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지난 3일 원내 4당 대선후보 TV토론이 있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4자토론 지상파 3사 생중계 시청률을 합하면 39%(전국기준)으로, 법정 TV토론 의무화한 1997년 15대 대선 당시 55.7%를 기록한 이후 최대치다. TV 시청률 하락추세를 고려하면 그만큼 한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후보들이 내놓을 비전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이번 TV토론에선 주로 상대의 정책을 비판하며 자신의 공약을 알리는 내용이 많았다. 향후 토론에선 근본적으로 ‘왜 다른 후보가 아닌 자신이어야 하는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떠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답을 내놔야 한다. 시민들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입사할 때도 자신의 경쟁력과 지원동기 등을 필수 질문으로 여기는데 최고 국가지도자라면 더욱 구체적으로 지원동기와 비전을 밝혀야 마땅하다. 상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모두발언이나 마무리발언에 주목할 이유다. 

▲ 3일 지상파 3사가 중계한 첫 대선후보 4자토론. 사진=국민의힘 선대본부
▲ 3일 지상파 3사가 중계한 첫 대선후보 4자토론. 사진=국민의힘 선대본부

‘무엇을 어떻게’ 빠진 윤석열 
“대선은 CEO를 뽑는 선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그간 가장 많이 받은 질문과 비판 중 하나는 ‘미래비전이 무엇이냐’였다. 통상 과거 이력과 성과를 통해 정치인을 판단하는데 윤 후보는 정치 입문 7개월밖에 되지 않아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 또 그가 7개월간 시민들의 삶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할지,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 

윤 후보는 이번 토론 모두발언에서 “국민께서 저를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오늘 제가 여기까지 왔다”며 자신이 대선에 뛰어든 이유를 밝혔다. 2020년 1월 세계일보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후보군에 넣었고 10%대 지지율을 받으면서 황교안 전 대표를 누른 일이 있는데 윤 후보가 과거에도 밝혔듯 해당 여론조사를 계기로 대선에 도전했다. 

국민이 원해서(지지율이 높아서) 대선에 참여했다는 말은 당선을 위한 강력한 힘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어떠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정권교체는 최종 목표일 수 없다. 조선일보 등 보수성향 언론사에서도 그가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운 ‘반사체’로 정권교체 여론을 모아낼 순 있지만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 윤 후보만의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 까닭이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사진=KBS 갈무리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사진=KBS 갈무리

하지만 윤 후보는 모두발언에서 ‘반사체’로서 모습만 드러냈다. 그는 “여러분들, 삶이 많이 팍팍하시죠? 그러나 이권으로 배 불린 사람들은 많다. 사정기관도 사법기관도 온데간데없다.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토론 끝에 내놓은 발언에선 그가 지향하는 곳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윤 후보는 마무리발언에서 “대선은 최고 의사결정자, CEO를 뽑는 선거”라고 입을 열었다. 15년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는 “세상은 CEO를 원한다”며 대통령을 CEO에 비유했다. 대한민국을 마치 주식회사, 대통령을 CEO에 비유했다. ‘성공신화’, ‘CEO형 리더십’, ‘경제대통령’으로서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에도 나온 지적이지만 끊임없이 타협과 소통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정치지도자는 ‘이윤’이라는 제1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회사 CEO와 성격이 다르다.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가 가난이고 이를 해결할 경제성장이 제1의 목표라면 모를까, 불평등과 재분배가 시급한 공동체에서 대통령을 CEO에 비유한 정치관에 대해선 따져볼 일이다. 

윤 후보는 “새로운 산업전략을 통해서 우리의 역동적인 경제 도약과 이를 통해 따뜻하고 생산적인 맞춤 복지를 실현하겠다”며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확실하게 바꾸겠다”고 했다. 새로운 산업전략, 경제도약, 맞춤복지 등 세가지 키워드는 대다수 정치인이 주장하는 메시지로 ‘왜 윤석열이어야 하는지’를 기대하는 유권자로선 아쉬운 메시지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라는 모두발언의 메시지를 반복한 것 역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이 빠진 ‘정권교체 만능론’이다. 

경제·코로나·국제정세 위기 국면
“유능한 경제대통령” 강조한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현재 한국상황을 위기국면으로 규정하며 자신이 이 위기를 돌파할 “유능한 경제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모두발언과 마무리발언에서 일관성 있게 강조했다. 

