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간) 팀 데이비 BBC 신임 사장은 첫 연설을 통해 직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당신이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칼럼니스트나 특정 정당의 활동가라면 소셜미디어가 유효한 선택일 수 있지만 BBC에서 일하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페이스북, 유튜브 등 기자 개인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관련 논란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디까지 발언할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이 중앙일간지·지역일간지·경제지·지상파방송사 등 9개 언론사의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조사한 결과 언론사들은 △ 회사 및 취재 관련 정보 사전유출 주의 △ 품위유지·타인 명예훼손 등 표현에 대한 주의 △ 정치적 견해 또는 불공정한 표현에 주의 △ 사적 표현에도 주의 △ 부정확한 정보 전달에 유의 △ 회사에 대한 비방·명예훼손·이익에 반하는 활동 주의 등을 규정하고 있었다.

▲ 디자인= 권범철 만평작가.
▲ 디자인= 권범철 만평작가.

9개 언론사 모두 공통적으로 사적 표현이라도 언론사 입장으로 비쳐질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보도를 위해서든 개인 목적으로든 소셜미디어 활동을 할 때 조선일보 기자로 인식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한겨레, 중앙일보, 한국일보, 헤럴드경제 등은 회사 입장 등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을 경우 개인의 의견이라는 점을 밝히도록 했다. 경남도민일보는 회사 입장과 상반된 입장을 낼 경우 개인 입장임을 밝히도록 했다.

품위유지·타인 명예훼손 등 표현에 대한 주의 조항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일부 언론은 자제해야 할 표현의 유형으로 차별·혐오표현에 대해 별도로 언급했다. 특히 한겨레는 “성별, 인종, 종교, 장애,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적 언행을 해선 안 된다”며 ‘금지’를 분명히 했다.

언론사마다 정치적 표현의 허용 정도에 차이가 있었다. 특히 공영언론의 경우에도 정치적 견해와 관련한 표현에는 온도 차가 있었다. 연합뉴스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정치적 소속이나 관점 및 입장을 게시하는 것을 지양한다”며 정치적 표현을 사실상 금지했다. 반면 KBS는 ‘불공정한 표현에 주의할 것’을 명시했다. 이는 다른 언론이 규정한 ‘편향 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경우’(헤럴드경제) ‘공정성과 신뢰성에 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MBC) ‘정파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한다’(조선일보)와 유사한 내용이다.

한겨레는 ‘표현의 자유 보장’을 명시하면서 동시에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논쟁에 휘말릴 경우 상식에 기반한 균형감을 잃지 않도록 한다’는 등 한계를 함께 명시한 점이 특징이다. 한국일보는 2017년 주의사항 형식의 공지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는데 정치적 표현에 대한 별도 조항은 없었다. 경남도민일보는 특정인을 비판할 때는 근거를 제시하고, 독자와 토론할 수는 있지만 저급한 표현을 삼가게 하는 등 비교적 논쟁에 관대했다. 

▲ 언론사별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 준칙 또는 주의사항 형태도 포함했다. '정치적 표현'과 관련해선 정치적 표현 자체를 지양하게 할 경우 동그라미,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또는 불공정한 표현에 유의하게 할 경우 세모, 관련 조항이 없는 경우 X 표시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 언론사별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 준칙 또는 주의사항 형태도 포함했다. '정치적 표현 지양'의 경우 정치적 표현 자체를 지양하게 할 경우 동그라미,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또는 불공정한 표현에 유의하게 할 경우 세모, 관련 조항을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경우 X 표시했다. '부정확한 정보 전달 유의'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검증 및 근거 제시에 대한 조항이 있거나 '진실성' 관련 언급이 있을 경우 동그라미 표시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SBS의 경우 별도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외부활동 가이드라인’을 통해 외부활동에 소셜미디어 활동도 포함하고 있다. SBS 관계자는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강연 등 외부활동 전반에서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표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지 않은 언론사도 있었다. 안호기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몇 해 전에 타사 사례 등을 참고해 제정을 추진했으나 (소셜미디어가) 개인의 사생활 영역인데 규제하는 게 너무하다는 지적이 있어 제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셜미디어가 공적 공간인지 여부를 규정하는 것부터가 논쟁적인 상황에서 자칫 ‘규제성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소셜미디어 활동이 위축된다는 지적이 있다.

가이드라인 제정에 대해 현장 기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냈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소셜미디어 활동은 통제하지 않고, 장려해야 한다”며 “기자도 얼마든지 사안에 대해 의견 표명도 하고 독자와 소통을 할 수 있다. 다만 너무 감정적인 언행으로 반발을 사면 (가이드라인 없이도) 해사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 보도전문채널 관계자는 “딱히 지침을 내린 적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논란이 되는 수준의 표현은) 이런 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이 악용된 사례도 있다. MBC 소속 한 관계자는 “양날의 칼”이라며 “지난 정부 김장겸, 안광한 사장 때 가이드라인 위반을 문제 삼아 SNS에 회사에 대한 비판을 한 구성원들이 징계를 받은 전례가 있다”고 했다. 조사 대상 9개 언론사 가운데 5곳은 회사 비방·명예훼손·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주의하도록 했는데 이 같은 규정은 ‘회사 비판’에 대한 징계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또 다른 MBC 기자는 “지상파 방송사 언론인이 편향적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회사 입장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측면에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 경제지 기자는 “기자의 발언으로 인한 논란이 절독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회사에 영향을 미치니 당연히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면서도 “통제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소속 구성원들이 유념하게 하는  정도로 필요하다”고 했다.

한 연합뉴스 기자는 “소셜미디어 계정 팔로워가 많다는 점을 채용 과정에서 좋게 본다. 막상 적극적으로 하면 안 좋게 본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권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하지 말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논쟁적인 주제지만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 제정 자체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일반인들은 기자가 SNS에 쓴 글을 ‘개인의 의견’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의견 개진이 독자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현업에 있다면 자제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 구성원이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아무 말이나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 언론은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소셜미디어 활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트위터나 블로그에 취재 관련 내용을 올리기 전 책임 편집자의 허락을 받도록 했다. BBC의 경우 게시글 작성뿐 아니라 트위터 메시지를 ‘리트윗’할 때도 오해를 일으켜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 페이스북 모바일 화면. 사진=페이스북 뉴스룸.
▲ 페이스북 모바일 화면. 사진=페이스북 뉴스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지나친 통제는 반대하면서도 기본적인 규율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람들이 기자와 PD의 글에 경청하는 이유는 ‘소속’이 있기 때문이다. 사적인 글이라 해도 ‘언론인의 글’로 해석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특정 회사 소속이라서 얻는 프리미엄을 이용하면서도 문제가 되면 의견의 자유 영역이라고 치부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고 했다. 심석태 교수는 개인 계정과 공적 발언을 하는 계정을 분리해 운영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뉴스는 집합적 노동의 산물이라 기자 개인의 것으로 보기 힘들다”며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 교수는 “기자 개인의 게시글도 업무 활동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표현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모호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명확히 구분하게 함으로써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책임 소재도 명확하게 할 수 있다. 매체에 따라 공영방송은 보다 엄격하게, 정파적 매체는 보다 자유로운 발언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전문정책위원은 “중요한 건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 나갈 때마다 보도준칙을 살펴보지 않는 것처럼 자칫하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위에서 내리꽂는 방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보다는 구성원들과 논의를 통해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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