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유세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다음날, 한국의 주요 종합일간지들도 이 소식을 1면 머리로 다뤘다. 아래는 9일자 8개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아베 전 총리, 유세 중 총격 사망
국민일보: 아베 전 총리 유세 중 총격 사망…日 열도 충격
동아일보: ‘日우익 상징’ 아베, 유세중 피격 사망
세계일보: 아베 前 日총리, 유세 중 피격 사망
조선일보: 日 ‘보수의 심장’ 아베, 피격 사망
중앙선데이: 아베 전 일본 총리, 유세 도중 총 맞고 사망
한겨레: 아베, 피격 사망
한국일보: 탕 탕…총격에 스러진 일본 보수 아이콘

8개 중 7개 신문은 총을 맞은 오른쪽 가슴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아베 전 총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했다. 경향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는 핏자국이 있는 부위를 모자이크 처리했다.

▲7월9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7월9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국민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경우 모자이크 처리 없이 핏자국이 적나라한 사진을 사용했다. 조선일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로 의식 잃은 아베 전 총리의 얼굴이 가장 잘 보이는 사진을 택했다. 동아일보의 경우 아베 전 총리 사진 우측에 그에게 총격을 가한 가해자의 사진을 배치하면서, 살해에 사용된 총기를 강조하는 표시까지 썼다.

이런 모습을 1면에 싣지 않은 신문은 한겨레가 유일하다. 한겨레는 1면에 아베 전 총리의 얼굴을 크게 확대한 사진을 쓰면서 ‘아베, 피격 사망’이라는 제목을 썼다. 이어진 3면 기사에선 혈흔 부위를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을 사용했다.

아베 전 총리 소식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는 전날 일본 언론과도 대비된 바 있다. 피습 소식이 전해진 8일 오후, 상당수 국내 언론사는 아베 전 총리가 피 흘리면서 쓰러진 사진을 홈페이지에 내걸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홈페이지에 아베 전 총리에게 총격을 가한 용의자가 제재 당하는 사진, NHK가 아베 전 총리의 연설 모습이 담긴 사진을 사용한 것과 대비됐다.

▲7월9일자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1면 사진
▲7월9일자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1면 사진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제15호(선정적 보도 지양)는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국내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8일 “중대한 사건인 만큼 보도사진을 통해 그 심각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수 있으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안의 심각성은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피 흘리는 끔찍한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것은 보도윤리에도 어긋난다”(‘클릭’ 노린 아베 전 총리 피격 사진, 49개 언론 모자이크 없이 도배)고 지적한 바 있다.

[관련기사: 국내외 매체 홈피에 걸린 아베 전 총리 피습 사진의 미묘한 차이]

아베 전 총리 시절 명암 평가 엇갈려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가 집안 출신이자 일본 우익의 상징으로 꼽힌다. 그의 지난 생애를 돌아보고 평가하는 기사들은 매체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아베가’에 대한 평가. 조선일보와 한겨레 평가가 가장 단적으로 엇갈린다. 조선일보는 “친조부부터 3대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겨레는 “일본의 ‘세습 정치인’ 중 하나였던 아베 전 총리는 당시 중요 현안으로 떠오른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우익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문장으로 아베 전 총리를 소개했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제정책에 대해선 조선일보가 가장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양적 완화, 재정 지출 확대, 기업 체질 개선 등 이른바 ‘세 가지 화살’을 쏘아 올린 결과 일본 사회와 경제가 모처럼 활력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아베 취임 당시 8000대에 머물러 있던 닛케이225 지수(일본 코스피 지수)는 그가 퇴임하기 전 2만3000대까지 올랐다”는 평가다.

▲7월9일 한겨레 기사
▲7월9일 한겨레 기사

그러나 ‘아베노믹스’는 명과 암이 분명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앙일보의 경우 아베노믹스를 두고 “초기엔 실업률이 낮아지고 증시 등 경제에 활기가 돌면서 한때 76%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면서도 “돈 풀기 효과였을 뿐 일본 경제의 근본적 체질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적잖았다”고 평가했다. “최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아베노믹스로 인한 극도의 저금리 정책이 일본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는 것이다.

한일관계가 부정적이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한국일보는 “한국과 과거사 및 독도 영유권 문제로 사사건건 대립했다. 정치적 뿌리가 강경파이던 그가 반한 정서를 이용해 지지층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나온다”며 “2015년 박근혜 정부와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으나 이후 문재인 정부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며 보류했다. 이후 아베 전 총리는 위안부와 징용 노동자를 강제연행했던 증거가 없다고 부인하기도 했다”고 봤다. 2019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한 일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온 조치였다”고 했다.

한겨레는 “아베 전 총리는 지난 식민지배에 대해 더 이상 사죄와 반성을 할 수 없다는 ‘역사 수정주의자’였고, 또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려는 ‘우익’이었다”며 “2015년 12월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이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이 합의를 통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 했다”는 평가다. 2016년 10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 요구에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거부한 일화도 전했다.

▲7월9일 조선일보 기사
▲7월9일 조선일보 기사

반면 조선일보는 ‘위안부’ 합의 파기에 대해 “양국이 맺은 위안부 합의가 2017년 문재인 정부에 의해 사실상 파기되고,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놓자 아베는 2019년 7월 반도체 관련 부품 등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행했다. 한일 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경제적 보복을 취한 것으로 전례 없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통한 평가도 긍정적 면에 집중됐다. 박 교수는 조선일보에 “아베는 전후 체제에 머물러 있는 일본을 개혁하고, 일본을 다시 부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던 큰 정치인”이라며 “한국에선 역사적 이슈로 갈등한 사실만 널리 알려져있지만 아베는 한·일 우호 관계 구축이 갖는 중요성과 의의 역시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래는 위에 언급된 기사들 제목이다.

경향신문: 군사·경제 부흥 앞세워 우경화 주도…총리 때 한·일관계 최악
조선일보: 아베노믹스 이끈 일본 최장수 총리
중앙일보: 역대 최장수 총리, 강경 우익 아이콘…주변국과는 마찰음
한겨레: 8년 8개월 최장수 총리…전쟁 가능 국가가 “필생 과업”
한국일보: 일 역대 최장수 총리, 야스쿠니 참배로 갈등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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