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사회는 언론인이 연루된 사건이 유독 많았다.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연루된 ‘가짜 수산업자 사건’, 머니투데이 사주와 소속 언론인들이 연루된 화천대유 사건. 이들 사건은 ‘언론인’의 ‘이해충돌’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제대로 견제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24일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을 번역해 발간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번역 박동해 뉴스1기자, 임주언 국민일보 기자, 전현진·조문희 경향신문 기자)을 보면 한국 언론과 비교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기사 내용의 투명성, 소셜미디어상의 구체적인 지침 등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 뿐 아니라 ‘이해충돌’ 측면에서 세세한 규정이 돋보였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일을 선언적으로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해충돌’이 빚어질 수 있는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작은 조치’와 보고체계까지 디테일하게 규정하고 있다. 

▲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번역본 표지
▲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번역본 표지

감수를 맡은 박재영 고려대 교수는 책을 통해 “무엇보다도 규정 대부분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실질적 상황은 물론이고 외견상 그렇게 비칠 수 있는 잠재적 상황에도 적용된다고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고 했다.

선물 금지, 거부 때 쓸 편지 양식까지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은 ‘작은 편의’에도 제동을 걸었다. “취재 대상이거나 차후 취재 대상이 될 수 있는 개인 혹은 단체로부터 그 어떤 선물이나 티켓, 대출 상환혜택 , 기타 각종은행 대출도 제공 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 기념품의 경우 25달러 미만으로 액수도 규정했다. 

‘시승기 기사’를 쓸 때는 “뉴욕타임스측이 시장 기준의 일반적인 차량 렌트 비용이나 이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차량을 시승하거나 리뷰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런 디테일도 있다. 본의 아니게 받게 된 선물은 ‘정중한 설명과 함께 되돌려줘야한다’며 편지 양식을 첨부했다. 양식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저희 뉴욕타임스에서는 기자와 에디터가 취재 대상인 인물이나 단체로부터 유가성이 있는 품목을 받는 것을 엄금합니다.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가 보여주신 성의 표시에 영향을 받아 특정 주제를 더 심층적으로 다룬다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왜곡할 것이라는 인식을 감수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선물을 받았을 때 정중하게 거부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 양식.(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선물을 받았을 때 정중하게 거부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 양식.(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취재원과의 관계는 단순히 ‘거리를 두라’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취재원과의 사적 관계’ 챕터를 별도로 두고 있는데 “공식적인 업무상 관계와 개인적친 친분 관계의 차이를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컨대 시 의원과 매주 골프를 즐기는 시청출입기자는 골프장에서 가금씩 업무를 논의하기만 해도 시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뉴욕타임스는 “본인이 제작, 첨삭, 편집 혹은 감독하는 보도물에 등장할 수 있는 이들과 이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 직원들은 그 관계를 기준감독 에디터나 뉴스제작국의 행정담당 에디터, 논설실 실장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취업 알선’도 금지한다. “구성원들은 본인이 제작, 첨삭, 편집 혹은 감독하는 보도물의 현재 취재 대상이거나 추후 취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취업 알선을 받거나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자들이 자신의 출입 분야로 이직을 하는 일이 흔한 한국 언론 현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투자제한 엄격, 가족 주식까지 밝혀야

뉴욕타임스는 기자들의 주식 등 투자의 기준도 명료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비공개 자료를 활용하지 않는다’거나 ‘투자를 해선 안 된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박재영 교수는 “제한은 주식이나 투자와 관련하여 더 심하다. 이 대목의 분량은 영어 단어 1390개, 한글 번역 후 원고지 25매에 이른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투자 및 금융 관계’ 챕터를 통해 1면 편집자 등 주요 보직자들에게 뉴욕타임스를 제외한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선 기자의 경우 “본인이 정기적으로 제작 첨삭 편집 혹은 감독하는 보도물의 현재 취재 대상에 해당하거나 추후 취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회사, 기업, 산업에 대한 주식을 소유하거나 기타 재정적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도서 분야 에디터는 출판업계에 투자할 수 없고, 보건의료담당 기자는 제약회사에 투자하지 못하고, 미디어 관련 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는 어떤 미디어 관련 주식도 소유할 수 없다.

▲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뉴욕타임스는 채용 과정에도 이를 적용한다. “전 직원은 고용될 때 주어진 업무와 관련해 상기 규정을 위반한 투자를 시도한 적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증해야 한다. 이를 보증할 수 없는 신입사원은 논란이 될 수 있는 지분을 매각해야 될 수도 있다”고 규정한다.

기자 본인의 투자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입사 과정에서 뉴욕타임스의 직원은 배정된 업무의 보도, 편성에 있어 편파적인 시각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일으킬 수 있는 금융 지분을 배우자나 가족 지인이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하도록 요청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관리하는 체계가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기준감독 에디터나 논설실 부실장의 권한으로 모든 부서의 직원들에게 위 규정을 위반하는 투자를 한 적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본인의 취재 분야가 아닌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자가 추후 해당 회사나 산업에 대한 기사를 쓰도록 배정된다면? 이 기자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투자활동에 대해 직무배정 에디터와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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