이 후보는 모두발언에서 “경제도 어렵고 코로나19 때문에 고통이 너무 극심하다. 국제관계도 어렵다. 남북관계도 다시 살얼음이 끼고 있다. 모두가 위기”라며 “이런 위기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유능한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민생과 경제를 챙길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 꼭 필요하다. 저에게 기회를 주시라”라고 덧붙였다. 

감염병·전쟁과 같은 재난국면에서 국민들은 쉽게 여당이나 최고지도자를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 위기국면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다. 다만 현재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유지 여론보다 높다. 이 후보로선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했던 부분에 대해선 선을 확실하게 그으면서 위기국면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사진=KBS 갈무리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사진=KBS 갈무리

이 후보는 그동안 자신의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공약이행률, 성남시장 시절 보수성향이 강한 분당에서의 높은 지지율, 코로나 방역을 위해 신천지에 대한 단호한 대처나 병상확보를 위해 발로 뛰는 모습 등을 강조하며 문제를 해결사 이미지를 부각해왔다. 이날 토론에서 ‘RE100’, ‘택사노미’ 등의 개념에 대해 윤 후보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 것 역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며 정치초보 윤 후보와 차별화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타 후보들도 윤 후보보다 정책적 우월성을 드러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윤 후보에게 청약에 대해 구체적인 통계를 물으며 ‘청약가점 5점’ 공약이 무의미하다고 지적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윤 후보의 ‘청년원가주택’ 공약의 현실성 등을 지적했다. 세 후보가 모두 윤 후보 정책의 허점을 꼬집으며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이 후보는 마무리발언에서 모두발언과 같은 메시지를 냈다. 그는 “지금 정말 위기다”라며 경제, 코로나, 대전환, 국제관계, 남북관계 분야를 언급했다. 이어 “3월9일 이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하다. 제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부족한 건 ‘어떻게’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 향후 토론에서 날카롭게 검증해야 할 부분이다. 

안철수, 연금개혁으로 존재감 

안철수 후보의 모두발언은 다소 평이했지만 토론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지금 세계는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그리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가 필요하다”며 “그런 후보가 바로 저 안철수라는 것을 오늘 토론회를 통해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질문권을 가진 주도권 토론에서 ‘연금개혁이 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발언했던 윤 후보를 상대로 연금개혁 필요성을 압박했다. 윤 후보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공무원·군인·사학 등 세가지 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자신의 연금개혁안을 소개했다. 윤 후보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자 타 후보들에게도 연금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는 발언을 얻어냈다. 

이후 마무리발언에서 안 후보는 “오늘 연금개혁에 대해 모든 후보들의 합의를 이룬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비난과 반복된 정치공세에 익숙했던 토론문화에서 안 후보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만이라도 합의를 끌어낸 것은 대체로 호평을 받고 있다. 안 후보는 끝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며 “말 잘하는 해설사가 아니라 일 잘하는 해결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 3일 토론 중인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사진=KBS 갈무리
▲ 3일 토론 중인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사진=KBS 갈무리

진보정당 정체성 강조한 심상정

심상정 후보의 경우 ‘정의당이 과연 진보정당이 맞느냐’, ‘민주노동당 시절을 잊고 여의도 정치에 갇힌 것 아니냐’는 그동안의 비판을 의식한 듯 진보정당의 위치와 정체성을 강조했다. 

심 후보는 모두발언에서 “대한민국, 통째로 바꿔야 된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200년 화석 문명. 극단적인 불평등을 만든 70년 성장제일주의. 그리고 35년 양당 독점 체제하에서 우리 시민들의 삶은 언제나 유보돼 왔다”며 “이제 경제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녹색·복지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거대양당 체제가 외면한 이슈를 의제화하는 진보정당 후보로서 마땅히 내놓아야 할 메시지였다. 

“저 심상정,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라고 모두발언의 마지막 말도 눈에 띈다. 정치권에선 이번 대선을 심 후보의 마지막 대선도전으로 보기도 한다. 심 후보도 3선의원으로서 당내 위치를 새로운 리더에게 넘기고 진보정당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심 후보는 마무리발언에서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집없는 서민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여성과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십시오”라며 “주류 정치가 대표하지 않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정권교체할 힘을 주십시오”라고 주장했다. 경제대통령이 아닌 ‘복지대통령’을 강조하며 민주당과 차별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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