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사뭇 역설적인 두어가지 화두가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리고 괴롭힌다. 그 하나가 이른바 디제이노믹스엔 DJ가 없다는 화두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디제이노믹스라면 IMF시대에 대응하는 김대중정권의 간판정책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가장 심혈을 쏟는 정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디제이노믹스에 DJ가 빠져있다는 것인가. 경북대 김영호교수의 풀이를 들어보자.

DJ라면 역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디제이노믹스엔
그것이 관념이나 목표로는 살아있는듯 보이지만, 정책이나 방법론으로는 살아있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딱히 DJ의 정책기조가 그렇게 풀이될 수 있을만큼 일관되어 왔는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김교수의 풀이엔 아무래도 DJ에 대한 기대와 애정의 빛깔이 짙게 깔려있는 듯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곧이어 이렇게 말한다.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누가 디제이노믹스에서 DJ를 추방시켰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루 빨리
디제이노믹스에 DJ를 부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일테니까요.”또 다른 역설의 화두는 ‘국민의 정부’엔 국민회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어떤 월간지는 국민회의를 ‘3다(多)5무(無)’ 정당으로 빗댄다. 그것도 한 당직자의 자기고백이라고 한다. 무엇이 많고, 무엇이 없다는 것인가. ‘말’과 ‘당직’ 그리고 ‘할 일 없는 의원’이 ‘3다’로 꼽힌다. ‘5무’란 ‘정체성’과 ‘정보’, ‘실세’와 ‘전략’ 그리고 ‘의사소통’으로 꼽혀진다.

물론 과장된 자조와 자학의 흔적이 짙어보이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구태여 간추린다면 그들은 적어도
집권정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의 틀과 역량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말은 무성하나 정보도 없고 의사소통도 없다. 게다가 전략을 이끄는 실세도 없으며, 마침내는 스스로의 정체성에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과장을 털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 증상은 당직자들의 자조나 자학쯤으로 묻어버릴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정책들이 가닥을 잡기 어려울만큼 어지럽게 흔들린다. 권위주의의 ‘일사불란’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다사’를 ‘불란’으로 이끌어 올리는 수렴의 역학은 좀처럼 확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정책결정의 투명성은 아직도 요원한 과제로 남아있을 뿐이다.

따라서 신뢰의 성은 여전히 쌓여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통합방송법의 제정 하나만을 두고 보더라도 그 증상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무슨 ‘3인방’인지 ‘몇인방’인지 하는 갈래가 주도한다는 소리와 함께 헷갈리는 구상들이 난무했지만, 오늘의 결과는 일단 ‘상정 보류’이다.

‘상정보류’의 이유 또한 투명하지만은 않다. 어떤 이는 방송의 개념마저 정립하지 못한 법안이라는 매도를 들고 나선다. 또 어떤 이는 통신까지를 함께 다루는 기본법의 구상이 필요하다고 열을 올리기도 한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방송의 개념마저 정립되지 못한 통합방송법안을 4년동안이나 주물러 왔던건 누구인가. 왜 그동안엔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야 핏대를 올리는가. 방송 통신기본법의 구상도 그러하다. 복합적 정보화의 시대에 대응하는 기본법적 구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이제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인가. 그리고 지금 당장 그 틀을 갖출만한 준비가 되어있는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으면서도 집히는 대목은 역시 재벌과 외국자본의 방송참여쯤으로 압축된다. 재벌기업 출신의 어떤 장관은 그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선다. 누군가의 ‘방송법 유보 국면을 보는 독법’대로 ‘재벌 작곡-정무수석 편곡-정통부장관 연출’이 오늘의 방송장악 행진곡인가.

여기서 나는 다시 DJ없는 디제이노믹스의 화두를 소스라치게 상기한다. 역시 문맥이 없어보이면서도, 문맥은 엄연히 존재했던 것인가. 통합방송법의 문제를 오늘의 국면에 대입해보더라도, DJ없는 디제이노믹스, 국민회의 없는 ‘국민의 정부’라는 역설의 화두는 확인되고야 마는 것인가.

정작 그렇다면 아무리 안타깝다고 할지라도, 김영호교수의 지적 그대로 그 깃발 아래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그 깃발은 바람을 타고 나부끼지 못한다.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집권정당은 그 너무나도 자명한 현실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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