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위기상황인가. 최근의 언론보도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부평초를 연상케 한다.
연초 정국을 휘몰아치고 있는 두가지 대형사건, 즉 ‘국회 529호실’과 ‘대전 법조계 수임비리’ 사건을 전하는 언론보도는 과연 저널리즘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하기에 충분하다.

케케묵은 구담처럼 들리지만 또 다시 운위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적이 다시 제기된다. 본질은 제껴둔 채 지엽말단만을 헤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국회 529호실’ 사건엔 여러가지 측면이 농축돼 있다.
국민 앞에서 법준수를 외쳐야 할 입법부 의원들이 폭력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 자신들이 집권여당이던 시절에 설치해놓고도 이제와서 새삼스레 문제를 제기하는 후안무치한 행위, 그리고 안기부가 과연 정당한 방법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는지, 그리고 수집된 정보는 합당한 법적 토대 위에 있는 것인지 등이 그것이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이같은 측면들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여당과 야당이 각각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멱살잡이를 서슴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형국이니 국민들은 혼란에 짜증이 겹칠만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언론의 보도는 좀더 정돈돼야 하고 중요와 부차를 나눠 보도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언론보도는 거꾸로 달렸다.
누가 뭐래도 ‘국회 529호실’ 사건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정치사찰 여부에 대한 검증작업은 애초에 포기한 채 고질적인 양비론에 멱살잡이 중계보도로 일관했다.

‘대전 법조계 수임비리’ 사건 보도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은 연일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이 사건의 구성요소들을 시시콜콜히 전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를 찾아봐도 응당 ‘대서특필’됐어야 할 사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수임비리와 ‘셋트’를 이룰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측면, 다시 말하자면 수임비리를 가능케 하는 검찰조사와 판결과정에서의 불합리성에 대한 고발은 제대로 찾아볼 길이 없다. 보도되는 것이라곤 알선료 총액이 얼마이고, 1인당·건당 알선료 평균액이 얼마인지를 전하는 숫자놀음이 주조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그 하나의 단초는 사법부의 판결을 검증하지 않은 우리 언론의 나쁜 관행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은 신성한 것이라는 다소 ‘순진한’ 논리로 포장한 채, 때로는 취재인력 부족이란 현실론을 거론하며 아예 취재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린 언론의 안이하고 편협한 사고구조가 재연됐을 따름인 것이다.

‘국회 529호실’ 사건에 관한 부실보도도 그 뿌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당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치사찰 여부에 대한 검증을 방기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대다수의 기자들은 한나라당의 처사를 정치적 쇼로 간주하고 있다.

이전부터 있어온 관행을 지금에 와서 새삼 문제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이 기자의 전언이 대다수 정치부 기자들의 정서와 태도를 반영하는 것인지는 꼼꼼히 따져볼 일이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런 정서 때문에 언론의 본령인 사실검증을 애초부터 방기한 것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사실 단순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독자와 시청자에 대한 신용과 믿음을 생명으로 하는 저널리즘이 위기상황을 맞았다면 그 원인은 바로 신용과 믿음을 상실한 데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연초의 두 대형사건 보도에 대해 ‘총체적 부실덩어리’라는 지적이 숱하게 제기되고 있는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일선 기자들의 맹성이다. 취재의 출발선에서부터 한쪽만을 주시하고, 심층취재의 열성을 놓아버리는 작금의 풍토가 ‘부실 보도’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기자들의 맹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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