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성상납 의혹으로 당 차원의 조사를 받고 있다. 성매매 현장에서 적발되어 면직된 비서관을 수개월 만에 다시 채용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오늘 기준(5월16일) 언론의 해명 요구에 묵묵부답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보좌관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박완주 의원을 제명했다. 같은 당 최강욱 의원은 당직자들이 참여한 화상 회의에서 불쾌한 농담을 던져 곤욕을 치렀다. 대한체육회 출신 신임 조용만 문체부 차관은 체육회 사무총장 시절 회식 자리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검찰 재직 시절 성비위로 징계성 처분을 받은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은 그가 쓴 시집 안에 담긴 부적절한 성적 상상력으로 빈축을 샀다. 이 외에도 최근 언론에 오른 정치계의 성폭력, 추행, 비위는 차고 넘친다. 지면이 모자라 적을 수 없을 뿐이다.

도대체 한국 정치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성욕을 주체 못하는 일부 중년 남성들이 문제라면 이들을 엄단하고 다수 여성으로 자리바꿈하면 되지만 사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여권 신장은 없었고 김건희 여사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에 대해 후진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내며 2차 가해를 저질렀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에 대응하기 위해 모인 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들은 온라인 단체 채팅방에서 가해자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피해 호소인’이라는 해괴한 수사를 고안했다. 권력의 핵심부에 근접할수록 여성조차 성폭력에 방관하거나 공모한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무딘 성인지 감수성과 성착취는 권력 중심을 구성하는 필수 자질처럼 보인다. 반복되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근저에는 우리가 ‘남성성’이라 부를만한 특별한 유형의 중력이 작동한다.

▲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 1월16일 방송 갈무리
▲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 1월16일 방송 갈무리

문화 연구자 존 피스크가 남성들이 좋아하는 대중문화물을 분석하며 선별한 특징들은 ‘남성성’의 외설적이고 도착적인 측면을 잘 보여준다(존 피스크 저, 「텔레비전 문화」참조). 겉보기에는 무척 낭만적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과묵한 주인공은 기업, 정부, 폭력단 같은 공적 영역을 배경으로 살아가며, 범인을 잡거나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복수를 하는 식의 성취 지향적 특성을 보여준다. 배신, 음모, 협잡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련을 버티고 견뎌낸 충직한 주인공은 소수 동료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과업을 달성하지만 사회는 그의 희생과 헌신에 무심하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를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대의를 지켜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남성성’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좌절, 모순, 불만을 은폐하거나 상상적으로 해소하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생물학적 남성과 구분되는 만들어진 ‘남성성’은 실은 경영자가 선호하는 좋은 일꾼의 자질과 다를 바 없다. 군말 없이 상명하복하고 회사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실하고 충실히 과제를 수행하는 규율 말이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호감을 표현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는 일은 성과 지상주의 아래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는 빌미를 만든다. 가정과 사적 행복은 공적 성취 뒤에 따르는 부수적 전리품으로 격하된다. 그러니 이성을 대하거나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나보다는 조직의 논리나 대의가 전면에 나선다. 사생활 흠결은 그것이 공적 성취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놓고 흠결을 공유하는 일이 그가 얼마나 공적 조직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는가를 드러내는 징표가 된다.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남성성’을 성공적으로 내면화한 과묵한 이들만 남아 조직은 동질화된다.

▲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 연합뉴스
▲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 연합뉴스

정치는 이와 같은 만들어진 ‘남성성’의 폐해를 폭로하고 교정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무대여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 일련의 ‘남성성’이 정치의 고유성을 훼손시켰다. 그 결과가 최근 아니, 수년 전 부터 계속 터지는 정치계 성폭력, 추행, 비위의 본질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타인의 애정 또한 호혜적으로 구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남을 설득하는 정치권력의 중심에 자리했다. 이들을 단죄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더불어 오염된 정치를 정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남성성’의 정치에 종언을 고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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