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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를 거두려면
차별과 혐오를 거두려면
[ 미디어오늘 1241호 사설 ]

굳이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 아파트를 10년 동안 연구해 쓴 ‘아파트 공화국’을 읽지 않아도 아파트 공간을 둘러싼 차별과 혐오는 한국병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는 1993년 처음 서울을 방문해 거대한 아파트단지에 놀라 연구를 결심했다. 당시 그는 한강 남쪽에 병풍처럼 줄 지어 늘어선 아파트를 보고 분단 국가 한국의 특수한 군사시설로 여겼다. 저런 곳에 사람이 살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대단지 아파트는 ‘도시 폭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는 아무리 도시로 인구가 집중해도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진 않았다.

서울의 아파트단지는 하나의 소우주다. 그는 한국인에게 신처럼 추앙받는 ‘아파트’ 대신 그 공간을 채우고 오가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관리소 직원, 경비원, 청소부, 상인, 행상인, 배달원 등의 동선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는 특히 ‘경비 아저씨’들의 중대한 역할에 주목했다. 이들은 주민들 개인적 여러 일을 돕거나 집안의 설비도 고친다. 장바구니를 날라주고, 화분을 옮기고, 아이를 봐주고, 손가락을 다친 아이에게 반창고를 붙여주고, 자전거를 옮기는 아이를 도와주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은 경비원 이상이었다. 그들은 봉사를 의무로 저임금에 고용된 ‘하인들’이다. 낯선 이방인의 눈에 경비원은 ‘하인’으로 비쳤다.

이렇게 나온 박사논문은 2003년 프랑스 지리학회가 주는 가르니에 상을 받았다.

그는 ‘아파트단지 거주자’라는 뭉뚱거린 용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한 아파트 안에서 일어나는 소유자와 세입자를 분리하지 못했고, 한 단지 안에서 분양과 임대로 나뉜 동별 혐오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 1990년대 중반에 조사했던 아파트단지를 2004년과 2005년에 재조사하면서 98년 외환위기 이후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피겠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논문은 외환위기 전후의 변화를 담지 못했다.

▲ 2018년 9월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단지 일대. ⓒ 연합뉴스
▲ 2018년 9월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단지 일대. ⓒ 연합뉴스

2014년 10월 7일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아무개 씨(53)는 아파트 5층에서 음식을 던지며 ‘이거나 집어 먹어라’는 등 주민 A씨(70)의 잇단 모욕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 주차된 주민의 그랜저 승용차 안에서 분신을 기도해 1달여 투병 끝에 결국 숨졌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낳은 이 극단적 비극을 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

급기야 시민사회의 요구에 떠밀려 지난해 연말 정부와 국회가 경비업법을 개정해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경비 외의 일을 못시키게 했다. 경찰은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6월부터 법 위반을 단속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경비원을 ‘하인’처럼 부리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법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에 우리는 또다시 감염보다 더 무서운 혐오에 직면에 있다. 우리는 지난달 내내 중국 혐오를 부추기는 한국 언론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이제 남유럽을 넘어 서유럽으로 번지는 코로나19 확산세에 우리는 또 변형된 중국 혐오를 접한다.

이탈리아는 확진자 1만명과 500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내 유럽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 북부 롬바르디아 주에서 지난달 21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보름만에 생긴 변화의 속도도 놀랍다.

그러자 한국 언론은 빠른 확산세의 원인을 찾는다며 북부에 중국인이 8만명이나 거주한다는 사실을 앞세우며 이탈리아를 ‘유럽의 우한’이라 호명했다. 패션과 섬유산업 중심지인 북부지역에 중국인 모여 살면서 재앙을 불렀다는 그릇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거짓이다. 중국인은 전세계 어디에도 있다. 원래 무역에 능했던 특유의 체질까지 더해져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에도, 노르웨이 북쪽 끝 나르비크에도, 아프리카 오지에도 중국인이 없는 곳은 없다.

토리노와 밀라노, 제노아를 잇는 황금의 삼각벨트엔 이탈리아 문화와 예술, 산업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300년 넘게 연필만 만들어온 중소기업 등 장수기업이 건재한 이탈리아를 너무도 어설프게 진단했다.

2007년 남유럽발 경제위기로 일부 ‘패스트 패션’이 이탈리아에도 자리 잡았지만 이탈리아는 여전히 장인의 손땀을 극찬하는 슬로우 패션으로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래서 패션만큼은 파리보다도 밀라노를 더 쳐준다.

▲ 이탈리아에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유명 관광지가 텅 비었다. 사진은 로마에 있는 ‘스페인 계단’ 앞. ⓒ 연합뉴스
▲ 이탈리아에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유명 관광지가 텅 비었다. 사진은 로마에 있는 ‘스페인 계단’ 앞. ⓒ 연합뉴스

시간이 지나자 장막을 걷고 허구가 실체를 드러냈다. 이탈리아에 코로나19가 급증하는 건 ‘장수마을’이라서다. 이탈리아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23%로 일본 28.4%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특히 북부엔 롬바르디아 구릉을 따라 알프스의 풍광 속 전원마을이 즐비하다.

중국을 비판하려거든 극우집단처럼 대중의 혐오를 먹고 살 생각보다는 중국의 시대착오적인 국가 관료자본주의 체제의 반민주성과 억압에 주목해야 한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중국을 망쳐온 체제의 폭력성을 직시하면 중국인을 향한 혐오를 거뜬히 걷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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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3-14 17:23:19
이래서 가위손이 필요하다고 항상 떠들잖아? 레거시 미디어든 SNS든 온오프라인에서 헛소리하는 놈들에게 가위질 스킬 한번만 보여주면 된다.

바람 2020-03-14 12:15:18
"시간이 지나자 장막을 걷고 허구가 실체를 드러냈다. 이탈리아에 코로나19가 급증하는 건 ‘장수마을’이라서다. 이탈리아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23%로 일본 28.4%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 한국언론은 혐오 거리를 찾아다니네. 한국 기자를 욕하고 싶지 않지만, 그대들은 대주주(재벌/대기업/건설회사/기득권)의 족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코끼리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