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기자단의 폐쇄적 운영에 언론사들이 직접 문제 제기에 나섰다. 법원과 검찰에 청사 출입증과 기자실 사용 권한을 신청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기관과 언론이 건전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함에도 현행의 운영 방식은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 자유를 저해하기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참여 매체는 2일 기준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두 곳이다. 이들은 이달 초 서울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법원에 각각 기자실 사용과 출입증 발급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서울고검과 서울고법은 ‘법조 기자단’으로 불리는 검찰·법원 출입기자실을 운영한다. 법조 기자단은 헌법재판소, 대법원, 서울중앙지법,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등을 출입하는 매체 기자들 모임이다.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청사. 사진=손가영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청사. 사진=손가영 기자.

신청은 반려될 확률이 높다. 실제 2년 전 한 온라인매체 기자가 서울중앙지검에 기자단과 같은 취재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기자단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답을 듣고 거부당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행정소송이다. 출입증 발급 등을 거부한 공공기관의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

이들 언론사는 행정소송에 돌입하면 헌법소원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공권력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당사자가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권리구제 절차로, 언론사에게 보장돼야 할 언론 활동의 자유가 공공기관의 처분으로 침해됐다는 요지다. 향후 이어질 소송 등 법적 대응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이하 민변 언론위) 소속 변호사에게 위임하기로 정했다.

언론위원장 김성순 변호사는 “검찰 기자단의 운용 방식과 (검찰발) 이슈를 만들어내 (대중들에게) 소비시키는 일부 형태에 의문을 갖고 있다. 피의사실공표도 주된 문제로 본다”며 “‘카르텔’이라고 할 만큼 기관과 유착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국가권력과 언론의 건전한 긴장관계 형성을 통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취재·보도의 자유를 확대하고 시민 알 권리를 신장하자는 취지를 공론화시킨다는 차원에서 이번 시도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 연합뉴스
▲검찰. ⓒ 연합뉴스

기자단 가입은 바늘구멍, 검찰·법원은 ‘선택적 공보’

서울을 기준으로 법조는 경찰, 서울시청 등과 함께 폐쇄적 기자단이 유지되는 기관이다. 기자단 자체 운용 방침이 다른 기관 기자단보다 배타적이다. 기자단 가입이 한 예다. 우선 ‘6개월 동안 최소 3명의 기자가 법조 기사를 보도’해야 가입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소규모 매체나 프리랜서 기자·작가들은 자격도 얻기 힘들다.

이후 기자단 자체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및 중앙지검, 대검찰청 등 세 기관 출입 기자들이 기자실 별로 투표한다. 기자실 3곳에서 모두 재적 3분의 2 출석과 과반수 혹은 3분의 2 찬성표를 받아야 기자실 출입 자격을 얻는다. 투표는 정성평가로 이뤄진다. 객관적 기준을 만족해도 기자단 가입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기관이 매체를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기자의 취재를 지원하면 되지만 법원·검찰 등은 주로 기자단 취재에만 선택적으로 협조한다. 기자실 사용과 출입증 발급이 대표적이다. 기자단 밖의 기자들은 검찰 기자회견과 정례 브리핑 취재가 불가능했다. 검찰은 지난해까지 매주 1회 이상 기자를 대상으로 티타임 형식의 브리핑을 열었는데 기자단 아닌 매체가 참가를 요청하면 거부했다.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수사 발표 기자회견도 마찬가지다.

민변 미디어언론위가 지난 6~8월 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기관) 재산인 기자실을 출입하는데 왜 법조기자단이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지”와 “기자단에게 기자실 운영을 위임했는지”를 물은 결과 서울고검은 기자실 운영과 관련한 별도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상시 출입증 발급은 ‘서울검찰청사 관리 및 운용에 관한 규정’ 34조 2항에 따른다고 답했다. “법조 출입기자의 경우 기자실 간사가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검사에게 제출한 언론사별 명단을 토대로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대검과 협의해 발급한다”는 조항이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연합뉴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연합뉴스

