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할머니 임종 못가 운 승객도…장애인 단체 시위 중단 요청’”(조선일보 22일)
“‘승객이 할머니 임종 놓쳤다’ 교통공사, 장애인 시위 중단 요청”(중앙일보 22일)
“‘할머니 임종 지켜야…’ 장애인단체 출근길 시위에 공사 자제 요청”(동아닷컴 22일)

“‘임종 가야해요’ 커지는 불만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 멈춘다”(머니투데이 23일)
“‘할머니 임종 가야 한다’ 청년 절규에 장애인 단체 ‘버스타고 가라’”(데일리안 23일)
“‘임종 지키러 가야하는데’ 절규에 장애인단체 ‘버스 타라’”(서울경제 23일)
“장애인 시위 중 ‘할머니 임종’ 절규…대답은 ‘버스 타세요’”(이데일리 23일)
“임종 가야 한다며 울부짖는 청년에 버스 타라는 장애인단체”(인사이트 23일)

네이버에서 ‘장애인 시위, 할머니, 임종’을 함께 넣어 검색하면 첫 화면에 뜨는 기사들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해 12월 초부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약속을 요구하며 아침 7시30분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진행한 후 일부 언론은 ‘시민 불편’을 제목 등으로 뽑아 보도하고 있다. 전장연은 지하철 타기 시위 외에도 매일 아침 8시 기획재정부에 장애인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아침 선전전을 혜화역 승강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 기사 검색 화면. 
▲네이버 기사 검색 화면. 

2001년 경기도 시흥시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한 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1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그 내용을 보면, 기획재정부가 국비 지원에 반대해 ‘정부가 국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으로 규정된 것이다. 이에 전장연은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관련 기사: 비마이너: 기재부 똑똑히 보세요, 장애인 200명 오늘도 지하철 탔습니다]

할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한 시민 사례에 앞서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시위를 중단해달라는 보도자료 등을 배포해 수많은 매체가 인용 보도했다. 연합뉴스의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시위로 시민 불편, 요금 반환 4717건’”(22일) 기사나 헤럴드경제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시위로 시민 불편, 탑승객 감소’”(22일) 기사 등은 서울교통공사 보도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시위가 발생하면 현장 기사 만큼 보도되는 것이 ‘시위로 인한 시민 불편’ 등의 내용을 담은 기사다. 장애인 단체 시위를 다루며 시민 불편을 부각한 기사들은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를 테면 2002년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관련 경찰에 항의한 시민을 시위대에 항의한 것인 양 ‘시민불편’으로 둔갑한 KBS 리포트도 있었다. 이후 시민이 KBS 게시판에 항의하며 사과와 정정을 요구, KBS는 오보에 사과했다.

[관련 기사: ‘장애인 승하차 시위’, 불편하거나 관심없거나]
[관련 기사: ‘과잉진압’ 시민 반발이 ‘시민불편’ 항의 둔갑]

▲2018년 6월 시위 당시 방송사 리포트.
▲2018년 6월 시위 당시 방송사 리포트.

2022년에도 ‘할머니 임종’이라는 극단적이고 안타까운 사례를 인용하며 ‘시민 불편’을 부각하는 보도는 이어지고 있다. 물론 시위로 인해 출근하는 시민이 불편한 것은 사실 아니냐, 임종을 못 지킨 시민은 매우 억울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사례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 언론이 더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차별의 현장’ 느껴… “21년 투쟁 이유 짚자”

23일 오전 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현장을 취재한 한 기자는 24일 미디어오늘에 “한 번에 많은 휠체어가 지하철에 탑승하다 보니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 비장애인이 비집고 들어갔을 땐 (시민들이) 얼굴을 찡그리거나 몸을 트는 방식으로 불쾌감을 표했다면, 장애인이 들어갈 땐 직접적으로 적대감을 갖고 불쾌감을 쉽게 드러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달했다.

