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회삿돈을 횡령해 뇌물 86억원을 건넸다. 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지만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최소 형량보다 낮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마저도 채우지 않았지만 법무부는 가석방 기준을 낮춰 이 부회장을 풀어줬다. 미디어오늘은 이 과정에 언론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지적했다.

[관련기사 : 사법정의 포기한 이재용 가석방 결정, 언론 역할 컸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서 나왔지만 언론의 이 부회장 걱정은 계속됐다. 그가 나오기로 한 13일 경제지 디지털타임스는 “光復(광복)”이란 칼럼에서 광복절을 앞두고 광복의 의미와 어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다가 느닷없이 이 부회장 얘기로 글을 마무리했다.

“광복절이 되면 특별사면, 가석방 등이 단행된다. 올해에도 법무부는 이 부회장을 포함해 850명에 대해 ‘광복절 가석방’을 승인했다. 이번 가석방의 목적은 광복의 의미를 살리면서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을 이루는 데 있을 것이다. 수혜자들은 이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이들이 ‘빛이 날’ 정도로 각자의 역할을 잘 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한 13일자 디지털타임스 칼럼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한 13일자 디지털타임스 칼럼

디지털타임스는 지난 9일 이 부회장 가석방이 결정된 이후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과 ‘이재용 부회장 향후 행보’ 관련 기획 기사들과 사설 “이재용 가석방, 발빠른 투자로 ‘반도체 초격차’ 이루라” 등을 쏟아낸 매체다.

‘광복의 의미를 살리듯’ 이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출소한 직후 삼성전자 사장들을 만났다. 이 역시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보수·경제지 논조와 내용은 비슷했다.

“사장단부터 만난 이재용 대규모 투자·M&A 시동”(서울경제 14일) 
“연내 파운드리·배터리 ‘20조+α’ 투자…‘백신특사’로 나설수도”(서울경제 14일) 
“가석방 이재용, 삼성전자 서초사옥부터 찾았다”(한국경제 14일) 
“코로나 백신 민간특사 역할 기대”(아시아경제 13일)
“삼성 사회공헌·고용창출도 가속도”(아시아경제 13일)
“속도내는 뉴삼성…이재용의 ‘무노조 경영 철폐’ 결실”(파이낸셜뉴스 13일)

이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을 우려하는 기고 글도 눈에 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13일 매일경제 칼럼 “삼성전자의 주인은 누구일까”에서 “삼성전자가 이재용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기업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다시 삼성전자를 생각해보자”며 “지금 삼성전자를 두고 벌어지는 많은 논란이 어쩌면 삼성전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과 크게 상관없는 일들일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 전 처장은 “삼성전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주주들의 희망 아니겠는가”라며 “삼성전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 새로운 시각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보호관찰 대상자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파이낸셜뉴스는 13일자 사설 “이재용을 보호관찰 덫에서 풀어주라”에서 “경제계의 생각은 다르나. 과거 이 부회장이 백신 확보에 나섰을 때처럼 계획에 없던 해외출장을 갑자기 떠나야 할 때가 문제”라며 “한마디로 가석방 상태로는 온전한 경영 행보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 13일자 파이낸셜뉴스 사설
▲ 13일자 파이낸셜뉴스 사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생활 중 수척해진 것을 강조하는 언론보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생활 중 수척해진 것을 강조하는 언론보도

이 부회장이 7개월 사이 체중 13kg이 빠져 얼굴이 수척해졌다는 기사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경제는 14일 “180cm가 넘는 큰 키의 체격은 줄어든 몸무게로 왜소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현장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전했다”며 “마스크를 착용해 안색이나 표정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몸무게가 줄어 마스크 위로 보이는 두 눈이 움푹 파여 있었다”고 꽤 구체적으로 이 부회장을 묘사했다. 이어 “서울구치소는 에어컨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도 전했다.

고생스러운 생활을 ‘슬기롭게’ 이겨냈다는 내용의 칼럼도 있다. 16일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 “이재용의 ‘슬기로운 감방 생활’”에선 과거 TV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서 억울하게 수형 생활을 하면서도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단련한 이야기 등 감방에서 운동을 한 다양한 사연들을 소개했다. 이 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 신문은 “그는 하루 30분씩 주어지는 운동 시간 중 매일 구치소 공터에서 뛰었다고 한다. 그가 웃통을 벗고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다른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화제일 정도였다. 코로나가 심각해져 운동시간이 주 1회로 줄어들자 이 부회장은 방 안에서 매일 스쿼트를 수백 번씩 하며 근력을 유지했다”고 썼다.

칼럼 마지막 문단은 “고난은 사람을 성숙시킨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어 “이 부회장이 구치소에서 맛본 고난이 시야를 넓히고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노릇을 해주기 바란다”며 “앞날이 불투명한 반도체 사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 백신 부족 사태 해결에도 기여한다면 그뿐 아니라 나라에도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 16일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
▲ 16일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

보수·경제지들이 지적하지 않은 내용은 일부 매체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실장은 16일 칼럼에서 “이 부회장의 불법 행위는 삼성의 일상적인 기업활동과 전혀 관계 없는 ‘개인 범죄’”라며 “삼성 총수 일가의 대를 이은 불법·비리를 가능하게 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언론이 제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자운 변호사 역시 이날 미디어오늘 기고에서 “이재용씨는 지금껏 자신의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정한 적 없고, 추가 기소된 관련 사건(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에서도 여전히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며 재범 위험성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그의 가석방이 ‘코로나19 경제위기’ 해법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경제가 기업 범죄자 한 명의 석방 여부에 좌우될 정도로 후진적일리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이재용 가석방, 나쁘고 비겁한 최악의 정치]

한편,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해 부당거래한 것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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