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IPTV를 운영하는 통신사 LG유플러스의 케이블 방송 CJ헬로 인수를 승인했다. 이번 심사를 계기로 유료방송 질서 재편이 본격화된다. 과기정통부는 우려되는 문제를 심사에 반영했다는 입장이지만 시민사회는 ‘낙제점 수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총점 1000점에 합격점 700점을 기준으로 심사한 결과 LG유플러스가 727.44점을 받아 인수를 ‘승인’하되 지역성 강화, 공정경쟁, 시청자권익보호, 방송미디어산업 발전, 상생협력 등 ‘조건’을 부과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유료방송은 TV를 시청할 때 안테나를 설치해 무료로 지상파로 수신하지 않고 돈을 내고 흔히 ‘케이블 채널’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채널(PP)이 포함된 방송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방송 전송 방식에 따라 통신3사의 IPTV와 CJ헬로, 티브로드, 딜라이브, 현대HCN 등 케이블 SO, KT스카이라이프로 대표되는 위성방송 등 3가지 종류의 유료방송사업자가 있다.

유료방송업계 인수합병 이유는?

유료방송시장은 케이블 중심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때 IPTV를 도입한 이후 10년 만에 IPTV 점유율이 케이블을 역전했다. IPTV는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VOD서비스, 핸드폰 등과 연계해 저가에 판매하는 결합상품 등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사실상 케이블업체가 시장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IPTV는 케이블 인수를 통해 가입자를 흡수하고 케이블은 매각을 통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미디어 사업자의 공습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료방송 인수합병으로 국내에 강력한 미디어 사업자가 탄생해야 한다며 산업적 측면에서 인수합병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이번 인수합병 성공으로 통신3사의 인수합병 도미노에 ‘파란불’이 켜졌다. 통신3사가 최근 인수합병을 추진하거나 검토하는 케이블SO의 점유율을 더하면 KT+스카이라이프+딜라이브 37.31%, LG유플러스+CJ헬로 24.43%,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23.83%로 통신사의 유료방송 점유율이 85.57%(지난해 6월 기준)에 달한다.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회적인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케이블은 어떤 지역에서는 CJ헬로만 사업을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티브로드만 사업하는 등 지역별 독점 형태로 운영하는 대신 해당 지역의 지역성을 구현할 수 있는 채널을 운영하는 책무를 가졌다. 반면 IPTV는 전국에서 경쟁하고 있어 IPTV 중심 인수합병으로 ‘지역성 훼손’ 우려가 있다. 협력업체 소속으로 간접고용된 설치, 수리 등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불투명한 점에서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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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LG유플러스가 CJ헬로 가입자를 LG유플러스로 옮겨 CJ헬로가 고사될 거라는 우려 △통신사가 케이블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면 개별 방송사들과 채널을 제공하는 대가 협상을 할 때 플랫폼의 힘이 막강해진다는 우려 △CJ헬로가 저가 핸드폰인 ‘알뜰폰’ 시장 1위 사업자라는 점에서 통신사의 시장 독점 논란 △ 콘텐츠 산업 활성화 명분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하지만 실제 투자는 미미할 거라는 우려 등이 있다

과기정통부 “필요한 조치 취했다”

과기정통부는 사회적으로 우려가 되는 문제를 심사 조건으로 반영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지역성’ 문제의 경우 과기정통부는 △현재 지역채널 의무가 없는 CJ헬로 8VSB(아날로그 방송이지만 디지털 화질로 송출하는 유형) 최저가 기본상품에 지역채널을 포함하고 △LG유플러스에 CJ헬로 지역 콘텐츠를 무료 VOD로 제공하도록 하고 △ 지역채널 투자규모, 본방송 비율, 지역보도(재난방송 포함) 등 지역 콘텐츠 비중 등을 포함한 지역채널 운영계획을 수립·이행토록 조건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 CJ헬로 재난방송 현장. 지난 강원도 산불 때 CJ헬로 가입자들은 CJ헬로가 직접 운영하는 '직사채널'을 통해 지역밀착형 24시간 재난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이 방송으로 CJ헬로는 2019 안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사진=CJ헬로 제공.
▲ CJ헬로 재난방송 현장. 지난 강원도 산불 때 CJ헬로 가입자들은 CJ헬로가 직접 운영하는 '직사채널'을 통해 지역밀착형 24시간 재난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이 방송으로 CJ헬로는 2019 안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사진=CJ헬로 제공.

