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로 인해 기자 간에, 매체 간에 뉴스 내용이 유사해진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기자들은 동료 기자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려 한다. 한 기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신문들이 하는 대로 하면 잘못되더라도 부담이 적고 혼자서 튀면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의 경우 더욱 그렇다.” (책 ‘저널리즘의 지형’의 한 대목) 

팩(Pack) 저널리즘. 취재 방법이나 취재시간이 획일적이고 개성이 없는 저널리즘을 뜻한다. 한국은 언론자유가 있는 국가 중 언론 신뢰도가 매우 낮은 곳이다. 기사의 품질이 낮아서다. 정파성이나 조회수에 의존하는 수익구조 등 다양한 품질 저하 원인이 있겠으나 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겪는 문제다. 한국 언론만의 특수성은 출입처 관행이다. 이 관행에서 파생되는 정보독점과 담합 구조가 있다. 중심에는 기자단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펴낸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에 따르면 한국 언론은 출입처로 유지된다. 한 중앙일간지는 기자의 67.2%, 한 지상파는 기자의 70.4%, 한 경제지는 기자의 81.7%가 출입처를 갖고 있었다. 로이터통신 가디언 뉴욕타임스 등 주요 해외언론은 대다수 기자에게 출입처를 배정하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전체 기자 500여명의 10%인 50여명 만이 우리의 출입처에 해당하는 전담 분야를 갖고 있었다. 

출입처 관행은 저널리즘을 죽이고 있다. 대다수 기자는 출입처에서 일상을 보내며 보도자료 중심 기사를 쓴다. 정작 내부 취재에 제한이 있어 취재원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등에 대한 디지털 순회 취재를 하거나, 같은 출입처 기자들의 정보교환 모임인 ‘꾸미’ 등을 이용한다. 이는 ‘보도의 동질화’로 이어진다. 그 결과 특정 사안은 같은 내용으로 너무 많이 보도하고 다른 사안은 전혀 보도하지 않는 ‘뉴스 홍수’와 ‘뉴스 사막’ 현상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기자실 모습. ⓒ연합뉴스
▲기자실 모습. ⓒ연합뉴스

조선일보·신동아·한겨레 기자 출신 학자들이 작성한 해당 연구보고서는 “해외언론은 출입처에 의존하지 않는 취재시스템과 수용자를 중심에 두는 기사 제작원칙이 고품질 기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하며 “출입처 의존은 언론-취재원 간 연결을 도왔는지 몰라도 언론-시민 간 연결에는 악영향을 끼쳤다. 현재 기사 생산 방식으로는 수용자의 관심사와 이익을 반영한다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도저히 구현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연구보고서는 “(국내) 출입처 중심 취재는 획일화된 기사를 양산하고, 저널리즘 실천을 저해하며, 뉴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상업적 매력까지 크게 떨어뜨렸다”고 진단한 뒤 “매일 보도자료를 토대로 3건 정도 기사를 출고하게 하는 출입처 기반 제작방식을 그대로 두면서 추가로 기자들에게 양질의 단독 기사까지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며 탈脫출입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가운데 특별히 ‘법조 출입’에 주목했다. 

“기자들 증언을 분석한 결과, 국내 수많은 출입처 중에서 법조·경찰 출입처는 출입처 중심 취재를 유지해야 하는 매우 강력한 동기를 언론사에 제공하고 있었다. … 결국 법조·경찰 출입처 운영방식이 출입처 제도 전체를 지속하도록 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두 출입처 운영을 개선하지 않고는 전체 출입처 문제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연구보고서는 또한 “개별 사건의 사실 여부를 떠나 법조 출입처와 관련해 검언유착 의혹 등 여러 사회적 쟁점이 발생해 언론계 전체의 신뢰도가 저하된 것도 사실이다. 검찰, 법원, 경찰로부터의 정보 획득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뉴스의 공정성·신뢰성 회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며 “출입처 발 보도가 전반적으로 정보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으므로 개혁이 필요하다. 여기엔 상당수가 공감한다. 이젠 법조·경찰 출입처를 그대로 둔 채로는 이런 개혁이 무의미하다는 점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언론사는 검찰·법원·경찰을 가장 중요한 출입처로 여기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법조 출입기자는 40개사 260명으로, 134개사 230여명이 출입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보다 많다. 언론사는 ‘에이스’를 법조 기자단으로 보낸다. 법조 기자단은 헌법재판소, 대법원, 서울중앙지법,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등을 출입하는 언론사 기자들의 모임이다. 서울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법원이 검찰·법원 출입기자실을 운영한다.

