없는 내용을 누군가가 임의로 ‘이것만이 정답이다’라고 정해두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틀을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고 도전해야 한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 가야한다’고 믿게 하는 학력학벌중심주의, 사람 목숨 값이 너무 싸서 사람이 아무리 죽어도 신경쓰지 않는 천박한 자본주의,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만연하게 하는 남성중심주의 등 우리에게 “기본값”으로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이게 정말 사실인가?’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을까?’,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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