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시사저널 여론조사가 실린 지면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카카오스토리 계정에 올리고 더불어민주당이 낙관할 수 없다는 취지로 글을 썼다. 그런데 어느날 확인해보니 게시글이 삭제됐다. 해당 게시글에 접속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선거관리위원회 삭제 요청)”이라는 카카오측의 통보문구가 나온다.

▲A씨가 카카오스토리에 남긴 게시글과 동일한 인스타그램 게시글(왼쪽)과 카카오의 통보.
▲A씨가 카카오스토리에 남긴 게시글과 동일한 인스타그램 게시글(왼쪽)과 카카오의 통보.

A씨는 “시사저널에 나온 기사에 코멘트를 한 건데, 이런 내용까지 지워야 한다면 선거 관련된 글은 다 지워야 하지 않나. 말하는 것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느낌이 든다.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A씨와 같은 일은 또 있다. 한 네이버 블로거는 여론조사 관련 글을 올렸다 게시글이 삭제됐다. 그는 네이버의 공직선거법 위반 게시글 삭제 통보문을 캡쳐해 “납득할 수 없기에 관련 기관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항의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블로거는 서울대생의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정식 여론조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게시글이 삭제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 위반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비방, 여론조사 공표 관련 사항을 위반한 인터넷 게시글을 모니터링해 삭제 조치하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건 ‘여론조사 공표 관련 항목’이다. 2016년 한국인터넷투명성보고팀과 미디어오늘이 함께 분석한 결과 20대 총선 때 중앙선관위가 삭제 조치한 게시글 1166건 가운데 368건이 여론조사 항목 위반을 이유로 삭제했다.

선거법상 여론조사 항목 위반이라고 하면 여론조사를 조작해 올린 문제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공표 또는 보도된 선거여론조사의 결과를 인용해 공표 보도할 때는 여론조사결과의 최초공표, 보도출처, 발행일자 등을 명기하고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도록 표기하여 함께 공표 보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선거 기간에 언론사에서 이 조항을 지켜 보도하지만 주어가 ‘누구든지’이기 때문에 선관위는 SNS 게시글, 커뮤니티 댓글까지 같은 기준으로 단속하고 있다.

그 결과 A씨의 사례처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사진 찍어 올리기만 했는데 관련 공표 사항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20대 총선 당시 삭제된 게시글을 보면 여론조사를 다룬 신문 기사, 방송 뉴스를 캡처하거나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경우,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댓글을 통해 최근 여론조사 결과나 추세를 간단하게 전하는 경우도 삭제됐다. 

▲ 방송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찍어 올린 게시글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재했다.
▲ 20대 총선 당시 방송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찍어 올린 게시글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재했다.
▲  20 총선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간단하게 적어 올린 게시글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재했다.
▲ 20 총선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간단하게 적어 올린 게시글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재했다.
▲ 언론사 기사 댓글을 통해 지지율을 대략적으로 쓴 게시글을 중앙선관위는 삭제했다.
▲ 언론사 기사 댓글을 통해 지지율을 대략적으로 쓴 게시글을 중앙선관위는 삭제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여론조사를 전한 경우도 선관위는 삭제 조치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여론조사를 전한 경우도 선관위는 삭제 조치했다.

20대 총선 당시 선관위가 삭제한 댓글 가운데 ”여당 52 vs 야당 48% 구도를 깨고 안철수 본인이 새누리를 분열시켜 여당 42 vs 야당 58% 구도를 만들길 염원한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안철수의 모습. 여당 42 vs 더민주 28% + 국민의당 9% 정의당 4%를 만든 형국”은 추세를 대략적으로 썼을 뿐 여론조사와 무관하다. 누리꾼들이 판세에 숫자를 붙여 단순 대화를 나누는 정도로 글을 쓰는데도 규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여론조사 조사기관을 위장한 것도 아니고 대중들이 간소하게 장난식으로 투표를 하거나, 정식 여론조사를 인용해 올리는 것까지 검열하는 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여론조사 항목 외에도 허위사실공표, 후보자비방 명목으로 삭제하는 경우도 문제가 있다. 허위사실 증명이 불확실한 경우도 많고 후보자 비방은 욕만 해도 걸린다. 선거법 자체가 과도하다보니 삭제명령 대상도 광범위해진다.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너무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했다.

삭제 조치를 당사자가 알기 힘든 점도 문제다. 이와 관련 카카오 관계자는 “선관위가 직접 결정하는 것으로 사업자는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개별로 안내메일을 따로 보내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을 위반했고, 세부적인 건 선관위에 문의하도록 문구를 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은 개인의 열람 여부까지 확인하지는 않는다. 카카오 이용자이지만 구글이나 네이버 메일을 주로 쓸 경우 메일을 확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거 기간 유권자들의 의사표현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삭제를 할 때도 유권자의 정당한 의사표현이 제한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하고 있다”며 “삭제는 인터넷상의 유포가 빠르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정조치”라고 했다. 

▲ 20대 총선 당시 유승민 후보자의 성별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제재받은 게시글. 여론조사 공표 뿐 아니라 게시글 삭제 대상 전반이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 20대 총선 당시 유승민 후보자의 성별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제재받은 게시글. 여론조사 공표 뿐 아니라 게시글 삭제 대상 전반이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 20대 총선 당시 나경원 자녀 부정입학 의혹을 다룬 게시글도 삭제 조치됐다. 뉴스타파 보도에서는 '자녀 입학 후 해당 전형 합격자가 없었다'고 보도했으나 누리꾼이 '자녀 입학 후 해당 전형이 사라졌다'고 오인해 게시글을 올린 게 문제가 됐다. 보도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경미한 허위사실에도 이처럼 제재하고 있다.
▲ 20대 총선 당시 나경원 자녀 부정입학 의혹을 다룬 게시글도 삭제 조치됐다. 뉴스타파 보도에서는 '자녀 입학 후 해당 전형 합격자가 없었다'고 보도했으나 누리꾼이 '자녀 입학 후 해당 전형이 사라졌다'고 오인해 게시글을 올린 게 문제가 됐다. 보도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경미한 허위사실에도 이처럼 제재하고 있다.

누리꾼이 언론사 보도를 사진 찍어 올리는 데도 여론조사 공표 사항을 강제하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에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개별 사례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표 사항을 일부 누락한 경우나 경미한 위반은 댓글로 자정을 유도한다”고 답했다.

2016년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관위가 임의로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 삭제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폐기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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