서울고법은 같은 질문에 “법조 기자단은 기자들 자율 조직으로서 가입 여부와 구성에 법원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자실 운영과 출입증 발급 모두 ‘법원홍보업무내규’ 각 10·11·12조에 따라 출입 기자의 활동에 편의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내규엔 출입 기자 정의나 기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두 기관 모두 ‘왜 기자단과 기자단 아닌 매체 취재에 차별적으로 대응하느냐’는 지적은 부인했다. 서울고검은 “기자단은 자율로 운영되며, 공보자료나 브리핑 참석은 기자단 소속 여부와 무관하게 언론사나 기자가 신청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허용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도 “공식 보도자료를 요청하면 기자단뿐만 아니라 비출입사(기자단 외) 기자에게도 제공하고 있다”고 답했다.

법조 출입 기자는 다른 기관에 비해 규모가 월등하다. 4월 기준 40개사 260명으로 매체당 배정된 기자 수가 많다. 38개 매체가 등록된 교육부는 출입기자수가 77명이다. 230여명 기자가 출입하는 청와대는 출입매체만 134개사다. (언론재단 지정 2020-02 보고서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박재영·허만섭·안수찬·박보희 연구팀)

5년 넘게 법조를 출입한 일간지 기자 A씨는 “기자는 시민을 대변해 기관을 감시하는 취재를 한다. 그 방식이 모든 시민과 같을 수 없고 기관의 취재 지원을 제공 받을 수밖에 없는데 기자단이 용이한 구조”라면서 “그러나 현재는 ‘기사의 카르텔’ 기능을 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기자단이 배타적으로 정보를 받는 통로로 굳어지며 같은 정보를 받고 동일한 기사를 쓰는 폐해가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오마이뉴스가 2018년 보도로 공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 사건 1·2심 판결문과 지난달 공개한  ‘주요·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 일부. 오마이뉴스는 이 보도로 출입 정지 1년 징계를 각각 받았다.
▲오마이뉴스가 2018년 보도로 공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 사건 1·2심 판결문과 지난달 공개한 ‘주요·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 일부. 오마이뉴스는 이 보도로 출입 정지 1년 징계를 각각 받았다.

기자들이 임의로 엠바고를 설정해 알 권리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자단 소속인 오마이뉴스는 2018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 1·2심 판결문을 공개해 기자단으로부터 1년 출입정지 징계를 받았다. 기자단 내규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 측 요청에 따라 판결문을 모두 비공개해 일반 대중이 볼 수 없었지만 출입기자단에겐 취재 지원으로 공개했다. 오마이뉴스는 시민 알 권리를 이유로 공개를 강행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26일엔 대검찰청의 판사 사찰 의혹 논란이 제기된 ‘주요·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을 사진으로 공개해 또 1년 출입정지 징계를 받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배제 명령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윤석열 검찰총장 측 대리인이 제공한 자료였다. 기자단은 대리인 측이 문건 사진을 그대로 싣는 건 양해해달라고 조건을 뒀는데도 오마이뉴스가 약속을 어겼다며 징계했다고 알려졌다.

이번 대응에 함께 한 한상진 뉴스타파 기자는 언론개혁의 한 방법이라며 참가 취지를 밝혔다. 이 기자는 “출입처 제도의 부작용이 크다. 기자실을 개방하고 출입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됐지만 지금껏 개선된 적 없다. 기자들 반발과 정부 기관의 편의 때문 아니겠느냐”며 “당사자들의 편익보다 훼손되는 국민들의 알 권리가 더 크다. 기자단·출입처 제도를 둘러싼 문제 제기에 공감하고 공론화 작업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매체 기자들이나 프리랜서 작가 등은 이번 사안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 5년 넘게 법조를 취재한 온라인매체 기자 B씨는 “현실적 이유로 참가하진 못했지만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며 “출입기자단은 기관과 건강한 거리를 두지 못하는 구조를 만든다. 공공기관이 언론사를 차별하는 문제도 있다. 공론화를 통해 상황이 더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기사 일부 수정 : 2020년 12월2일 오후 12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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