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YTN의 차별 시정 사건을 심리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YTN 인사 제도가 골품제처럼 차별을 전제했다는 질타가 나왔다. 입사 경로만을 전제로 급여·승진 규정을 현저히 달리 적용한 구조는 차별 금지를 정한 근로기준법 6조 위반이라는 평가다.

주심을 맡은 A 공익위원은 당시 심판정에서 “(직분) 제도 자체가 차별적이다. 근본적으로 성골, 진골, 6두품 나누는 것과 같고 (군대에서) 장교 코스 밟는 사람과 사병 코스 밟는 사람을 나누는 것 같다”며 “호봉직이 되면 긍지도 생기고 좋을 것 같은데, 연봉직이 되면 ‘나는 그냥 여기서 이렇게 연봉을 매년 받아서 적당히 부림을 받고 일한다’는 게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A 위원이 거론한 YTN의 직분제도는 입사 경로를 중심으로 직원을 호봉직, 일반직, 연봉직으로 구분한 인사 제도다. 직분마다 급여·승진·승급 등의 인사 규정이 다르다. 호봉직은 공개 경쟁 채용 전형을 거쳐 뽑힌 직원으로 기자, PD, 방송 기술·경영직 등이 있다. 일반직엔 영상 편집, 카메라감독, MD 등의 직군이, 연봉직엔 그 외 직군이 대다수 포함됐다. 제작PD, 제작AD(뉴스PD·AD), 그래픽 디자이너, 운전직, 시설관리직 등이다.

당시 심리 대상은 한 YTN 기간제 직원의 임금 차별 시정 신청이었지만 위원들은 심문 시간의 절반 가량을 직분 제도를 묻는 데 썼다.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심문 시작부터 “왜 호봉직, 연봉직 등으로 분류하느냐”고 물은 A 위원은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호봉직이 더 높은 사람 대접을 받느냐”고 회사 측 대리인에 물었다. “같은 연차에서는 (직분 간) 상하를 나누는 개념은 아니다. 호봉직은 나중에 관리자가 되는 경로가 있다”는 답을 듣자 “말하자면 성골이구나”라고 언급했다.

호봉직 채용은 114대 1 수준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는 회사 대리인 설명에 A 위원은 “그거야 호봉을 올려주고 (처우가) 좋으니까 경쟁률이 높을 거고, 승진도 잘 못 하고 그저 그냥 정년까지 다니려면 경쟁률이 낮을 테고 그거야 인지상정 아니냐”고 답했다. “카지노 운영한 회사가 비슷하게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중노위원 10년 정도 했지만 드문 사례다. 태생적으로 직원을 둘로 나눠서 ‘너는 앞으로 잘 나갈 직군’, 차마 말은 못하지만 ‘다니면 다니고, 말면 말 직군’ 이런 느낌을 주지 않느냐”고도 밝혔다.

한 근로자위원도 “제도 자체가 상당히 좋지 않다”며 “군대에서 무슨 하사관이나 장교로 구분하는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과거 공무원이 일반직과 기능직을 나눴었는데 그때는 임금 차이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A 위원은 “태생부터 직분을 구분해 너희는 엘리트가 될 사람, 못 될 사람, 이렇게 해놓고 일은 비슷하게 시키는데 ‘입직경로부터 다르다’고 하면서 완전히 달리 취급할 정도가 되면 근로기준법상 회사가 사회적 신분을 설정을 한 게 돼 불법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상여금 차별’ 없애는 처우 개선안 잠정 도출

YTN은 이와 관련 지난 3~6월 동안 인사 제도 및 처우 개선을 논의하는 TF팀 ‘모두 행복한 일터 만들기 노사 협의체’를 꾸려 대책을 고민해왔다. 교섭권을 가진 대표 노조(언론노조 YTN지부)와 회사 대표, 호봉직·일반직·연봉직 대표 각 2명씩, 복수 노조인 YTN방송노조 대표 등이 참여했다. 매주 1~2차례 회의를 열어 논의를 진행했다. 활동 기간은 올해 상반기까지로 정했다.

처우 개선은 논의됐지만 직분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논의하는 회의는 없었다. 협의체 초기 직분 제도를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직무 평가를 실시하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일부 대표들이 난색을 표하는 등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뉴스프로그램 제작 관련 자료 사진. 사진은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중 뉴스 프로그램 진행 장면 갈무리.
▲뉴스프로그램 제작 관련 자료 사진. 사진은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중 뉴스 프로그램 진행 장면 갈무리.

 

지난달 30일 활동 종료 직전 상정된 안은 연봉직 임금체계를 개편한 안이다. 호봉직만 한 해 기본급의 800%를 상여금으로 받는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연봉직에도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가령 한 해 4000만원을 받던 연봉직의 경우 2400만원은 기본급으로, 나머지 1600만원은 상여금으로 나누고 기본급 인하에 따른 손실은 수당을 신설해 보전한다는 계획이다.

협의체 결론을 공지한 YTN지부는 “연봉직에 한 해 300만원 정도 수당을 신설하는 안이 논의됐고, 회사가 연봉직 1명 처우 개선에 연평균 108만원에서 132만원까지 추가 부담한다”며 “한해 444만원 수당을 받던 호봉직 경우 300만원으로 조정하고 나머지 급액은 기본급과 상여로 옮기도록 조정했다”고 밝혔다.

협의체는 일반직 처우 개선안은 도출하지 못했다. YTN지부와 일반직 대표는 호봉직 연봉의 70%로 책정된 비율을 그 이상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이와 다른 새로운 연봉 테이블을 제안했다. 회사 제안에 일반직 직원 다수가 반대했다.

잠정 도출된 연봉직 처우 개선안을 두고도 갈등의 씨앗이 남아 있다. 협의체가 끝나기 전 일부 구성원들은 도출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일부 연봉직원들은 임금 총액을 늘리지 않고 기존 임금을 분할함으로써 통상임금과 연계된 기본급이 낮아지는데 우려를 표했다.

시철우 YTN지부 사무국장은 “보전장치를 마련했고, 회사 사규 등을 종합하면 이 우려엔 오해가 있고 불식할 수 있다. 실제는 현재 임금 테이블보다 연간 14만원 안팎의 이득이 발생한다”며 “기본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연봉직 구성원에게 투입해 격차 해소를 위해 한 계단 더 올라가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YTN지부는 공지글에서 “앞으로 달라지는 조건을 놓고 누구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고, 그 의견도 계속 듣겠다”며 “남은 시간 동안 집행부가 최선을 다해 다시 설명하고 설득하겠다. 설명을 듣고 그래도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면 버리셔도 좋다” “포기하지 않고 분발하겠다”라고 밝혔다.

YTN은 이번 도출안을 2021년 임금협상과 2020년 단체협약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두달여간 조합원과 사내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추진해 노조 대의원 대회의 추인을 거칠 예정이다. 시철우 사무국장은 “설득과 설명을 통해 오해를 바로 잡고 이해를 구할 것”이라며 “임금협약, 단체협약에 반영하면 기본 전제가 형성된다.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개선점을 계속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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