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리에 모인 세계 석학, 그들은 왜 EBS 초청에 응했나
한자리에 모인 세계 석학, 그들은 왜 EBS 초청에 응했나
[인터뷰] EBS ‘위대한 수업’ 제작진 7명, 거장들 어떻게 섭외했나
1시간 인터뷰만 승낙했던 거장, 제작진 열정에 강연 먼저 제안하기도
“구독경제 부흥과 코로나19 속 지식 격차 커져…고급 지식 전하자는 취지”

유발 하라리(역사), 마이클 샌델(정치철학), 주디스 버틀러(젠더), 폴 크루그먼(경제), 조지프 나이(정치), 리처드 도킨스(생물)…. 세계를 이끌고 있는 지성들이 EBS에 직접 준비한 강연을 선보인다. 8월30일 첫 선을 보인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이하 위대한 수업)는 그 화려한 라인업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EBS PD들은 세계적 석학과의 만남에서 교육 공영방송 정체성과 역할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석학들을 직접 섭외하고 그들 강연을 제작한 EBS ‘위대한 수업’ 제작진 7명을 지난 8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EBS ‘위대한 수업’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허성호PD: “넷플릭스 같은 구독경제의 부흥과 코로나19라는 배경이 있었다. 팬데믹 시대에 갈수록 시민들의 지식 격차는 심해지고 SNS를 통해 ‘가짜 지식’이 난무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진짜 고급지식을 전 세계에 전하자. 그 지식 허브를 대한민국이 담당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기획이 나왔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의기투합해서 세 기관 합작품이 나오게 됐다.”

-‘위대한 수업’의 세계적 석학들의 라인업이 화제가 됐다. 섭외 과정은 어땠나.
허성호 PD:
“기본적으로 ‘다큐프라임’ 등에서 수십년간 쌓아온 EBS의 인적 네트워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모든 프로그램에 임하는 PD와 작가가 마찬가지겠지만, 섭외할 때는 본인이 살아오면서 가진 네트워크를 총동원한다. 예를 들어 제작진 중에는 대학 시절 은사님이 직접 발 벗고 나서 세계 유수의 석학들을 직접 섭외해주고 계신 경우도 있다.”

▲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폴 크루그먼이 교육 방송이 있다는 것에 놀라며 출연을 결정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최현선 PD:
“폴 크루그먼은 섭외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교육 공영방송이 한국에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이번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해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촬영 전부터 EBS 주 시청층은 어떻게 되는지, ‘위대한 수업’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체크하던 크루그먼은 촬영 현장에서도 교육방송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교육방송 중요성에 큰 공감을 보였다. 세계적 석학을 통해 교육 공영방송 정체성과 역할을 다시금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1시간 인터뷰만 승낙했던 거장, 제작진 열정에 강연 먼저 제안

-또 다른 학자들과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최현선PD:
“뇌과학계의 거장이자 뉴욕대학교 신경과학센터 교수 조셉 르두(Joseph LeDoux)는 당초 바쁜 스케줄 때문에 1시간의 ‘인터뷰’ 촬영만 승낙한 상태였다. 하지만 메일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본인의 모든 저서와 논문을 깊게 연구한 제작진 열정에 반해 ‘강연’을 진행하겠다고 먼저 제안해왔다. 특히 당시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았던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원서를 정독하고 소통하는 제작진 노력에 깊은 감명을 표하기도 했다. 조셉 르두는 5시간에 걸쳐 강연을 진행하고 소속된 밴드 ‘아미그달라로이드(편도체)’의 곡인 ‘공포(Fearing)’를 기타로 연주하고 노래하며 멋진 공연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이승주PD: “알파벳 의장 존 헤네시(John Henessy)의 경우 그가 몸 담고 있는 헤네시-나이트 재단에 한국인 직원 분이 계셨다. 그분이 EBS를 긍정적으로 말씀해주신 것이 섭외에 영향을 미쳤다. 사실 석학이 EBS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한국, 교육 그 두 가지 키워드 뿐이다. 이때 세계 각지의 한국인 분들이 쌓아놓은 신뢰가 결정적 공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의 한국인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김대현PD: “출연자 중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폴 너스 경(Paul M. Nurse)은 자신의 손주들과 같은 미래 세대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전달하기 위해 책을 쓰기도 했다. 교육방송의 공적 책무와 석학들이 미래 세대에 느끼는 책임감에 어느 정도 공유되는 지점이 있었다.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강연을 볼 학생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흥미를 갖고 들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염려했다. 보내준 원고가 너무 어렵진 않은지, 자신이 말할 영어가 그들에게 정확히 전달될 수 있을지까지 신경썼다.”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리처드 도킨스의 당신이 몰랐던 진화론 편. 사진출처=EBS.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리처드 도킨스의 당신이 몰랐던 진화론 편. 사진출처=EBS.

