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미디어 이용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전북 시민단체들과 수어통역사들이 직접 모여 그동안 특히 지역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던 ‘장애인 미디어 이용 권익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전북민언련)은 지난 14일 오후 전주시사회혁신센터에서 ‘모두를 위한 선거방송토론회 방향성 모색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청각장애인과 수어통역사 당사자가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자리였다. 전주방송 보도국장, 전북선거방송토론위원회 간사 등 기술적, 제도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관계자들도 참석해 수어 통역 서비스 증진 방안에 대한 현실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이어갔다. 

전북민언련은 올해 6·1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 전주시수어통역센터와 함께 지역 최초로 후보자별 1:1 수어 통역사를 배치한 ‘모두를 위한 선거방송토론회’를 생중계했다.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지방선거 법정 토론회 두 편(전라북도 교육감, 도지사)을 다음날 유튜브를 통해 수어 통역사를 후보자별로 배치한 형태로 재가공-생중계하는 방식이었다.

▲ 5월 25일 전라북도교육감 선거방송토론회 수어방송이 생중계된 말하랑게TV 화면 갈무리.
▲ 5월 25일 전라북도교육감 선거방송토론회 수어방송이 생중계된 말하랑게TV 화면 갈무리.

전체화면의 반을 차지하는 하단에는 수어 통역사 네 명의 모습이 출연자와 같은 크기로 보였다. 영상, 디자인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청각장애인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볼 수 있는 영상화면을 구성해보자는 목표로 만들어진 화면이었다. 통역에 참여한 수어통역사들은 “형식적으로 통역사를 배치한 게 아니고, 청각장애인들의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 5월 27일 전라북도지사 선거방송토론회 수어방송이 생중계된 말하랑게TV 화면 갈무리.
▲ 5월 27일 전라북도지사 선거방송토론회 수어방송이 생중계된 말하랑게TV 화면 갈무리.

하지만 현재 수어 통역 방송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모상근 MBC뉴스 전담 수어통역사는 “TV를 켜고 동시간대 수어통역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번 장애인 방송 하나, 뉴스가 끝이다. 그 외에는 수어통역이 없다”며 “농인의 입장에서는 고장난 TV인 것이다. 청인으로 말하자면, 소리가 나도 볼륨이 30까지 나올 수 있는데 1로만 나오고 자주 꺼지는 TV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세한 표정과 표현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함에도 수어 통역 사이즈 크기가 작아 보이지 않는 등 기술적 문제점도 지적했다. 모상근 수어통역사는 “현장에서도 카메라 감독님께 최대한 사이즈를 꽉 채워서 잡아달라고 하지만, ‘여백의 미’를 걱정하시며 보기좋게, 편하게 해야한다고 하신다. 하지만 수어통역사가 너무 작아서 수어가 안보일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장진석 SBS, 복지TV 전담 수어통역사도 “스마트폰으로 봤을 경우, 내가 봐도 수어 통역이 안보인다. 외국 경우는 화면을 반으로 나눠서 수어 통역을 방송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 수어방송 촬영 모습. 사진=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 수어방송 촬영 모습. 사진=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손주화 전북민언련 사무처장은 “수어통역의 대상은 농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영상의 미를 찾고 있다”며 “영상 편집이 예쁜 게 중요한게 아니고, 대상한테 적합한 화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진석 수어통역사도 “지금은 이런 화면이 비장애인들에게 어색할 수 있지만, 확실하게 보일 수 있게 만든 화면을 더욱 자주 노출하면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어 통역 서비스 구축을 위한 비용, 제도적 문제도 늘 상존한다. 모상근 수어통역사는 “미디어재단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권고 기준으로 만들어놓은 수어통역 자막 사이즈가 1/16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권고안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법 기준이 확장되고 자막 사이즈 기준이 구체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장진석 수어통역사는 “농인들이 수어 화면 크기를 늘렸다가 줄일 수 있고, 위치를 원하는대로 옮길 수 있는 등의 기술은 이미 갖춰져있다. 의지의 문제다. 방송사에서 지원한다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  ‘모두를 위한 선거방송토론회 방향성 모색을 위한 간담회’ 현장. 사진=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  ‘모두를 위한 선거방송토론회 방향성 모색을 위한 간담회’ 현장. 사진=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수도권에 서비스가 집중돼있어 지역에서는 특히 수어 통역 서비스 구축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 강인철 전북선거방송토론위원회 간사는 “선거방송 관련해서는 상당히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며 “지역은 쓸 수 있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더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예산이 확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공직선거법에는 ‘수어통역을 해야된다’라고만 되어있고, 후보자들 각 1:1 통역을 해야한다는 규정은 없다. 빠르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법 개정, 선거관리위원회 규칙 규정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외에도 수어통역사 배치와 인력, 처우 문제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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