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모욕 고소·고발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소 처리 건수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약 1만1000건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는 대부분의 명예훼손·모욕의 고소·고발이 심각한 수준의 인격권 침해가 아닌 경우에도 남발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14일 오픈넷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명예훼손·모욕으로 접수된 사건은 2010년 2만2777건에서 2020년 7만9910만건으로 10년 사이 약 4배 가량 급증했다. 명예훼손 사건은 2010년 1만4912건에서 2020년 3만5518건으로, 모욕 사건 역시 2010년 7865건에서 2020년 4만4392건으로 크게 늘었다.

▲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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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접수사건 중 기소 처리된 건수는 연간 약 7000건에서 1만2000건 사이로, 평균 약 1만1000건 수준이었다.

이 통계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오픈넷이 분석한 것이다.

이 같은 수치에 오픈넷은 “개인간의 분쟁 상황이나 게임, 커뮤니티 등 온라인 공간에서 오간 언쟁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형사사건으로 자주 비화되고 있는 현상, 그리고 많은 정치인, 공인들이 자신들에 대한 의혹제기나 부정적인 표현들에 ‘가짜뉴스, 악플에 대한 선처 없는 법적 대응’을 곧잘 선언하며 비판적 여론을 진화시키려는 현상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표현의 자유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뿐 아니라 매년 8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표현행위로 인해 형사피의자 지위에 놓여 심리적 위축 및 생업에 지장을 겪는 문제, 중대 범죄에 집중되어야 할 수사력이 낭비되는 현실적 문제와 사회적 부작용도 동반한다”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현행 명예훼손, 모욕죄 등 규제에 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픈넷은 “명예훼손에 대한 비범죄화는 전 세계적 추세”라고 지적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유럽평의회는 당사국들에게 명예훼손의 비범죄화를 권고했고, 최소한 ‘징역형’을 부과하는 형사법 규정은 폐지돼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오픈넷은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발언이라면 ‘진실’, ‘허위’를 불문하고 일단 모두 형사범죄를 성립할 수 있게 해 사실상 명예훼손 고소, 고발인이 공표된 사실이 ‘허위’임을 입증할 필요가 없게 만들기 때문에 명예훼손 고소, 고발의 남발을 더욱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죄는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피해자가 아닌 제3자도 고발을 할 수 있어, 공인에 대한 비판적 표현물에 팬덤, 지지단체, 종교단체, 대리단체 등이 고발을 남발하는 경우도 많다”고도 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장슬기 기자

오픈넷은 모욕죄에 관해 “‘모욕’ 행위가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 외부의 평가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이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모욕죄 역시 위헌성이 높다”며 “공인들이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대중을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많이 남용되고 있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박주민 의원안) △인터넷상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박주민 의원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김용민 의원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사생활의 비밀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사실의 적시’로 축소하고 모욕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최강욱 의원안) 등의 발의돼 있다.

오픈넷은 “국회가 본 법안들을 조속히 통과시켜 다수의 시민이 표현행위로 인해 형사피의자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고 국제인권기준에 걸맞는 포현의 자유 수준을 확립해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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