노동 문제와 관련 과기정통부는 “협력업체와의 기존 계약을 일정기간 유지토록 하고, 협력업체와의 상생 방안을 마련, 이를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이행토록 하였다”고 밝혔다.

미디어 산업 투자 문제는 “LG유플러스는 IPTV 콘텐츠와 함께 실감형·양방향 콘텐츠 등 다양한 콘텐츠 분야의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제출하고 이행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부과해 승인했다. CJ헬로는 향후 5년간 1조1239억원, LG유플러스는 2조6723억원을 콘텐츠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과기정통부는 수용했다. 과기정통부는 “과거 5년에 비해 각각 23.2%, 110.6% 증가한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과기정통부는 기존 케이블 가입자를 IPTV로 전환하도록 부당하게 강요하거나 유도하는 행위를 금지 조건으로 부과했다고 밝혔다.

‘협상력 균형 붕괴’ 우려에 과기정통부는 두 기업이 인수합병하더라도 방송채널(PP)과 계약할 때는 별도의 기업으로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고 가격 규모, 증가율을 공개토록 했다.

알뜰폰 문제의 경우 알뜰폰 시장 경쟁여건을 개선하고, 가계통신비를 낮추는 방안이 지속될 수 있도록 통신사의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도매제공 대상 확대, 데이터 선구매 할인제공, 다회선 할인, 결합상품 동등 제공 등의 조건을 부과했다. 알뜰폰은 통신사가 도매로 제공하는 망을 구매해 사업하는 형태다. 

시민사회 “지역성, 고용 낙제점 심사”

시민사회는 이번 심사가 형식에 그쳤다며 반발하고 있다.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나쁜 인수합병 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5일 입장을 내고 “IPTV사업자가 케이블SO를 인수하는 최초의 심사로, 앞으로 이어질 인수합병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결과는 함량미달”이라며 “특히 핵심의제였던 일자리와 지역성 심사내용은 낙제점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지역성 투자 내역을 언급하며 “고작 향후 5년간 지역채널 투자액을 490억원 증액하는 것뿐”이라며 “두 회사가  동일 기간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1조 1239억원, 2조 6723억원에 비해 턱없이 작은 액수다. 연간 98억원은 연평균 콘텐츠 투자액의 1%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CJ헬로가 운영하는 지역채널은 24개(2017년 기준)로 채널당 투자액은 연 4억원 수준밖에 안 되며, 이마저도 콘텐츠에 투자될지 미지수다.

▲ 지난 2월 노조를 설립한 CJ헬로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은 LG유플러스와 CJ헬로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2월 노조를 설립한 CJ헬로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은 LG유플러스와 CJ헬로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고용 문제 승인 조건인 ‘3년 간 협력업체 계약 유지’ ‘상생방안 계획 제출’은 LG유플러스가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안한 내용이다. 공동행동은 “유료방송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원하청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고민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용 유지’가 아니라 ‘하청 구조 유지’ 조건”이라고 비판했다.

두 기업의 설치, 수리 등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소속된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외주의 문제점과 최근까지 이어진 구조조정을 언급하며 “정부는 LG유플러스가 원하는 대로 ‘위험의 외주화’를 승인했고, LG유플러스가 바라는 조건을 부과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CJ헬로와 LG유플러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기에 희망연대노조는 “찬물을 끼얹었다”고 했다.

희망연대노조는 심사 과정의 문제도 지적했다. 노조는 심사주안점, 심사위원회 공개, 청문 과정 때 노동조합 출석 요구 등을 요구했으나 “심사는 깜깜이였고, 결과는 역시나 절망적”이라고 했다. 지난 정부 때 SK텔레콤이 CJ헬로 인수합병을 추진하던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구체적인 심사 항목을 공개했으나 이번에는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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