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 ‘세계’에 눈뜬 19세기 중엽의 학자요 사상가였던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1803~1877년)는 경고했다. “사인(私人)이 조정(朝廷)에 진출하게돼 공도(公道)가 허물어지고 사(私)의 세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붕당(朋黨)이 일어나게 된다”

권모술수의 선수였던 윤원형(尹元衡)은 열두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명종(明宗·재위 1546~1567년)의 외숙부요, 수렴청정을 했던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의 동생이었다.

권세를 한 손으로 거머쥔 윤원형을 가리켜서 ‘명종실록’은 ‘정부의 큰 도둑’이라고 써놨다.

“윤원형과 심통원(沈通源)은 척리 거실(戚里 巨室)로 물욕을 한없이 부려 백성의 이(利)를 빼앗는 데 못하는 짓이 없었다. 대도(大盜)가 조정에 도사리고 있어 하류들도 모두 휩쓸려 이(利)를 추구함에 남에게 뒤질세라 야단이었다”고.

그래서 가렴주구로 살 수 없게된 백성은 서로 모여 도둑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임꺽정의 난’이 천하를 소란케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언론은 국가·사회의 공기(公器)라고 누구나 말한다. 그러나 언론은 자칭 ‘문민정부’라던 김영삼정부 때까지 근 40년동안 권력의 충성스런 홍보매체요, 재벌의 하수인으로 꿀단지를 즐겨왔다. 공인이 아니라 ‘사인(私人)’이 지배하는 집단이었다.

5공정권이 무너진 80년대 후반 언론계에서는 비로소 ‘편집권 독립’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노태우정권을 거쳐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문제의 편집권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 정권교체바람을 타고 또다시 ‘언론개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에서 언론개혁이 꽤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했다(<미디어오늘> 10월 28일자 1·3면 보도).

‘문민정부’요 ‘문민시대’라던 김영삼정부시대는 군사정권시대의 폭력과 공포에 의한 통제가 사라진 대신 ‘경영’이라는 이름의 성역에서 나오는 ‘내부통제’가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제약한 시대였다.

필자가 언론사의 내부통제문제를 제기하고, 그 대책으로 ‘종업원 지주조합’을 제안한 것은 김영삼정부가 기세를 올리고 있던 93년과 94년의 일이었다.

그뒤 예상대로 언론의 직무유기는 국가적 위기로 직결됐고, ‘지분참여’를 통한 편집·제작의 독립은 적어도 제작에 참여하는 언론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제 또 한번 강조해 둘 것은 종업원지주조합의 지분이 아무리 작다해도 그 상징적 의미는 막강하다는 점이다.

이와 표리의 관계에 있는 언론사 지배주주의 지분제한은 애초에 은행과 통신업의 공공성보장을 위한 지배주주 지분제한제도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이것도 94년의 한 세미나에서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경제파탄에 직면한 지금 김대중정부는 외국 금융자본의 국내은행인수에 대한 형평성이라는 명분밑에 국내 지배주주 지분한도를 20%선으로 올릴 작정이라고 했다(현재 개인 4%, 기관 8%).

그 명분이야 어떻든 개혁의 핵심인 재벌정책이 역전될 가능성이 큰 위험한 수정임엔 틀림이 없다. 필자로서는 은행 지배주주의 지분한도는 현재의 선을 고수하되, 외국자본의 투자한도는 별도의 보조적 방법으로 확대하는 길을 찾아야 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어찌 되든 언론은 고유의 공공성확보가 중요한 만큼 지배주주 지분한도를 엄격하게 제한해야될 것이다. 언론사의 지분제한의 필요성도 이제는 광범한 지지를 얻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93년부터 제기해온 한국언론의 극단적인 과점(寡占)상태의 공정거래법적규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언론종사자들의 인식이 확실하지 않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신뢰할만한 시장조사를 기초로 해서 3개 또는 4개의 신문을 과점업체로 지정하고, 언론의 공공성과 공정경쟁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할 것이다.

지배주주 지분한도를 군소언론사보다 엄격하게 통신업의 경우처럼 10%를 넘지않도록 못박고, 종업원 지주조합을 의무화하고, 무가지(無價紙) 살포를 덤핑으로 규정해서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미디어오늘> 96년 9월 11일자 ‘신문기업공개를’ 제하의 본란).

또한 신규진입을 쉽게 하기 위해 ‘공동판매’ 조직을 돕고, ‘시설기준령’에서 시작된 발행의 자유제한을 철폐하는 게 바람직스럽다.

그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정치권이 과연 언론이라는 강력한 ‘권부(權府)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 자신이 개혁에 대한 신념을 얼마나 확신하는가에 달려있다.

명심해 둘 것은 언론개혁에 성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뒷날 ‘조정의 큰 도둑’이라는 누명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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