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일개 복지·경제제도로 보기 어렵다. 그보다 높은 차원의 정치사상이나 경제 패러다임에 가깝다. 임금노동 형태의 소득배분으로 현 체제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 간에도 지급이유와 재원마련 방안, 지급금액 등이 제각각이다. 기본소득의 찬반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기본소득이냐도 중요한 문제다. 기본소득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고 국회에 입성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을 25일 그의 의원실에서 만났다.  

조 의원은 증세없이 세수조정으로 월 3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한다. 근로소득공제, 보험료 공제 등 비과세 감면제도를 통폐합해 예산의 45% 정도를 마련하고, 복지제도를 재정비해 26%를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현재 30조원 이상 쌓인 순세계잉여금, 비효율적인 중앙·지방정부의 기금으로 26% 정도를 마련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총 187조원이 드는데, 조 의원실의 계획대로라면 당장 내년에도 1인당 월 30만원 기본소득이 가능하다.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사진=의원실 제공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사진=의원실 제공

 

국회에 입성하면서 조 의원은 기본소득이 아닌 다른 이슈로 주목을 받았다. 기본소득이 그의 당명처럼 ‘시대전환’을 말하듯 그의 행보 역시 이전의 정치인들과 달랐다. 그 얘기로 먼저 운을 뗐다. 다음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국회의원·보좌진은 모두 ‘입법노동자’일 뿐 특권을 가지는 직업이 아니라는 취지의 얘기했다. 보좌진들이 ‘의원님’이 아닌 ‘정훈님’으로 부르는 것도 널리 알려졌다. 지하철을 타거나 직접 운전하고 다니며 ‘탈권위’를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계기나 이유가 있나?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부끄럽지만 세계은행에서 15년간 실컷 (그런 대접) 받았다. 사람을 망칠 수 있는 ‘축복으로 가장된 독약’일 수 있다. 모르는 사람까지 고개 숙인다고 기분 좋아하는 순간 ‘훅 간다’. 그러면 의원실 내에서도 손해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의원 자신이다. 보좌진들은 일자리가 달렸는데 (솔직하게) 얘기하겠나? 인턴부터 수석보좌관까지 같다. 더 좋은 의견 내는 사람이 그 일을 추진한다. 그렇게 동기부여가 되면 내가 최대한 서포트받을 수 있다.” 

-운동경기도 시작 전 출전선수들을 소개한다며 첫 기자회견에서 보좌진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자신을 소개하도록 해 화제가 됐다. 
 
“(기자회견을 전한) SBS 보도 영상이 화제가 되자 어제(24일)는 나랑 병태님(권병태 보좌관), 가희님(남가희 비서)이 다시 SBS에 가서 뉴스에서 대담했는데 25분이나 나왔다. 작가들이 재밌었다며 사진 찍자고 하는데 연예인도 아닌데 왜일까? ‘이 사람들 정상적이다!’ 이걸로 충분했던 것 같다. 국회가 얼마나 국민과 떨어져 있었나 느낀 사례였다.”

▲ 조정훈 의원 첫 기자회견. 보좌진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화제가 됐다. 사진=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갈무리
▲ 조정훈 의원 첫 기자회견. 보좌진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화제가 됐다. 사진=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갈무리

 

-개원 전 한달간 대리운전기사 경험 등을 바탕으로 1호법안을 ‘플랫폼 노동자 경력증명서발급법’으로 했다. 이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지금도 배달의민족에서 일했다는 증명서는 ‘계약사실확인서’란 이름으로 지금도 뗄 수 있다. 일한 기간도 나온다”며 “당장 라이더들은 경력증명서 떼서 어디 쓰라는 것이냐는 반응”이라며 비판했다. 차라리 노동자의 데이터를 노동자나 근로복지공단이 접근할 수 있는 걸 법에서 보장한다면 의미 있겠다고 했다. 

