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을 장악한 뒤 국내 미디어에도 해당 소식을 다룬 보도와 이미지가 쏟아지고 있다. 필사적으로 출국하려는 아프간 시민들로 아수라장이 된 카불의 국제공항 현장 관련 보도가 쏟아진 뒤 비상 대책 없이 철수한 미국 정부에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외신은 탈레반 군의 15일 카불 점령이 사실상 ‘무혈 장악’에 가까울 정도로 저항 없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탈레반이 카불에 도착한 직후 도피했다. 군의 저항도 없다시피 했다. 알 자지라는 이날 가니 대통령이 떠난 지 수시간 뒤 탈레반 사령관들이 대통령궁에 입성해 대통령 경호원과 악수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탈레반은 지난 열흘 간 아프간의 지방 도시 34곳 가운데 26곳을 점령했다. 일부 지역에선 탈레반이 지역 군벌과 거래를 맺으면서 갈등 없이 장악이 이뤄졌다.

소셜미디어와 언론엔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간 민간인 수백 명이 이륙하려는 미군 군용기에 올라타려 활주로를 달리는 영상이 퍼졌다. 미국은 아프간 철수 이후 병력 6000명을 파병해 대피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공항에서 최소 5명이 숨졌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아프간 주재 대사관도 문을 닫고 직원을 대피시켰다.

▲탈레반 사령관들이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에 입성해 대통령 경호원(왼쪽)과 앉아 있는 모습. 사진=알자지라 유튜브 캡쳐
▲탈레반 사령관들이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에 입성해 대통령 경호원(왼쪽)과 앉아 있는 모습. 사진=알자지라 유튜브 캡쳐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철수를 결정하면서 비상 사태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다는 점에 내외신 비판이 나왔다. 탈레반 장악은 미국이 지난달 8일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 년의 전쟁을 끝나고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밝힌 뒤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발표 당시 “이제 탈레반의 점령이 불가피한가”라고 묻는 기자 질문에 “우리에겐 7만5000명 정도의 탈레반에 맞서 30만 명의 잘 갖춰진 아프간 군이 있다”며 “탈레반이 이 모든 것을 뒤엎고 나라 전체를 손에 쥐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고위관리를 인용해 미 정부 안에서 아프간 정권이 이달 안에 붕괴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미 관리들은 지난 6월까지 아프간 붕괴 시점을 미군 철수 뒤 6개월~1년 사이로 내다봤고, 국방부는 지난주 90일로 예측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얼마나 틀렸었나” 보도 갈무리
▲워싱턴포스트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얼마나 틀렸나” 보도 갈무리

탈레반 관련 심층 보도를 해온 파키스탄 언론인 아흐메드 라시드는 16일 비영리 독립언론 ‘데모크라시나우’에 출연해 사태의 핵심은 “계획 없는 철수”라며 “미국은 아프간 내 임시정부나 연합정부에 대한 논의 등 정치적인 협의 없이 카불에서 철수하지 말아야 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군과 정보 당국이 하는 일이야말로 비상사태에 계획하는 일이다. 그런데 계획이 잘 운영되지 않으면 플랜B와 C는 무엇인지 전혀 마련해두지 않고 철수했다”며 “그리고 이제는 완전한 혼돈이 왔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외신 보도를 보면 철군 결정이 문제라기보다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 이후 아프간 상황을 오판했고 대책 마련도 허술했다는 비판이 많다”며 “아프간 사태는 비극적인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시작한 대테러 전쟁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취약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한국일보도 “바이든 정부의 오판도 사태를 키웠다”며 “2001년 9.11 사태 한달 뒤 미국의 탈레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탈레반의 재장악으로 끝이 났다”고 했다.

▲CNN 유튜브 갈무리
▲CNN 유튜브 갈무리

공항의 장면이 미국이 아프간 시민들을 탈레반에 맞서 구출하는 모양새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에이미 굿먼 데모크라시나우 앵커는 “미디어에 수천 명이 군이 파병된 공항의 장면이 묘사되고, 이는 마치 (미군이) 탈레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탈레반의 전적인 협조 아래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탈레반 관련 계정과 콘텐츠 관련 방침을 서둘러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16일 탈레반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탈레반이 올렸거나 탈레반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플랫폼에서 금지한다고 밝혔다. 알자지라는 “탈레반의 점령은 미국 IT 기업들에 몇몇 정부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여겨지는 집단이 만든 콘텐츠를 다루는 데 있어 새로운 곤란을 안기고 있다”고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6일 긴급회의를 열고 탈레반의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과 통합정부 수립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17일 입장문을 내 한국 정부가 한국 기관을 도왔다 위험에 처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비자를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내 거주 아프가니스탄 국적 외국인들에 대한 송환과 구금을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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