▲검찰. ⓒ연합뉴스
▲검찰. ⓒ연합뉴스

경향신문 법조기자 출신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조 뉴스 생산 관행 연구-관행의 형성 요인과 실천적 해법’ 논문에서 “법조 출입처가 한국 언론으로부터 과도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법조의 뉴스 가치가 과대평가 받고 있다”며 “검찰 수사는 실제 사회적 의미 이상으로 취재와 보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과도한 관심이 법조의 위상을 강화시켜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논문에서 인터뷰에 참여한 익명의 신문사 기자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면 취재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일단 지면을 비워놓고 업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소위 ‘친검 기자’를 ‘법조 전문기자’로 바꿔낼 방법으로 법원 중심 보도로의 전환을 언급하며 “법원의 업무 과정 및 패턴과 맞는 새로운 취재 관행을 설계해야 한다”, “보도 관행은 다수의 언론사가 참여해 공론화하고 합의해야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영흠 교수는 “권력형 비리 수사가 정국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한국 정치의 특수한 맥락과 해외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집중된 권력을 가진 한국 검찰이 없었다면 한국 언론의 법조 뉴스 생산 관행은 지금과 매우 다른 형태를 띠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령 검찰을 개혁해도 한국 언론의 법조 뉴스 생산 관행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검찰 개혁은 미완에 그칠 수 있다. 

박 교수는 “현행 취재시스템에서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고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는 순간 담당 기자는 검찰 출입기자에서 법원 출입기자로 바뀐다”며 기자가 출입처를 담당하지 않고 사건을 담당하는 ‘사건 기자’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출입처를 벗어나 특정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가 늘어나려면 출입처 제도를 벗겨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중앙지법에선 출입기자만 재판장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고, 사건을 추적해온 비非출입기자들은 수첩에 받아적어야 하는 현실이다. 노트북을 쓰려면 기자단 간사 허락을 받아야 한다. 

기자단은 권력이다. 2014년 TV조선은 서울시경 기자단 가입에 계속 실패하자 “기자단은 뚜렷한 이유 없이 다섯 번씩이나 기자단 가입을 거부했다. 아무 이유 없이 타 언론사 진입을 막는 행태야말로 한국 언론에서 가장 비판받아야 할 어두운 구석”이라며 시경 기자단을 공개 비판했다. TV조선은 “권력과 자본에 의한 언론통제 시도에 언론은 끊임없이 맞서야 하지만, 언론이 언론을 통제하려는 움직임 또한 혁파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2014년 5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오프더레코드’(비보도 전제 발언)를 보도한 오마이뉴스와 경향신문에 63일(9주)간의 출입정지 징계를 통보했다. 최근에는 오마이뉴스가 ‘판사 사찰’ 의혹 문건을 실물 사진으로 보도한 것이 엠바고 파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대검찰청 출입기자단이 오마이뉴스에 1년 출입정지 징계를 결정했다. ‘언론의 언론통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검찰 기자단 해체 요구’ 청원은 불과 4일 만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그러나 정작 주류 언론 가운데 누구도 먼저 기자단을 뛰쳐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오늘과 뉴스타파는 조만간 서울고검과 서울고법에 기자실 사용과 출입증 발급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낸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함께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에 나설 계획이다. 오늘날 한국사회 저널리즘을 망치고 있는 출입처 관행을 없애려면, 대한민국 출입기자단의 상징이 되어버린 법조 기자단부터 깨야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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