“박정훈 위원장의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노동자 데이터주권이라는 개념에 동의한다. (이 사안 관련) 확신을 가졌던 사례가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세계은행 사업을 하는데 그 나라 요청으로 전국민 주민등록증 만드는 사업을 했다. 그때까지 어떠한 증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금을 받고 싶은데 자신이 65세라는 걸 증명할 수단이 없다면, 뇌물을 줘야 한다. 은행계좌는 열 수 있을까? 대출은 받을 수 있나? 대리운전,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은 건건이 보상을 하면 끝이다. (개원 전) 대리운전을 하다가 겸직금지 조항 때문에 탈퇴했는데 (정보가) 다 사라져 경력을 인정받을 수가 없었다. 한국 사회가 감정적·심리적으로 플랫폼 노동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지금은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니 증명서가 쓸 곳이 없을지 모르지만, 증명서 발급은 시작일 뿐이라는 뜻인가. 발급이 가능하면 인식이나 다른 제도가 더 바뀔 거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나?

“그렇다.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는 등 의미있는 일을 하면 다 경력을 인정해 준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은 경력증명서 하나 떼지 못하는 일이다. 대리운전 5년간 무사고인 사람과 처음 하는 사람이 똑같다. 편의점에서 알바했는데 사고하나 없었다면 그 노동자는 돈을 더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한 대리기사가 고용안정지원금을 받고 싶어서 회사에 경력증명을 요청했다. 대리기사는 계약을 하고 일하는 게 아니라며 거부당했다. 월급통장도 없다. 대리운전을 수개월했지만 지원금을 못 받았다. 민간·공공할 것 없이 경력증명서가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다 조사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보험료가 높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오토바이 업계에서도 무작정 손해볼 수는 없으니 데이터를 이용해 라이더들을 고위험군, 저위험군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저위험군에는 저렴한 보험료를 적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라이더들도 운전을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 ‘친기업+친서민’ 1호 법안 만드려는 국회의원]

-이번 총선에서 시대전환의 대표 공약이 기본소득이었다. ‘물고기를 잡아줄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게 기존 사고방식이다. 기본소득은 물고기를 직접 잡아주는 방식인데 이렇게 방식을 바꿔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이상 지금의 산업 모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환경문제도 그렇고, 빈부격차도 땜질식 정책으론 답이 없다. 전환적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는 ‘고용안정’이 아니라 ‘생활안정’을 말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만 봐도 (노동)유연성을 감내하는 비정규직이 안정적인 정규직보다 임금이 높아야 한다. 전문화가 되면서 그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이 되는 게 맞다. 지금은 신분제다. 

‘일하지 않는 사람, 먹지도 말라’는 얘기대로라면 다 죽어야 한다. 질 낮은 일자리밖에 없지 않느냐. 부루마블 게임에서 한 바퀴 돌면 20만원을 준다. 20만원으로 게임을 유지한다. 그게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전통시장을 부양하는 식의 정책효과를 뛰어넘는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국가가 돈을 주는 경험이다. 기존 복지는 개별 국민이 국가에게 자신의 비참함을 드러내야 한다. 가난하다, 직장에서 잘렸다, 고아다, 그래야 돈을 준다. (시민들이) 더 이상 이런 대우를 받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하나의 형태가 아니다.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실현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재원마련방안, 지급 액수에 대해 기본소득론자 간에도 이견이 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부루마블에서 20만원을 어떻게 주느냐. 제일 돈 많은 사람에게 빼앗아 줄 수도 있고, 게임 1등한 사람에게 내라고 할 수도 있다. 게임 시작하기 전에 (룰을) 정하면 된다. (부루마블에선) 은행이 돈을 찍어내 주기로 정한 거다. 기본소득 월 30만원 지급은 시작이다. 이 실험을 통해 효과가 뭔지, 어떤 분배효과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보통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분들은 빅데이터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국토보유세를 신설하는 등 공유재 성격의 자원에 과세하자고 한다. 반면 조 의원은 세율인상에 반대했고 파이 자체를 키워서 기본소득 액수를 늘려가자고 했다. (조 의원은 세수조정으로 2021년 1인당 월30만원을 지급해 파이를 키워 2028년에는 월 60만원까지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성장시대에 가능할까?

“정치권이나 정부에선 세율인상을 말하는 게 가장 쉽다. 고소득자들에게만 부담이 커지는데 옳지 않다. 특히 한국은 고율의 세금을 내는 고소득자 비율도 적다. 건강하지 않다. 만원이라도 다 내야 한다. ‘돈도 안 내는데 달라고만 한다’는 감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기본소득은 무상급식 등의 정책과 성격이 다르다. 무상급식은 주고 끝나지만 기본소득엔 과세를 할 수가 있다. 이를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전 국민에게 주자고 한 건 정서의 문제다. 상위 30%가 못 받는다고 죽고 사는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한 푼도 안 주고 걷기만 하면 조세저항이 심하다.

