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일’이 많았던 98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98년을 일컬어 최악의 해라고들 한다. 아마도 광풍처럼 휩쓸고간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98년은 새로운 모색을 위한 절호의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 언론을 상징해온 단어는 ‘권경언 유착’이었다.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파워 엘리트 집단에 기대어 정보를 수집하고, 경영을 일궈온 게 우리 언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98년은 이런 구시대의 잔영을 일소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부여한 해였다.

50년만에 일궈낸 정권교체는 우리 언론의 낡은 취재·보도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했다. 파워 엘리트들과 지연 학연으로 얽혀 서로 기대고 밀어주고 담합하던 시절의 비정상적인 취재·보도관행이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야 하는 요인을 부여한 게 바로 정권교체였다.

IMF는 언론에 좀더 강한 개혁을 요구했다. 시장논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때로는 언론권력의 위세로, 때로는 유착구조의 기생집단으로 처신하면서 사세불리기에 몰두해오던 언론사의 ‘거품경영’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도록 한 게 바로 IMF라는 계기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난 지금, 이것들에 대한 평가는 그리 넉넉지 않다. 경향·문화를 비롯한 재벌언론이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고, 비록 미풍이나마 일부 언론사에서 개혁이 모색됐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그리 흡족하지 않다.

언론사의 ‘거품 걷기’는 어떻게 귀착됐는가. 언론노동자들에 대한 고통 전가로 귀착된 게 현실이다. 98년 한해동안 5,000여명에 이르는 동료 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나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무분별한 몸집 불리기에 앞장섰던 경영진은 털끝 만큼의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IMF를 기화로 회사 장악력을 더욱 높였을 뿐이다.

정권교체의 여파도 긍정적인 게 아니다. 이전의 정보유통구조가 뒤바뀌면서 ‘특종 언론사’의 순위가 새롭게 정립된 면이 있지만 이것이 취재·보도관행의 전반적 개선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여권매체 대 야권매체라는 케케묵은 구도가 그대로 온존된 채 그 해당 언론사의 이름만 바뀌었다는 게 좀더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변화는 거셌지만 변혁은 미미했던 98년, 그 원인은 무엇보다 외생적 요인을 개혁의 조건으로 활용하지 못했던 데 있다. 위기와 시련을 개혁의 분기점으로 활용하는 내적 노력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거품경영의 책임을 물어야 할 때 ‘위기의 상황논리’에 빠져버리고, 개혁을 부르짖어야 할 때 ‘생존’을 우선시해 버리는 풍토가 언론계 전체를 휘감았다는 사실은 부인키 어려운 점이다. 이 때문에 ‘위기는 곧 기회’라는 연초의 대승적 태도는 온데 간데 없고 ‘더 큰 위기’를 걱정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한해를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새해를 맞는다. 또 어떤 요인들이 언론계의 변화를 강제할지 두고 지켜볼 일이지만 몇가지 점에서만은 조심스런 전망을 가능케 한다. 내각제 개헌이 최대의 화두가 될 99년은 또 다시 ‘줄타기’와 ‘편가르기’가 횡행하는 ‘굿판’을 열어줄 것이며, 이 판위에서 정치세력과 언론은 또 한번의 ‘거래’를 할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것은 지면·화면의 개혁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소 호전되리라고 예측되는 경기도 꼭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광고가 늘어 경영의 숨통은 틔워
주겠지만 이런 상황적 요인 때문에 언론사와 언론시장의 개혁이 더욱 늦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금언의 효력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는 또 다른 금언도 새겨볼 만하다. ‘생존’과 ‘위기’의 굴레에 갇혀 멀리, 그리고 깊이 내다보기를 외면했던 지난 1년의 모습을 일신하고 새로이 각오를 다질 때이다. ‘개혁’, 이것은 새해를 맞는 지금도 거역할 수 없는 언론계 최고의 화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