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미디어혁신위원회’를 구성해 방송·통신 심의 체계를 자율심의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는 목소리가 많은데 ‘기반 조성’과 ‘정교한 자율규제 틀’ 마련이 관건으로 꼽힌다.

지난달 28일 박성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간사는 “심의 체계는 방송 공정성의 마지막 보루지만,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제도는 오히려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새로 만들어질 미디어혁신위원회에서 민간 중심의 자율심의 제도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성중 간사는 자율심의 전환에 관해 “그동안의 노하우와 자료 데이터베이스화가 어느 정도 완료되면 자율규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라고 밝혔다.

▲박성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간사의 브리핑 모습.
▲박성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간사의 브리핑 모습.

방통심의위는 방송(지상파·종편·전문편성·방송광고·상품판매방송)과 통신(법질서·사회법익·정보문화·권리침해), 권익보호(저작권·명예훼손·민원상담), 디지털성범죄 등 심의를 진행한다. 방통심의위의 방송과 통신 심의는 사실상의 행정기구가 직접 미디어를 심의한다는 점에서 ‘과잉 규제’로 꼽혀왔다. 더구나 정부·여당이 위원 다수를 추천하는 구조이기에 ‘정치 심의’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당초 방통심의위에선 ‘심의위원회가 없어지거나 방통위에 통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자율규제 전환’이 정책으로 제시된 만큼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방통심의위 직원 A씨는 ‘누가 자율심의를 맡을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자율심의 제도가 말이 쉽지 1~2년 안에 바로 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장기 과제다. 사업자들이 과연 자율규제를 원할지도 의문이다. 부담감과 책임을 떠맡겠다고 나설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신문 자율기구 같은 곳을 보면 강력한 제재를 했나? 메이저 신문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되지 않았나. 방통심의위 축소가 당장은 빨리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 직원 B씨도 “자율심의 제도로 가는 게 방향성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한국 상황을 비춰봤을 때 의구심이 있다. 심의는 정부 주도, 민관합동 코레귤레이션, 세이프 레귤레이션(자율심의)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은 아직 자율규제 기구가 회원사 위주로 구성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물론 KISO는 자체 심의 규정을 만들어 심의하고 있다. 이런 곳도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직접 도움을 주는 곳이라 포털사의 영향력이 많이 미칠 수밖에 없다. 아직 자율규제 단체 기반 조성, 이용자들의 성숙한 문화 의식 등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KISO(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2009년 네이버와 카카오(구 다음), 야후코리아, SK커뮤니케이션즈 등 주요 인터넷 사업자들이 모여 만든 자율규제 기구다. 사업자들이 스스로 이용자 콘텐츠, 서비스 운영, 온라인 광고 등 전반을 심의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정부 기관이 표현물을 심의해 법적 강제성을 가진 처분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 국가 기관이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통제하고 남용될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자율규제”라고 강조하며 KISO 등 사례를 언급했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실상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으로 검열의 위험이 높다”면서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권한을 ‘민간자율단체로 이양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자율심의 전환’이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구체적 모델이 필요한 상황이다. 방통심의위원을 역임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바람직하다고 해서 곧바로 제도화되긴 어렵다. 자율규제를 수행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하고 이 기구를 인증하는 제도도 운영돼야 한다”며 “여야 모두 자율심의 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졸속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현재 방통심의위의 심의 기능 가운데 보도와 광고 부분을 자율규제로 맡겨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차 심의를 자율규제 기구에서 논의해 행정지도(권고 및 의견제시)를 결정하고, 법정제재를 해야할 사안은 방통심의위가 2차 심의만 전담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방통심의위는 자율규제기구를 인증하고 자격 조건을 관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는 “첫 단계에서 자율규제로 맡길 수 있는 부분은 30% 정도다. 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 뉴스와 광고, 드라마 등 부문의 행정지도를 자율심의를 맡길 수 있다”며 “자율규제기구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할 경우 자격을 박탈당하는 시스템 역시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독일은 정부 기관의 인허가를 받은 자율규제기구가 직접 심의를 하고, 자율규제기구에서 합의되지 않은 사안이 생기면 행정기구인 미디어청에 심의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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