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아침, 서울의 어느 지하철 역. 다수의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승강장에 모였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등이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줄지어 이동합니다. 그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꽤 오랜 시간 지연되었고 시민들의 불만과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많은 언론이 "출근길 시민 불편", "지하철 1시간 넘게 지연"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난 20일에 있었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출근길 시위에 관한 얘기입니다.

인터넷매체 '비마이너'에서 관련 기사를 읽다 한 사진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은 채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당시의 현장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날선 시선, 수시로 튀어나왔을 욕설과 조롱이 전해집니다. 아울러, 그 상황에 처한 장애인 활동가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 이어질법한 말들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밖에 없는 시위 방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리 없습니다. 여론이 악화되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을 겁니다. 시민들이 뱉는 험한 말들과 혹시 있을지 모를 폭력사태로 인해 시위 참가자들의 몸과 마음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만큼 간절했을 테니까요.

▲사진출처=비마이너.( 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사진출처=비마이너.( 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때

저 또한 예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마음입니다. 굳이 거리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면서 까지 무언가를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꼭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시민단체 '반올림' 활동가가 되어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알리기 위한 여러 활동들을 하며 생각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방진복을 입고 드러눕기도 했었고, 피해자의 영정 사진을 들고 대로를 행진하기도 했으며, 얇은 비닐 천막 안에서 겨울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단 한번도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물었을 때 '꼭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 수십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었죠.

정당하고 간절한 요구가 도무지 세상에 닿지 않으면 확성기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까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지난 20일 영하의 추위를 뚫고 지하철 역에 모였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마음도 그랬을 겁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는가는 일부 언론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비마이너의 기사와 김예원 변호사의 서울신문 기고글한국일보와 SBS경향신문한겨레 기사 등을 권할만 하겠습니다. 이번 시위를 주도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성명을 직접 읽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관련 기사: 비마이너: 출근길 5호선 장애인 시위, 다 기획재정부 탓입니다 ]

집회 자유. 사회적 약자들에게 헌법이 쥐어준 마이크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시위 참가자들의 '간절함'보다 자신들의 '불편'이 앞서겠지요. 정당하고 간절한 요구가 차갑게 외면당하는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애인 활동가들의 출근길 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가졌도 불만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마저 장애인 활동가들의 간절함보다 시민들의 불편에 더 관심을 가졌던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은 언론에게 외면당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헌법이 쥐어준 마이크와 같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게 그들의 권익과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법원도 "이미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치적 다수나 사회적 강자보다는 그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억압될 가능성이 높은 정치적 소수나 사회적 약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언론이 이미 수십년 째 계속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제대로 관심을 가졌더라도 이런 시위가 필요했을까요. 언론의 차가운 외면이 중증 장애인들을 거리로 내몬 것 아닐까요. 그런데 그 시위가 전하는 간절함 마저 외면하는 언론이라면, 그런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치를 갖는 걸까요.

그들의 간절함이 바꾸어내는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세상

다행히, 이번에는 국회가 응답을 하나 봅니다. 지난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소위원회에서 이번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받아들여진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골자는 '시내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운영을 중앙정부가 지원·관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직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가 남아 있고 기재부가 예산 부담을 이유로 또 어깃장 놓을 우려도 없지 않지만(그래서 이번 출근길 시위가 기재부 장관이 사는 아파트 앞 집회로 이어졌던 것이지요), 전망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장애인 활동가들의 간절함이 또 한번 세상을 바꿔낸 것입니다. 시민사회 운동을 하다보면 종종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투로 냉소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는 그때마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어 왔던' 많은 사례들을 늘어 놓습니다. 당신들이 몰라서 그렇지, 세상은 그런 투쟁들로 인해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장애인 활동가들의 이동권 투쟁도 그러한 사례로 회자될 것입니다.

▲ 12월20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관련 시민 불편 강조한 온라인 기사 제목(위부터 조선일보‧문화일보‧동아닷컴‧매일경제 순) 사진출처=민주언론시민연합. 
▲ 12월20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관련 시민 불편 강조한 온라인 기사 제목(위부터 조선일보‧문화일보‧동아닷컴‧매일경제 순) 사진출처=민주언론시민연합. 

그렇게 세상이 바뀌면 우리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저상버스의 확대도 그렇습니다. 이 버스는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등 모든 교통약자들의 안전을 위한 것인데, 우리 모두는 언젠가 교통약자가 될테니까요. 이번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약 11년에 걸쳐 국내 모든 일반버스가 저상버스로 교체된다고 합니다. 저상버스가 아주 평범한 풍경으로 우리 모두의 일상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때가 되면 한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2021년 12월 20일, 험한 욕설과 비난을 감내하며 지하철 승강장에 모였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욕하고 조롱했던 사람들, 그들의 간절함은 외면한채 시민들의 불편만을 강조했던 언론인들은 스스로를 한번쯤 부끄러워하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