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를 판단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을 연출한 이승준 감독이 개봉을 앞두고 한 말이다. 그의 작품을 지지해왔지만, 이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영화는 정경심 교수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받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관련 판결문에 어떤 부당한 점이 있는지, 당시 조사받았던 동양대 조교가 어떤 압박을 당했는지 소상히 짚는다. 장경욱 교수, 박준호 씨 등 관련자 인터뷰도 비중 있게 다뤘다. 이 과정을 거쳐 ‘검찰과 언론이 주도한 조국 사태가 부당했다’는 또렷한 맥락을 형성한다. 조국 전 장관은 현재 자녀 입시 비리 관련 혐의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현재진행 중인 사건의 피의자에게 목소리를 낼 공간을 마련해준 것 또한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는 선택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 스틸컷.
▲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 스틸컷.

연출을 맡은 이승준 감독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스트다. 이름만 유명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 작품을 연출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선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 학생들의 휴대폰 촬영분, 119 신고 음성 등 몇천 시간은 족히 넘는 시청각 아카이브를 모두 확인하고 추려내 29분가량의 단편 다큐멘터리로 편집한 ‘부재의 기억’(2018)이 그렇다. 전 국민이 세월호 트라우마에 허덕일 때 그는 ‘영상으로 기록하는 자’로서 지독한 고통을 감수하는 비범한 헌신 끝에 한 편의 정제된 기록물을 내놓았다. 국내 다큐멘터리로는 최초로 미국아카데미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승준 감독은 작품 속 주인공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능력도 지녔다. 최근작 ‘그림자꽃’(2019)에서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주인공은 자의로 탈북해 우리나라에 정착했지만 딸이 있는 고향 평양으로 돌려보내 달라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주인공 김련희 씨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던 의구심은 그의 남한행에 정말 불순한 의도가 없었을까 하는 것인데, 국정원과 경찰로부터 이런저런 고초를 겪는 주인공을 그저 관조하기만 하는 이승준 감독의 태도에 지속해서 노출되면서 어떤 객관적인 상황 인식에 이르게 됐다. 탈북의 배후를 의심하는 건 보는 이의 자유지만, 주인공에게 고향에 두고 온 딸을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엄마로서의 간절함이 존재한다는 것만큼은 감히 의심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부재의 기억’과 ‘그림자꽃’ 포스터.
▲ 다큐멘터리 영화 ‘부재의 기억’과 ‘그림자꽃’ 포스터.

‘부재의 기억’이 수행한 명백한 사회적 역할이나 ‘그림자꽃’이 보여준 지극한 객관성을 ‘그대가 조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까. 개봉 전 언론시사회로 작품을 먼저 관람한 입장에서 낼 수밖에 없는 답은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전 국민의 마음이 거의 동일한 방향으로 모였던 세월호 참사와 달리 조국 사태는 정치적 지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른 입장을 지니게 되는 사안이다. 탈북자로서 의사 표현에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는 김련희 씨와 달리 조 전 장관은 서울대 교수와 법무부 장관을 거친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기표현의 창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단, ‘그대가 조국’이 제기하는 한 가지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마음먹은 대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장날 때까지 ‘털어’버리는 검찰이 늘 옳은 판단만을 내리는가. 진범이 따로 있는데도 무고한 이를 기소해 피해자가 10년간 옥살이해야 했던 2000년의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사건’이나, 위조된 문서를 증거 삼아 재판에 나섰던 2013년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처럼, 견제받지 않는 대단한 권력 때문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본 이들의 사례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언제든지 따져 물어야만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들만큼 조 전 장관도 무고한가. 조 전 장관은 자신에게 흠결이 있음을 인정해왔는데, 그럼에도 ‘그대가 조국’ 감독과 제작진은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어떤 판단을 전제하는가. 온전한 평가는 관객의 손에 달려있다.

▲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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