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하며 언론현업단체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얼개가 나왔다. 지난 10월1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의뢰로 구성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방안 연구위원회가 지난 24일 공개 세미나를 열고 설립방안 초안을 공개했다. ‘노출 중단’처럼 포털과 연계한 강력한 제재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한 실효성 강화를 노린 모습이다.

통합기구는 언론단체들이 공동 설립하며, 분쟁처리를 담당하는 자율조정인(옴부즈퍼슨)과 규약위반을 담당하는 자율규제위원회로 구성한다. 자율조정인은 5~7명으로, 자체 모니터링과 이용자 불만제기를 통해 개별 언론사 고충처리인과 소통해 언론사가 적절한 조치에 나서도록 한다. 자율규제위원회는 이사회가 구성한 외부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9명의 전문가로 구성, 자율조정인이 처리한 사안을 바탕으로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자율조정인은 규약을 위반한 언론사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한 달 안에 모든 처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공적 역할을 감안해 언론진흥기금 등 공적 재원을 투입하고, 참여 언론사는 분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중대한 규약 위반에는 언론사에 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규약 위반의 경우 정정, 노출중단, 사과 등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벌점을 주고 벌점이 누적되면 제명이 가능하다.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업무 처리 구조. 출처=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연구위원회.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업무 처리 구조. 출처=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연구위원회. 
▲분쟁처리를 담당하는 자율조정인(옴부즈퍼슨)과 규약위반을 담당하는 자율규제위원회의 업무.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연구위
▲분쟁처리를 담당하는 자율조정인(옴부즈퍼슨)과 규약위반을 담당하는 자율규제위원회의 업무. 출처=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연구위

자율규제의 실효성 확보 방안으로는 △자율규제준수 인증 추진 △각종 언론상과의 협력 체계 구축 △각종 공적 기금 지원 관련 인센티브 체제 △정부광고 배정 관련 인센티브 △포털 등 외부 기업 및 기관과의 협력 체제 구축을 꼽았다. 자율규제 정착을 위해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중복규제 개선 △언론중재위원회와의 중복 개선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 지원 업무와 연계 등을 제시했다. 

연구위 간사였던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이 기구가 설계대로 간다면 규약을 위반했을 때 책임지게 하는 기능이 한 축 있고,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는 다른 한 축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누군가에게 강한 철퇴를 내리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초안에 강홍준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은 “인센티브로 제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을 잘 강조한 것 같다”고 평가한 반면 “5~7명의 자율조정인으로 인터넷 기사 상시점검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강 사무총장은 나아가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라고 했는데 개념 정의가 도대체 뭐냐. 기존 자율기구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하자는 쪽으로 개념을 잡고 있었는데 연구팀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통합기구가) 무엇에 집중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또 “분쟁이 있을 때 자율조정인으로 안 되면 또 중재위를 가야 한다. 결국 한 단계 더 늘어나는 문제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언론현업단체는 (언론보도 피해) 배상 수준이 낮다고 하면 재조정의 필요성도 공감하는 대목이 있었다. 하지만 자율규제를 통해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초안에서는) 감이 안 온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튜브 채널과 1인 미디어에 대한 명확한 법적 지위 부과도 필요해 보인다”고 했으며 “규제 중복 측면에서 기관 간의 영토싸움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 역시 “정정‧배상에 시기적인 적절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초안을 읽으면서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고민이 있다”고 밝혔으며 “방심위‧언론중재위와 관련해 당장 이중‧삼중 규제를 받는다는 문제 제기가 있을 것 같다. 특히 방심위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통합기구가) 법제화되지 않고서는 이중규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지난 9월23일 프레스센터에서 7개 언론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 기구 실천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금준경 기자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지난 9월23일 프레스센터에서 7개 언론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 기구 실천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금준경 기자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언론사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따르게끔 견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언급된 인센티브만으로는 부족하다. (언론사들은) 의무는 많은데 혜택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초안에선 포털과의 관계설정이 미흡한 것 같다. 지금 신문윤리위원회 제재는 전혀 실효성 없지만 포털 뉴스제휴평가위 제재에는 난리가 난다. 실효적 제재가 들어가려면 포털과의 관계설정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위원장을 맡은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가장 큰 제약은 기존 조직과의 연계 부분이다. 그걸 해결하자고 제안하면 (통합기구 출범에)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연구위원회가 실질적인 법적 규제를 피하려고 하는 임시적 행위 아니냐는 의심들을 많이 한다”면서 “우리가 장기적인 얘기를 하고 법적으로 뭘 하자고 하면 (밖에서) 하지 말자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며 “위원들의 전체적 생각은 빨리 출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민들에 대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위원회,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와의 연계‧통합문제를 비롯해 언론중재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중복 규제 논란 해결방안까지 초안에 다 담았다가는 출발도 하지 못할 것이란 의미다. 

심석태 세명대 교수는 “우리에게 이 과제를 던져준 건 언론인들이다. 이들에게 없는 힘을가지고 제도를 설계하는 건 의미 없다. 우리에게 의뢰한 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업자단체에 있는 분들이 포털과 관계를 협의해야 한다”고 했으며 “중재위, 방심위와 중복규제 문제는 업무 위탁이나 MOU 등 여러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 제안했다. 심 교수는 “이대로 가다가는 더욱 강한 타율규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언론에 대한 공격이 너무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먼저 뭐든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보고서에 담았다”고 강조했다. 초안에 대한 비판은 쉽지만, 언론계가 이번 제안마저 현실화해내지 못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명분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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