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법, 즉 차별금지법제정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단식투쟁이 국회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여야 등 정치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답답하고 화나는 일이다. 평등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이유로 든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우리나라는 차별이 제도화 되어 있는 ‘평등 후진국’이다. 같은 노동을 해도 정규직이냐 아니냐에 따라 처우가 달라지는데 이를 당연시 여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사부터 이런 잘못된 관행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방송사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지만 공영방송조차 그것을 스스로 알아서 개선하려하지 않고 차별을 제도화한 현행법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사회적 목탁이라는 언론이 이지경이니 언론이 전체 사회의 평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방송사 지배구조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 스스로 지배구조는 물론 언론 노동자 평등 문제에 대해 해법을 실천한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네 탓이야 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언론을 보면 가슴 아프고 절망스럽다.

노동현장에서의 평등은 유럽연합 노동법이 제시한 ‘동일직장-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최선이다. 유럽연합 29개 회원국 노동자들은 이 원칙에 따라 회원국 어느 곳에서든지 취업하지만 노사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이 남북교류협력, 통일을 지향한다면 노동현장의 평등부터 달성해야 한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적응치 못하고 도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절규를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5월17일 국회 앞에서 지방선거 전 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5월17일 국회 앞에서 지방선거 전 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종교계의 성소수자 반대는 대자본의 대리전쟁?

고(故) 변희수 전 하사는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자신이 강제 전역 된 지 624일 만에 승소했다. 그러나 변 전 하사는 ‘사회적 타살’을 당한 뒤여서 그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평등법은 변 전 하사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면서 전체 사회의 평등 지수를 높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자는 취지의 법이다.

국내에서 평등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일부 종교계가 성소수자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하면서 국회가 선거를 의식해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자세히 살필 경우 뭔가 부자연스럽다. 노동현장의 평등화에 거대자본 이나 악덕 대기업 등이 임금착취를 못하게 될까가 반대하고 있지만 종교계가 앞장서면서 그 뒤에서 숨어 있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이윤 추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의 논리에서 보면 종교계가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는 꼴이라고 할까. 성소수자 문제는 인간의 성적 지향성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지 오래다. 인간의 성적 정체성은 유전자나 호르몬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타고난 체질과 같은 것으로, 개인적 선택이나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며 후천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제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폐기되고 있다. 성적 소수자는 이성애자 등과 동등한 인권과 권리를 누려야 할 존재로서 관련법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 국가 대만 등 29개국

동성애 결혼의 경우 네덜란드가 2000년 처음으로 합법화한 데 이어 2022년 4월 현재 유럽 일부 국가와 북남미, 호주, 대만 등 29개 국가가 그 뒤를 따랐다. 성적 지향성에 대한 지구촌 차원의 개선 작업은,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가 증가 추세인 것처럼 매우 전향적이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 등은 오래전부터 성소수자 문제에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유엔의 경우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및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OutRight Action International이라는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유엔은 2007~2017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아홉 차례 권고했으나 2022년 4월 현재 실현되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HRW)는  LGBT 등 성적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면서 각계각층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 HRW는 전 세계적으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이유로 가해지는 폭력을 폭로하고 공개하고 있다(https://www.hrw.org/topic/lgbt-rights).

인권과 언론의 자유 옹호를 목표로 하고 있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LGBT 등의 성적 소수자가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와 개인의 자율권,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만끽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단체다(https://www.aclu.org/issues/lgbt-rights).

미국의 많은 대학들은 성적 소수자를 위한 각가지 조치나 방안을 실천하거나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다음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https://www.learnhowtobecome.org/college/lgbtq-student-resources/).

인권과 평등의 시계 바늘 후퇴 더 이상 안돼

한국 정부와 국회 등이 외견상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에 굴복해 국제사회의 인권존중 요구나 상식에 등을 돌리는 것은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로 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규범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권과 평등의 시계 바늘이 후퇴하는 한심한 모습이다. 정부와 언론은 진정한 평등과 민주주의 실현에 가장 기본적인 평등법 제정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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