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들이 ‘내가 틀렸다’(I Was Wrong About…)라는 주제로, 과거 칼럼에 스스로 잘못된 점을 밝히는 기획에 참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코너에 8명의 ‘정정’ 칼럼을 게재했다.

이 코너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언론이 먼저 모범을 보인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뉴욕타임스는 “양극화의 시대, ‘에코챔버’(확증 편향)를 확대하는 소셜 미디어 속에 점점 빠져들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은 선의의 지적인 토론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이 틀렸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뉴욕타임스 'I was wrong' 기획 코너 첫 화면. 
▲뉴욕타임스 'I was wrong' 기획 코너 첫 화면. 

‘내가 틀렸다’에 참여한 필진은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뉴욕 시립대 교수 △여성 인권을 중심으로 칼럼을 써온 미셸 골드버그(Michelle Goldberg) △미국의 평론가이며 ‘인간의 품격’, ‘두번째 산’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 △사회학자 제이넵 투팩치(Zeynep Tufekci) 노스캐롤라이나 사회학 교수 △퓰리처상을 수상한 월스트리트저널(WSJ) 오피니언 편집 부책임자출신 브렛 스티븐스(Bret Stephens) △퓰리처상을 3번 수상한 칼럼니스트이자 국제 분야 전문가이며 ‘미국쇠망론’, ‘늦어서 고마워’ 등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 △테크 칼럼니스트 파라드 만주(Farhad Manjoo) △뉴욕타임스의 첫 여성 주필이었던 칼럼니스트 게일 콜린스(Gail Collins) 등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1년 전 ‘인플레이션’에 대해 쓴 글이 틀렸다고 정정했다. 지난해 그는 조 바이든 정부가 펼친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부양책으로 논쟁이 일었을 때 어떤 사람은 위험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자신은 느긋하게 상황을 봤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로 오르는 상황이다. 폴 크루그먼은 “팬데믹 상황 속 혼란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봉쇄 파급 효과 등이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자신이 쓴 과거 칼럼이 틀렸다고 정정한 폴 크루그먼. 사진출처=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인플레이션에 대해 자신이 쓴 과거 칼럼이 틀렸다고 정정한 폴 크루그먼. 사진출처=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여성 인권과 관련해 칼럼 등을 써온 미셸 골드버그는 ‘앨 프랭컨’(Al Franken)에 대해 잘못 썼다고 밝혔다. 2017년 ‘미투’ 운동이 한참일 때 앨 프랭컨 민주당 상원의원이 코미디언 시절인 2006년 동료 여성들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앨 프랭컨에게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칼럼을 썼던 미셸 골드버그는 사실에 대한 조사 없이 그에게 사임을 요구한 것을 후회했다고 썼다.

그는 “이러한 일은 적법한 절차가 중요하며 조사가 없었던 것 때문에 지속적 상처를 남겼다”며 “냉정한 시스템은 정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해 시스템에 의한 조사가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경우, 이후로도 사실관계에 대한 논란 등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가 우선이라는 의도로 읽힌다. 

평론가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본주의’에 대해 쓴 자신의 칼럼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을 고수하며 비판에 맞서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때론 달라진 세상에서 견해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썼다. 자신이 젊었을 적 열정을 가지고 공부했던 경제적 해결책을 위주로 최근의 경제 정책을 바라봤고 그것이 최근의 상황과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내용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신이 과거에 자본주의에 관련한 글을 정정했다. 사진 출처=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신이 과거에 자본주의에 관련한 글을 정정했다. 사진 출처=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제이넵 투팩치 노스캐롤라이나 교수는 ‘시위’를 다룬 자신의 과거 칼럼이 틀렸다고 했다. 자신 역시 대규모 시위 등에 자주 참여했지만 현대의 조직화된 사회운동은 물리적인 규모의 문제라기보다, 인터넷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이 되는 경향으로 인해 과거와 달라졌다고 짚었다. 다만 그는 “시위가 무의미하거나 큰 행진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그들은 연대를 만들고 삶을 바꾸고 반대 의견을 강조하지만, 대규모 시위는 과거와는 다른 궤도를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이며 칼럼니스트인 브렛 스티븐스는 트럼프 지지층에 대해 쓴 2015년 8월 칼럼에 대해 ‘잘못 썼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트럼프를 끔찍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당신이 끔찍하다”는 구절을 썼는데 자신이 평론가로서 쓴 구절 중 최악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지지층을 분석하면서 다음부터는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라면서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을 설득하고자 하나면 먼저 당신은 그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칼럼을 마무리했다.

퓰리처상을 3번 수상했고, 작가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의 검열 정책에 대해 쓴 자신의 칼럼이 잘못됐다고 썼다. 그는 2006년, 2009년 자신이 쓴 칼럼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중국이 자유시장경제와 자유 언론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는데 “중국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다”라고 썼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의 검열에 대해 과거 자신이 쓴 칼럼을 정정했다.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의 검열에 대해 과거 자신이 쓴 칼럼을 정정했다.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IT 칼럼니스트 파라드 만주는 ‘페이스북’에 대한 자신의 과거 칼럼이 잘못됐다고 썼다. 그는 “나는 모두에게 페이스북에 가입하라고 말했다”라며 “하지만 그때나 그 이후로 페이스북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면 인터넷과 세계는 더 나은 곳이 됐었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자신이 신기술에 도취되었지만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 등을 사들이며 사용자의 개인적인 데이터와 관련해 그들을 단속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게일 콜린스는 2012년 대선 당시 밋 롬니의 캠페인이 지루하다는 칼럼을 바로 잡으면서 “트럼프를 겪으니 지루한 것보다 심한 게 있었다”고 적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이런 시도에 한국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22일 기사에서 뉴욕타임스의 해당 칼럼을 다뤘는데, “NYT가 진보 성향이 강한 신문인 만큼, 칼럼니스트들의 반성은 주로 중도·보수적 관점을 놓쳤다는 고백이 대부분”이라는 해석을 붙였다. 앞서 조선일보는 2020년 100주년 기획에서 자신들의 오보를 다루는 기획을 선보인 바 있다. 

[관련 기사: 조선일보 100년 맞아 “과거 오류 사과드린다”]

한겨레는 25일 논설위원 칼럼에서 “이들의 ‘정정 칼럼’을 보면 이들은 ‘잘못된 칼럼’ 이후에도 계속 생각을 다듬어왔음을 알 수 있다”며 “전문가들은 오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오류가 드러나면 고민하고 수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먼저 오류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미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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