파이를 키우려며 규제개혁, 혁신을 해야 한다. 노동의 유연성을 건들지도 모른다. 현재 공공에서 55만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한국처럼 일자리 창출이란 무거운 부담을 가진 기업이 많지 않다. 고용의 (의무라는) 모래주머니가 갈수록 무거워진다.” 

▲ 시대전환이 구상하는 월 30만원 기본소득 재원마련 방안. 자료=조정훈 의원실
▲ 시대전환이 구상하는 월 30만원 기본소득 재원마련 방안. 자료=조정훈 의원실

 

-규제를 풀어 배달의민족 같은 곳이 몇 개 생겨나 성장해도 그 소수 기업이 부를 독식하는데 세수가 얼마나 늘어날지 의문이다. 

“배민 매출이 증가했을 때 얼마를 과세할 것인가. 이때 세율은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법인세보다는 소득세로. 다만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재원은 불로소득이다. 소득세는 최후의 수단이고 상속·증여 등 불로소득은 당장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로소득 과세만 계산해봐도 월 30만원 기본소득 충분히 할 수 있다.”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다. 기본소득에 분배효과가 없진 않지만 근본 해결책으로 보이진 않는다. 양극화를 해소할만한 다른 아이디어는 없나? 

“기본소득은 마치 플랫폼 노동에서 경력증명서 역할을 할 거다. 새로운 문을 여는 기폭제지 시대전환을 완성하는 최종 완결판일 수 없다. 국민이기에 평생 30만원씩 받을 수 있다. 30만원은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 이를 멈추게 하는 돈이라고 한다.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청년이 가끔은 카페가서 카페모카도 먹을 수 있게 되는 돈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무시할 수 있겠지만 이 느낌은 굉장히 중요하다. 행복추구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사진=의원실 제공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사진=의원실 제공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기본소득을 전국민고용보험과 함께 다루며 상충되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전국민고용보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둘은 족보가 다르다. 정책의 영역에서 숙성되지 않은 채 정치가 빨리 논쟁을 붙였다. 사실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유력한 대선후보가 각 세우는 구도인 거 다 알지 않느냐. 이러면 안 된다. 

전국민고용보험제 비판 거리는 많지만 하나만 보자. 지금도 자영업자·비정규직 고용보험 들 수 있지만 자영업자는 1%, 비정규직은 50%가 안 된다. 부담되니 들지 않고 있다. 지금도 적자인데 플랫폼 노동자, 가사노동자 등도 다 들기로 하면 그 돈은 누가 내나. 정부가 다 들어주는 거면 그게 무슨 보험이냐. 고용보험은 가입기간이 180일이다. 코로나로 당장 지원이 필요한데 6개월간 일을 한 다음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지금 일자리를 못 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 고용보험도 결국 일자리 이야기다. 일자리는 더 안 생기는데 그 안에서 하는 논의다. 고용안정이 아니라 생활안정을 고민해야 한다.”

 

[ 정치인 인터뷰 ]
① “우리 유튜브 잘되면 시민들에게 자리 내주고 싶어” - 최지선 미래당 미디어국장·우인철 미래당 대변인
② “맏형은 수백평 땅 있는데 동생 몇십만원 준다고 될 일이냐” - 김재연 신임 진보당 상임대표
③ 노동운동 홍보 전문가였던 류호정 정의당을 혁신할까 - 류호정 정의당 의원 
④ 기본소득당 용혜인이 말하는 기본소득 논쟁의 핵심 -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⑤ 조정훈 “부루마블 한 바퀴 돌면 20만원 준다, 그게 기본소득”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⑥ 장혜영 “혁신 의견 받았더니 ‘네가 혁신대상’이란 말 들었다” - 장혜영 정의당 의원
⑦ “전국민고용보험, 청사진 있나? 하려면 제대로 해야” -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
⑧ “무급가족종사자, 여성배우자도 고용안전망 보호해야” - 송명숙 진보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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