-제작진들이 프로그램을 만들며 들었던 수업 중 가장 ‘위대한 수업’은 무엇이었나.
김민지 PD: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가 나오는 위대한 석학들, 그들이 펴낸 두꺼운 책의 무게를 이겨내며 20분 분량의 강의 5편을 뽑아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편집을 하면서 가장 놀라움을 느낀 순간은 그들이 펼쳐내는 지식의 방대함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태도와 통찰을 엿볼 때였다.

9월14일부터 방송될 예정인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을 이야기하는데, 그는 단순히 과학 지식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었다. 편집실에 앉아, 강연자 눈빛과 날것의 오디오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들의 뇌 속을 잠시 탐험하고 나오는 기분도 든다. 책으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박진우 PD: “편집을 시작하자마자 대중 강연 수준이겠거니 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연하는 교수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하나의 논문이자 수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 교수의 강의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강의였다. 누군가가 50년 동안 쌓은 업적을 쉽고 재밌게 전달해주는데 이만큼 매력적인 강연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동물 해방 운동’을 하며 50년째 채식을 하는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 교수 또한 평생에 걸친 철학적 고민과 그 결과를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 쉽게 전달해주셨다. 각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직접 설명하는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이제 막 첫발을 뗀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강연들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이것은 분명 ‘현시대 지식의 총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의 '누가 리더인가' 편에서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前 학장인 조지프 나이와 함께 좋은 대통령의 선택 기준에 대해 알아본다.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의 '누가 리더인가' 편에서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前 학장인 조지프 나이와 함께 좋은 대통령의 선택 기준에 대해 알아본다.

위대한 수업 시청 전 노트와 펜 준비하는 시청자들

-‘위대한 수업’ 주 시청자들은 어떤 사람이라고 예상하나. 
최현선 PD:
“주 시청자는 EBS 강연 프로그램 주 시청자와 다르지 않다.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지식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주 시청자다. 사실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위대한 수업’ 라인업에 대한 내용이 수많은 커뮤니티에 오르며 연일 이슈가 돼 매우 놀랐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자 한다.”

이승주 PD: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시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또 감사하다. 인터넷을 꼼꼼히 돌아다니며 시청 소감은 샅샅이 살피고 있다. 우리 시청자 분들은 스낵 같은 가벼운 교양 콘텐츠보다는 좀더 묵직한 마치 뜨끈한 누룽지 같은 교양을 원하시는 분들인 것 같다. 꽤 많은 분들이 시청 전에 노트와 펜을 준비한다고 하시더라. 혹시 이 기사를 보시는 시청자 분들이 있다면 노트 필기를 시청자 게시판에 꼭 공유해주셨으면 좋겠다. 제작진도 시청자 분들의 필기를 참고해서 짧지만 깊이 있는 강연을 위해 노력하겠다.”

-지금까지 공개한 강연 중에서 반응이 좋았던 글귀나 강연 내용은.
허성호 PD: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상황을 파악하는 지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

최현선PD: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편은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제자리로 돌아갈지, 코로나 이전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수업이 될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숙제인 기후변화에 대한 꽉 찬 내용이 담겨 있으니 세계 경제 흐름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BS '위대한 수업그레이트 마인즈'의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경제' 편에서는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과 함께 코로나 이후 달라질 세계 경제에 대해 알아본다.
▲EBS '위대한 수업그레이트 마인즈'의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경제' 편에서는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과 함께 코로나 이후 달라질 세계 경제에 대해 알아본다.

-위대한 수업 강연과 관련한 앞으로 계획은.
김형준 PD:
“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석학의 강의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한국어 더빙으로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석학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그래서 강사 목소리에 한글 자막이 탑재된 콘텐츠를 Kmooc와 EBS 홈페이지를 통해 곧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전 세계 시청자들이 함께 명강을 시청할 수 있도록 총 6개 국어의 자막이 탑재된 강의 콘텐츠를 올해 말 제공할 계획이다. 우선 12월 오픈 예정으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SVOD 웹사이트를 준비 중이다. 한국 방송사에서는 새로운 시도라 제작진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김대현 PD:
“방송 초반에 아니 방송도 전에 쏟아지는 관심에 흥분이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청자로서도, 제작자로서도 한국에서 이런 형태의 강연 방송은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족한 점도 많을 것이다. 점점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꾸준한 관심과 피드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년까지 이어질 이 프로그램에서 독자분을 비롯한 시청자분들이 더 다양한 강연자들을 만나고, 각자 나름의 통찰을 얻어가실 수 있도록 제작자로서 노력하겠다. 프로그램을 통해 보고 듣고 싶은 사람들을 게시판에 올려주시는 관심을 감히 바라본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jae 2021-09-15 20:11:30
제발 무편집본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풀 강의가 더욱 의미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기사 취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