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탈을 쓴 사람이 쓰러졌다. 몸 곳곳에 빨대가 꽂혔다. 말 풍선 팻말에는 ‘빨대 꽂은 KT 때문에 아파요 ㅠㅠ’라고 쓰여있다. 전국언론노조 미디어발전협의회가 기자회견과 함께 준비한 퍼포먼스의 한 대목이다.

과거 경쟁사 스카이라이프 인수 이후 ‘가입자 빼내기’로 논란이 된 KT가 이번엔 자회사 스카이라이프가 인수한 또 다른 경쟁사 HCN 이사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반발이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미디어발전협의회·방송자회사협의회·MBC자회사협의회는 2일 서울 상암동 스카이라이프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에 “자회사 강탈을 멈추고 독립 경영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미디어발전협의회·방송자회사협의회·MBC자회사협의회는 2일 서울 상암동 스카이라이프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과 함께 진행된 퍼포먼스. 사진=금준경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미디어발전협의회·방송자회사협의회·MBC자회사협의회는 2일 서울 상암동 스카이라이프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과 함께 진행된 퍼포먼스. 사진=금준경 기자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2011년 경쟁 관계인 KT의 자회사로 편입돼 ‘KT스카이라이프’가 된다. 이후 KT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독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KT는 스카이라이프와 공동 결합상품을 출시해 이용자를 늘렸고 스카이라이프 약정 기간이 끝난 이용자들에 KT 상품으로 갈아타라고 영업하는 등 가입자 빼내기가 논란이 됐다. 올해 KT스카이라이프가 또 다른 경쟁자인 현대HCN을 인수했는데, HCN마저 KT가 경영을 주도하고 있어 반발이 커졌다.

새롭게 구성된 HCN이사회를 보면 5명 중 3명이 현직 KT 인사로 구성돼 있다. 이사 가운데 한 명은 현직 KT영업본부장이고, 감사는 KT재원담당 임원이 맡았다.  

이와 관련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는 “HCN의 감사는 KT의 재원기획담당 임원이 맡는다. 과거 KT 경영진단의 추억을 되새겨 보면 KT는 감사를 통해 HCN의 수익과 비용구조를 탈탈 털며 ‘빨대꽂기’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비상무이사는 KT의 영업을 총괄하는 영업본부장이다. 100% 우리 돈으로 인수한 자회사에 KT의 영업본부장이 입성했다. 김철수 사장은 KT 영업본부장이 HCN의 가입자를 존중하며 당사와 HCN과의 상품 결합을 응원하며 지원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고 지적했다.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 지부장은 “스카이라이프가 HCN 인수 잔금을 치른 날, KT는 HCN 이사회를 장악했다”며 “공정과 상식이 이 시대의 키워드인데, 구현모 KT 대표이사만 이를 모르고 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니 인터넷 접속장애 같은 통신 대란이 발생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김일권 언론노조 KT스카이라이프 지부장. 사진=금준경 기자
▲ 김일권 언론노조 KT스카이라이프 지부장. 사진=금준경 기자

김일권 지부장은 KT가 직접 HCN을 인수하지 않고 자회사를 통해 인수할 때부터 이 같은 문제를 예견했는지 묻는 질문에 “그래서 사전에 경영진에 물었으나 ‘위성방송의 독자행보이고 과거와는 다르다’고 답을 들었다. 그러나 잔금을 치르는 날 강탈당했다. 구현모 KT사장, KT에서 선임한 김철수 스카이라이프사장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것과 다름 없다고 보고 입장을 묻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은용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인수 금액) 5000억 원은 스카이라이프 노동자의 피땀이다. 고혈이다. 그 고혈로 HCN과 하나가 되려는데 낙하산은 안 될 말”이라며 “비틀어진 것을 바로잡고 스카이라이프 노동자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갈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해야 옳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미디어발전협의회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는 KT의 자회사 착취 의혹에 대해 공정거래법 기반의 불공정거래 조사를 착수하고, 유료방송 균형발전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로 케이블방송의 공적 역할이 훼손되지 않도록 사회이사추천위원회, 사장공모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 KT는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빨대 꽂기가 아닌 자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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