이 기자는 “어떤 시민은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려 하자 ‘손대지마’라고 말했다. 지하철에 탑승하니까 앉아있는 승객이 굳이 큰 목소리로 ‘가지가지 한다’, ‘꼴값 떤다’ 등 모르는 사람에게 하지 못할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그 칸에 탄 장애인은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핸드폰을 보며 못 들은 척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다”며 “장애인 시위 관련 보도자료에 ‘욕의 무덤’에서 죽겠다고 썼는데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장면. 사진출처=비마이너. 
▲지난 1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장면. 사진출처=비마이너. 

이 기자는 “한 시민이 ‘왜 저래’라고 말하자 다른 이들도 한숨을 쉬거나 원색적으로 비난을 했다. 불쾌감을 쉽게 드러내는 것을 보며 놀랐고 시위에 참석한 이들이 침묵한 채 욕을 듣는 게 마음이 아팠다. 동일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차별의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시민 불편을 부각하는 보도들에 이 기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라며 “출근길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장애인들도 21년 동안 오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보도는 ‘왜 이런 문제가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교통공사는 엘레베이터 설치나 양 방향 통로 마련 등 근본적 대책 마련 대신 장애인 시위를 막기 위해 엘레베이터 사용을 통제하고 이들을 상대로 민사소송하는 걸 택했다”며 “(공사가) 왜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지 바라봐야 한다. 기재부 예산이 편성되지 않고 있는 사실 등도 보도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 사이 싸움을 부추길 게 아니라 시스템을 견제하는 기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왜 이런 불행이 있는지’ 따지는 게 언론

‘진보적 장애인 언론’을 표방하며 장애인 시위 현장을 기록해온 인터넷 매체 ‘비마이너’ 강혜민 편집장은 지하철 내 불행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왜 불행이 지속되고 있는지 따져보는 게 언론 역할이라고 했다.

강 편집장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관련해 ‘할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시민의 불편을 부각하고, 이에 시위하는 사람들을 악마화한 영상이나 기사를 보고 매우 슬펐다. 실제 현장에서 욕을 많이 먹는다. 지난주 한 시민은 ‘내 아들도 장애인이다. 내 아들은 하루에 3번 주사를 맞아야 하고, 아비인 내가 지금 주사값 벌러 나가는데 당신들이 그 출근길을 막고 있다’고 시위대에 말을 건네신 분도 있었다”며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마다 각자 절박한 삶의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 12월20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관련 시민 불편 강조한 온라인 기사 제목(위부터 조선일보‧문화일보‧동아닷컴‧매일경제 순)
▲ 12월20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관련 시민 불편 강조한 온라인 기사 제목(위부터 조선일보‧문화일보‧동아닷컴‧매일경제 순)

강 편집장은 “‘장애인 시위 때문에 가족의 임종을 못 지켰다’는 시민의 말을 듣고, ‘장애인들은 임종을 가지도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의 불행을 비교하면서 ‘내가 더 불행해’라는 것이 무슨 이득일까. 대체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 짚어주는 게 언론 역할”이라며 “지하철 안에 응축된 불행의 이유, 즉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시가, 정부가 21년 동안 파기해온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루는 게 언론이 할 일 아닌가”라고 물었다.

활동가들도 상처받는 현장, 그럼에도 시위하는 이유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이 장애인 이동권뿐 아니라 장애인 노동권, 교육권, 자립 생활 등 다양한 권리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강 편집장은 “이동권 투쟁은 눈에 잘 보이고 스펙터클하기 때문에, 또 시민 불편도 크기 때문에 기사가 많이 나온다. 이런 시위를 벌이는 활동가들의 상처도 크다. 활동가들 입에서도 이제 그만하자는 말이 매번 나온다”고 말했다.

강 편집장은 “장애인이 승강장까지 오는데 21년 걸렸다. 이제는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착지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시간”며 “이를 위해선 언론이 장애인 권리를 구조적으로 살피고 보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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