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에 맞서온 언론단체들이 통합 자율규제 기구 설립을 공식화했다. 여러 성격의 언론 사용자 단체와 노동자(현업인) 단체가 자율규제 기구 설립을 위해 이례적으로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7개 단체 참여, 자율규제 ‘열람차단 청구권’ 등 제시

7개 언론단체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규제 차원의 ‘열람차단 청구권’ 등을 적용하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 기구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참여를 선언한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공동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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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규제 심의는 인터넷 기사 팩트체크 등을 통해 심의·평가해 결과를 이용자에게 제시하고 해당 언론에 알리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자율규제 기구는 허위정보를 담거나 언론윤리를 위반한 인터넷 기사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언론에 인터넷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하고, 필요한 경우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도록 했다.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는 기사 심의와 별개로 인터넷 기사와 광고로 인한 피해자가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가지 않더라도 신속한 피해구제가 가능하도록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 

▲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7개 언론다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 기구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7개 언론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 기구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역할과 기능, 자율규제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 마련을 위해 학계, 언론계, 전문가 등으로 연구팀을 조속히 구성해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국민이 언론을 불신하게 만들고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오늘 기구 설립 발표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문제를 해소해 나가고 언론 신뢰를 높여 나가기 위한 첫 발자국”이라고 밝혔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자율규제 시도를 폄하하고, 위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우리는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 기구를 만들자는 데 합의했다. 잘못된 보도를 스스로 통제하고, 필요하면 과감히 대응 할 수 있는 자율규제기구를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자율규제는 실효성이 없으면 맹탕”이라며 “그간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선언적인 측면에 그쳤다. 이번에는 국민적인 공감대와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 사진=Gettyimagebank
▲ 사진=Gettyimagebank

언론사 단체와 노동자 단체 이례적 결합, 이유는?

통합 자율규제 기구 논의는 언론 노동자 및 현업인 단체와 사용자 단체가 함께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강홍준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은 “신문협회가 나선 이유는 기존 자율규제 기구들이 원하는 수준만큼의 실효성 있는 규제를 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디어오늘 보도 등에 나온 기존 자율규제에만 맡겨놔서는 제 역할을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을 뼈 아프게 받아들였다. 현재 자율규제 기구는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기사에 대한 상시 심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그간 현업인 단체가 사용자 단체와 많이 대립했다. 하지만 언론 불신의 위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언론계가 공멸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피해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외연 넓히기 과제, “정부 주도 규제 개선” 목소리도 

이날 기자들의 질문은 참여 단체가 한정적이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힘들 수 있지 않냐는 데 집중됐다. 여러 단체가 참여하긴 했지만 방송사 단체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협회 소속이 아닌 언론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7개 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발표는 ‘기구 설립’ 합의에 의미가 있고, 추후 참여 단체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강홍준 신문협회 사무총장은 “(지상파 방송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는 내부 의견 수렴 중”이라며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 많은 언론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다음주에 제휴평가위 운영위원회 차원에서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언론사 제휴심사를 담당하는 독립기구인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는 한국신문협회, 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운영 전반을 논의하는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 한국 언론 자율규제 및 공적 규제 현황. 디자인=안혜나 기자
▲ 한국 언론 자율규제 및 공적 규제 현황. 디자인=안혜나 기자

언론사들의 참여를 위해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인센티브 측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좋은 언론 상품이 유통될 수 있게 만드는 게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보면 언론중재위에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는 내용이 있는데, 중재위에 늘릴 예산이 있다면 언론 스스로 열람차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 바우처 제도 연계도 역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기구 참여 단체 확대와 더불어 장기적으로 방송통신심의 등 국가 주도 규제를 자율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현재 대한민국에는 양대 국가검열기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가 있다”며 “국가가 언론에 개입해서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대한민국만큼 폭 넓은 민주 국가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통합자율규제기구가 국가규제 기구를 대체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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